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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seniya Dec 14. 2021

전기 도둑 훌리오

살다 살다 전기를 훔치다니....

세상을 살다 보면 일어날 것 같지 않는 일들이 드라마처럼 일어나기도 한다. 내가 사는 세상에서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에서는  한 번도 겪지 못하는 일들을 나에게는 참으로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들이 많았다. 물론 평범한 곳이 아닌 다소 특이한 세상 속에서 살았던 이유로  일어나는 일들이기는  했지만,  상식을 벗어난 행동들이 일상 속에 일어나 버리면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훨씬 많은 에너지를 소모해야 했다. 특히나 감정 소모를...


이곳 아파트로 이사를 오고 난 후, 아이들의 학교를 데려다주고 데리고 오는 일을 빼고는 거의 나갈 일이 없었다. 생활에  필요한 식재료들은 매주 금요일마다 남편이  미국에서 일주일치의  필요한 한국 장을 봐 오기 때문에 그럭저럭 생활에 불편한 일은 없었다. 오히려 하루하루 무료한 일상만이 반복될 뿐이었다. 주로 아파트 안에서만 생활을 하고 있던 날들이기도 했다.


다른 동에 사는 한국 사람인 A언니도 아이들이 학교를 가고 나면, 그 시간은 무료한 하루가 시작되는 나와 같은 일상이었다. 서로의 집을 왕래하며, 막간을 이용해 아파트 여자들의 수다가 시작되는 시간이기도 했다. 커피를 마시며 사람 사는 이야기를 하면 별의별 정보가 다 쏟아져 나오기도 했다.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나는   아파트에 대해 전반적으로 이것저것 궁금한 것이 많았다.


"언니! 혹시 전기세가 얼마 정도 나와?"

언니네 집도 사춘기 아들 두 명을 포함해서 네 식구가 살고 있었기에 전기세가 적잖이 나올 거라는 예상을 하고 물어본 것이었다. 그런데 그녀의 얼굴이 살짝 붉어지며 말을 얼버무리기 시작했다.


"우린 얼마 안내."


"왜?  애들 때문에 많이 나오지 않아?"


반신반의하며 물어보자...


"우린 50페소만 내면 돼."


"그게 무슨 소리야?"

"50 페소면 거의 공짜 아니야?

어떻게 그렇게 나올 수가 있어?"


믿을 수가 없었다. 50 페소면 한국돈으로 오천 원 정도의 돈이다. 아무리 멕시코 물가가 미국에 비해서 싸다고는 하지만 이 정도는 말도 안 되는 액수였다. 나의 계속되는 불편한 추궁에 그녀는 마지못해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사실은 훌리오가 자기에게 50페소만 다달이 주면 전기를 공짜로 쓰게 해 주겠다고 했단다.


훌리오!!!!

대단지 아파트라서 관리 사무소가 따로 있는 이곳에는 아파트 전체에 고장이 나거나,  이런저런 잡다한 일이 생길 때 나서서 일을 해 주는 관리 사무실 직원이 있었다. 그 직원이 훌리오였다. 40대 중반의 볼 때마다 음흉한 미소를 짓고 있는 그였다.


"어떻게 훌리오가 전기세를 안 내게 해 준데? "


나는 말도 안 된다는 듯이 그녀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한술 더 떠서 너도 할 마음이 있으면 자신이 훌리오를 소개해주겠다고 했다. 원래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일을 혼자서 할 때는 동지가 필요한 법이었다. 그래야 동지의식에 양심의 가책을  조금이라도 덜어낼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으니 말이다. 속으로는 내심 살짝 흔들렸다. 그러나 선뜻 내키지 않아 남편에게 물어본다 하고 커피를 마시고 집으로 돌아왔다.





주말에 내려온 남편에게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 평상시 웬만한 일에는 무관심하다 할 정도로 말이 없는 사람이  불같이 화를 냈다. 그런 사람이랑 어울리지  말라고 평상시보다 훨씬 높은 목소리톤으로 그녀를 비난했다.


