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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seniya Aug 12. 2022

소박한 만찬

상처를 견뎌나가다

 갑자기 어두워진 검은 하늘 속에 위협적인 소리로 으르렁 되는 번개와 함께 6월의 소낙비가 거침없이 내렸다. 집 나간 남편이 돌아온 것보다 반가운 비다. 주로 우리 집은 부부싸움이 일어나면 남편이 집을 나간다. 아마도 번개처럼 으르렁 거리는 위협적인 소나기를 퍼부어 대는 잔소리를  피하기 위하여 자신만의 평화를 찾아 숨어드는 시간이 필요해 부부 싸움이라는 구실을 만들어 숨어 버리는 것일 것이다. 그래도 뻔뻔함은 없어 이제 그만 들어오라는 전화소리에 아무렇지 않게 들어온다.


비가 많이 오기로 유명한 이곳에 비를 기다려야 할  정도로 비 오는 날이 작년부터 줄어들기 시작했다. 지구 곳곳에 이상기온이 생겨나듯이 이곳에도 이상기온이 시작된 것이다.

6월 들어 연일 100도를 넘나드는 타는듯한 더위가 시작되었다. 예년에 비해 일찍 시작된 무더위다. 이른 오전부터 시작되는  타는듯한 더위로 인해 하루 중 가장 시원한 온도인 새벽녘에야 잠시 밖을 둘러볼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 되었다.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무릎까지 올라오는 비닐 장화를 신고 밖을 나간다. 밖은 아직 해가 뜨지 않았지만,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캄캄하지는 않았다. 천천히 스며드는 새벽 공기를 들이마시며  여기저기 거닐어 본다.



새벽 공기는 어느 계절이나 청량감을 준다. 밤새 촉촉이 내려앉은듯한 이슬방울들이 초록의 싱그러움 위에 살포시 앉아있다. 가끔 사람들이 자는 틈을 타 새벽녘에 어슬렁어슬렁 이곳저곳 먹잇감을 구하려 다니는 사슴 가족과 눈이 마주치기도 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는 않는다. 새벽녘에 나타난 서로의 존재를  무시한 채 제 갈길을 간다. 참 시크한 관계다.

이미 사람들에게 단련된 사슴들은 자신들을 헤치지 않는다는 본능적인  경험으로 자신들의 이 중요한 생리적인 의식을 계속 이어간다. 그들이 좋아하는 디저트로 열심히 가꿔 놓은 넉아웃 장미 꽃들을 거침없이 뽑아 먹고 난 후인 듯, 분명히 어제까지 보이던 빨간색의 장미 무리들이 사라지고 없다. 또 이들의 소행이다. 어떨 땐 그 참혹한 현장에서 서로 눈이 마주치기도 하지만, 사슴들은 먹는 것을 중단하지는 않는다. 배고픔을 채우고서야 어슬렁어슬렁 숲으로 돌아간다. 사실 그들을 쫓아낼 엄두도 내지 못한다.

가족인 듯한 다섯 마리가 무리를 지어서 다니기도 하지만, 그중의 우두머리인 가장 큰 사슴은 가까이서 보면 상당히 큰 등치라서 가까이 갈 엄두도 나지 않는다. 가만히 먼 발꿈치서 흩어졌던 그들의  무리가 다 모여  그들의 둥지로 가는 것만 멀뚱히 쳐다 볼뿐 그들을 쫓아내지는 못했다.

그래, 너희들도 살아야지. 사슴들의 보금자리였던 그들의 숲을 인간의 주거지로 만들기 위해  나무들을 베어가며 조금씩 인간의 영역을 넓혀 가는 동안, 그들의 터전을 잃게 된 사슴들의 입장에선 당연한 것을 자비로운 선심을 쓰듯 애써  머리로는 이해를 하지만 기분은 이해하기가 힘들다. 애써 가꾸어 놓은 장미들이 자고 일어나면 그들의 식사감으로  하나둘씩 사라지는  이유를 알게 되면 속이 하루 종일 상하고 만다.

