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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seniya Oct 25. 2022

우엉과 연근

아버지의 음식들

비가 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기다려지는 음식들이 있다. 익은 김치를  쏭쏭 썰어 대충 밀가루에 개어 기름에 부쳐내는  김치전과  부추가 듬뿍 들어간 수제비가  그중의 대표적인 음식들이 아니지 싶다.




아버지 역시 비가 오는 주말이면 김치전이나 수제비가 아닌,   기름을 덜어내 김을 할 준비를 했다. 

비와 튀김.

김치전만큼이나 환상적인 궁합이다.

예나 지금이나 튀김은 꽤나 번거스러운 음식 중  하나다.


 오징어나 새우튀김 같은 고급 재료를 사용한 튀김도 당연히 맛이 있었지만, 아버지의 튀김은  조금은 색달랐다.

수많은 튀김의 재료 중에 하필이면 , 어린아이들에게는 반찬으로도 손이 잘 안 가는 재료들인 우엉과 연근으로 김을 해 주는 것이었다.

아마도 그때는  단가가 비싸지 않고 손쉽게 구하기 쉬운 재료들이 이런 종류의 뿌리채소였던 거 같다.


 새우튀김이나 오징어 튀김의 고급진 풍미로 자꾸 손이 가게 만드는 고급진   맛은 아니지만, 우엉과 연근이 김으로 둔갑을 하면 맛의 바삭함과 고소함은  또 다른 별미였다.

그래서 요즘도 가끔 비가 억수로 퍼붓는 날이면 아버지의 튀김들이 생각이 나곤 한다.


아버지의 음식 중에 정성이 들어가지 않은 음식들이 없지만, 먹거리가 빈약했던 그 시절,  값이 싼 재료들로 제비가 새끼들에게 먹이를 물어다 입에 넣어 주듯, 푸짐하게 먹이고 싶은 부모의 마음이 고스란히 들어있는 아버지의 음식이다.

튀김을 한 번 준비를 하기 시작하면 하루에 다 먹지 못할 정도의 많은 양튀겨놓는다.

 한 주가 시작되면 또 고단한 생활의 현장으로 나간다.


매달 돈이 들어오는 월급날이면 여지없이 아버지의 양손은 바빴다. 아이들에게 해 먹일 간식거리를 만들기 위한 재료들로 양손 한가득  검은 비닐 주머니 속에 꼭 차게 담겨 있었다. 얇은 월급봉투와는 달리 아버지의 양손은 항상 무거웠다.


엄마에겐 불만인 것들이 우리들에게는 입가에 미소를 짓게 만드는 아버지의 묘약...


그 때나 지금이나 엄청난 영양소에 비해 반찬으로는 손이 잘 안 가게 만드는 우엉과 연근. 지금에서야 뿌리채소들에 대한 영양에 대해 수 없이 이야기되고 있지만,  김밥에 들어가는 우엉을 제외하곤 아직도 일부러 찾는 재료는 아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 번거스러운 재료들을 가지고 다듬는데만 시간이 꽤 걸리는  그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우엉의 껍질을 벗겨내고  칼로 길게 채 썰듯 썰어 가느다랗게 만들어 놓은 다음, 먹기 좋은 크기로 라놓는다. 연근 역시 칼로 질을 긁어내어,  깨끗하고 뽀얀 속살을 드러내 놓게 손질한 다음 연탄구멍처럼 동글동글하게 라놓는다.

이렇게 손질된 재료를 마른 밀가루에 묻혀 놓고 감자전분과 밀가루를 섞어 걸쭉하게 튀김옷을  만들어 준비된 재료를 넣고 버무려 기름에 튀겨낸다.


모든 튀김이 그렇듯이  튀겨져 나올  그 시간이 제일 맛나다는 걸 알기에,  기름 앞에 모여드는 앙증맞은 입 속으로 들어가기 바쁘다.

한 손으로는 튀겨내느라 쁘고, 또 다른 손으론 연신 나의 입으로 먹기 좋은 크기의 튀김을 골라 쉴 새 없이 넣어주는 아버지의 바쁜 손과 달리, 아버지의 얼굴엔 미소가 떠나질 않는다.

그 미소를 짓기 위해 한 달의 고단한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을 이다.


오늘도 비가 하염없이 줄줄 처량 맞게 내린다.

그 비를 바라보며, 한없이 숨찬 하루하루를 살아내느라 감정을 소비할 여유도 없어져 버린 삶을 잠시 내려놓고,  그 시절로 돌아가 본다. 지금에서야 느껴지는  아버지의 축 처진 어깨의 무게. 


자식을 키워보니 이제야 알겠다.

세상에서 보면 한 없이 작고 나약한 어깨였지만,  자식들에겐 한 없이 바다와 같은 사랑의 무게였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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