만약 그녀가 전기를 공짜로 사용을 한다면, 다른  누군가가 그 전기값을 덤터기 쓰는 거라며 도덕적으로 나쁜 짓이라고 비난을 하는 것이었다.  행여 너도 똑같은 사람 되지 않으려거든 생각도 하지 말고 듣지도 말라고 나에게도 큰 소리를 쳤다. 생각해 보니 남편의 말이 맞을 수도  있었다.

제 아무리 전기를 잘 다룬다 해도 어떻게 전기를 공짜로 사용하게 해 줄 수 있단 말인가?


그 의문은 머지않아 나의 집에서 풀리게 되었다.

달이 바뀔수록 이상하게 우리 집 전기세 고지서는 평상시보다 훨씬 웃도는 요금이 고지서에 찍혀서 나왔다. 그전에는 그러려니 하고 지나갔지만,  어느 한 달에 전기세가 무려 200불 가까이하는 고지서를 받아 들게 되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게 나올 이유가 없었다.


나와 아이들 셋이서 전기를 써 봐야 얼마나 쓴다고 50불도 아닌 200불이 나올 수가 있을까?

전기세를 내기 위해 전기회사를 찾아가 항의를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렇게 전기세가 나올 이유가 없다고...


그러나 전기회사 직원은 자신들은 계량기에 나오는 대로 계산을 하기 때문에 그 가격이 맞다고 했다. 아무 이상이 없다는 말투였다. 그즈음 해서 나는 혼자서 사건을 해결하는 명탐정 코난이 되어 있었다. 어떻게 해서든 범인을 찾아내야 했다. 당연히 범인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단지  심증만 있지 물증이  없었다.


독이 오를 대로 오른 나는,  남편에게 억울함을 호소하며 반드시 범인을 찾아내고야 말겠다고 분노 섞인 말투로 입을 부르르 떨었다. 그도 화가 나긴 마찬가지였다. 자신도 없는 집에서  그렇게 비합리적인 전기세에 말문이 막혔던 것이다.


 자신의 앞에서 부르르 떨며 억울해하는 와이프가 불쌍해 보이기도 했을 것이다. 남편은 전기 계량기를 찾아보자고 했다. 옆 동  언니에게 가서 계량기 위치를 물어보니 아파트 건물 뒤편에 있다고 그리로 가 보라고 했다.


남편과 나는 아파트 건물 뒤편에 그 동 전체의 계량기가 일렬로 죽 늘어서 있는 걸 발견하고 서둘러 우리 주소가 적혀 있는 계량기를 찾았다. 아니나 다를까 열심히 돌아가고 있었다. 아주 빠른 속도로...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 밑에 층 주소가 적혀 있는 계량기를 보니 전혀 움직임이 없었다. 분명히 사람이 살고 있는데 움직이기는커녕 숫자가 거의 0에 가깝게 찍혀 있었다. 아무래도 이상했다. 남편은 집으로 올라가 두꺼비집을 다 내리라고 했다. 순간 전기로 돌아가던 모든 소음이 정전과 함께 사라졌다.  다시 아파트 뒤편으로 돌아와 계량기를 쳐다보니 아니나 다를까, 우리 집 계량기는 계속 쉴 새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밑에 집의 계량기는  여전히 0을 가리키고 있었다.


남편과 나는 즉시 밑에 층으로 달려가 초인종을 눌렀다. 안에서 인기척이 나면서 문이 열렸다. 그 집의 주인이 의아한 듯이 문을 열며,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았다. 같은 동의 아래 윗집 사는 이웃이었지만 서로 처음 보는 순간이었다.


혹시 전기세가 얼마가 나오는지를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왜 그런 걸 물어보느냐고 심기가 불편한 듯 예의 당황한 모습을 하고 서 있었다.  이제까지 일어난 일들과 전기세에 대한 것과 전기를 사용하고  있는 당신네 계량기가 거의 0으로 되어 있다고 침착하게 남편이 영어로 설명을 해 주었다. 아무래도  이상해서  확인을 하려고 하는 거라고 했다. 자기네들은 정당하게 전기세를 내고 전기를 쓰는 거라 무관하다고 급하게  문을 닫으려고 했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물러설 사람이 아니었다.