사람이 좋아하는 건 사슴들도 다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속는다. 속을 줄 알면서도  그다음 해에 또 열심히 이쁜 장미 정원을 상상하면서 화원을 드나들며 장미나무를 들여온다. 수 년째 속아오는 일이지만 그 상상이 두는 짧은 행복감이 좋아 헛질을 하고 만다. 속는 줄 알면서 또 속아주는 이 구역에서 일어나는 반복적인 일상이다.


나에게는 벅찰 정도로 넓은 땅 안에서 이리저리 두서도 없이 계획도 없이 이곳저곳을 생각 없이 둘러본다. 비를 기다리다 지치는 날엔 작은 식물들도 목말라할 듯하여 시원한 물 샤워로 한 바탕 목을 적셔주기도 하고, 더위는 아랑곳하지 않듯 하염없이 삐죽삐죽 올라 와 있는 잡초들을 손으로 뽑아내기도 한다. 세상에서 보면 참으로 성과 없는 일 같아 보이는 일들이다. 잡초가 잡초인 이유는 뽑아도 뽑아도 그다음 날 또다시 살아나 있는 질기고도 질긴 생명력 때문이다.

 이 할 일 없어 보이는  여유가 보이지 않는 아우성과 수많은 스트레스로부터 나를 진정시켜주는 놀라운 효과가 있다. 잡초를 뽑아내는 일들은 세상으로부터 들어온 작은 생채기들을 뽑아내는 일이기도 했다. 인간 세상에서 묻혀온 수많은  생채기들을 생각 없이 뽑아내는 잡초들로부터 위안을 받아낸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생각을 덜어내는 일이 생각을 만들어내는 일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쉽지 않은 일이기는 하다. 생각 없이 산다는 것은 머리를 쓰지 않는다는 말인데,  그 생각으로 모든 상상과 망상이 만들어져 사람들을 구속한다는 걸 나이가 들어서야 서서히 조금씩 이해가 되고 있기 때문에다. 생각에서 벗어나는 일..  하지 않는 것이 무엇을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나이가 되었다. 늙어가는 것이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게으름을 피우다 남들보다 한 참 처진 후 , 남들이 일치감치 마감해 둔 일들을 부리나케 시작해 보았다. 욕심은 많고 게으른 나는 느린 농부가 되어 남들이 심는 것들을 여기저기 다 늦은 후에 심기 시작했다.


신발을 심어도 싹을 틔운다는 애틀랜타의 땅...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마지막 장면에 비비안 리가 타라의 흙을 손에 거머쥐고 타라의 땅으로 다시 돌아가는 결심을 하는 장면에서 나오는 그 비옥한 타라의 땅이다.


이사를 온 그 해에 우연히 한국 마켓에서 발견한 참나물 씨앗을 사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늘이 진 뒷마당 한편에 무심코 뿌려 놓고 한 참을 잊고 지냈다. 내가 무엇을 심어 놓은지도 까마득하게 잊고 지냈다. 어느 날, 문득 더운 여름에 나가보니 마당 한편에 푸릇하게 번져 있는 참나물을 발견했다.


한 번의 씨뿌림으로 지금까지 그 자손들이 향기로운 나물을 선사해 주고 그 작은 씨앗으로 여러 명에게 씨앗 나눔을 할 수 있었다. 작은 모종을 이웃집 언니에게 이사 보낸 후, 햇빛이 많은 그 집에서 오히려 더 잘  자라 나에게로 다시 돌아오는 경우도 있었다.


오후가 되면 멋대로 뿌려 놓은 텃밭에서 작은 먹을거리를 또 뽑아낼 것이다.

이번에는 뽑아내서 버리는 것이 아니라 뽑아낸 것들을 일용할 양식으로 쓸 것이다.

부지런한 농부들에 비하면 턱 없는 수확량과 볼품없는 크기지만, 고명에 올라갈 소량의 고수를 사기 위해 마트를 가는 수고를 덜어 줄 정도의 효자노릇을 해 주는 뿌듯함은 가져다준다. 고수 하나 사러 마트를 갔다 다른 불필요한 것들을 한 아름 또 담아오는 나의 습관으로 본다면 또 다른 절약을 가져다주는 경제적인 효과도 있기에 일석이조다.


이 작은 텃밭에서 나오는 야채들과 정원에서 나오는 꽃들로 나는 나만의 만찬을 즐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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