 그럼 내가 이 상황을 경찰서에 의뢰를 할 예정인데 그렇게 해도 상관이 없겠냐고 재차 물어보았다. 전기 도둑을 잡아야 하지 않겠냐고  못을 박았다. 그제야 이 남자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다.


그 말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 열을 식히고 앉아 있으니, 초인종이 울렸다. 문을 열어보니 밑에 집 남자가 서 있었다.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니,


미안하다고....


사실은 훌리오가 자신들에게 돈을 얼마를 주면 전기공짜로 쓸 수 있게 해 주겠다고 ,  그 제안을 받아들인 거라고 했다. 짐작은 했지만 기가 막히기는 마찬가지였다.

미안하다고...


그렇게 전기도둑은 밝혀졌지만, 훌리오는 잘리지 않았다.

뻔뻔한 훌리오는 평상시와 마찬가지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항상 능글맞은 표정으로 이곳저곳을 헤집고 다녔다.

범인이 밝혀진다고 해서 사건이 해결될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었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세상이었다.


분한 마음에 관리사무소장인 호세에게 달려가 이 사실을 알렸지만,  는 또 이런 일이 일어난 듯 아무렇지도 않게 알았다고만 하고 그냥 넘겨버렸다. 나만 미친년 널뛰듯이 여기저기 분주하게 돌아다닌 격이 되었다. 아니 오히려 역풍을 맞은 건 나였다.




나에게 앙심을 품은 훌리오는 나에게 복수를 하기 시작했다.

그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한 능글맞은 미소로 평상시와 다르지 않게 작업복을 입고 여기저기 아파트 주변을 돌아다니는 훌리오를 마주치는 순간은 기분이 더러운 똥 밝은 기분이었다.


그날은 바람이 거세게 불던 날이었다. 급하게 류를 작성하고 있는 순간에 컴퓨터의 인터넷이 끊어져버렸다.

관리 사무실에 들려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사람을 불러 고치러 가겠다고 했다.


고양이한테 생선을 준 격인가?

그 사람이 바로 훌리오였다.

그런데 훌리오는 인터넷선을 연결을 하기는커녕 아예 인터넷 줄을 끊어 버려 놓았다. 그리고 나선 나에게 자신이 연결을 해 줄 테니 돈을 달라고 했다. 세상에는 작은 악마들이 여기저기 존재하고 있었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호세를 찾아갔다. 그런데 이번엔 호세도 화가 난 것 같았다. 훌리오를 불러 당장 그 선을 연결해 놓으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도 훌리오가 믿을 수 없었는지 아예 옥상에 따라 올라가 끊어진 선을 가리키며 당장 복구해 놓으라고  훌라오 옆을 지키고 서 있었다. 호세는 보기 드물게 멕시코 사람치고는 평정심을  잘 유지하는 사람이었다. 거대한 몸집만큼이나 멕시코 사람이 믿음직스러워 보이긴 처음이었다. 옥상까지 따라온 나에게 빠른 시간 내에 복구를 해 놓을 테니 집으로 들어가 있으라고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인터넷이 다시 연결이 되었다.


그 후로 훌리오는 다시는 나에게 장난질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아파트 단지에서 그의 음흉하고 능글맞은 얼굴을 더 이상 보지 않아도 됐다. 물론 옆집 언니도 다시 자신들이 쓴 만큼의 전기세를 내야만 했다. 인터넷이 복구된 다음 날 가벼운 발걸음으로 김밥 한 접시를 말아 호세에게 찾아가니 이제까지 무뚝뚝했던 그의 얼굴에서 가벼운 미소가 번졌다.


살다 살다 전기를 도둑맞는 일도 다 있다니....

그러나, 전기 도둑은 애교에 불과할 정도로 기괴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멕시코!!! 상상 그 이상의 일들이 일어나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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