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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seniya Oct 28. 2022

아버지의 카페 라테

 이제 갓 스무 살 성인이 된  큰아들이 카페인이 몸에 좋지 않다는 이유로 아직도 커피를 입에 대지도 않고 있다.

맛으로만 먹는다기 보다 커피라는 그 분위기도 같이 마시는 그 낭만을 아들은 모르는 것 같아서 아쉬울 때가 있다.

아들이 나의 권유에도 커피를 마시지 않는 거에 비하면 비교적 일찍부터 커피 을 알아버렸던 나에게 아버지의 커피는 반백년이 된 금도 사랑이다.


친한 친구의 집에서 머나먼 미국에서 건너온 초이스 커피라는 인스턴트의 커피맛을 본 이후로,  커피와 인연을 맺은 나이가 고등학생이 돼서부터다.

고등학생 시절 비교적 부유하게 자란 친구들 덕분에,  그들 집에서 늘 만나는 먹거리였던 커피는,  내 인생의 청춘의 추억과 항상 등장하는 주인공이다. 지금도 커피와 컴퓨터 하나만 있으면 살 수 있을 것 같은 나의 최애 음식이다.


어느 순간부터 나의 커피는 아버지의 몫이 되어있었다.

늦잠을 자고 일어난 후에 어김없이 커피를 타서 나의 단잠이 아직 들 깬 것을 확인하고는, 말없이 책상 위에 올려놓고 살금살금 나가는 나의 아버지의 뒷모습이, 마치  주인 딸의 눈밖에 나지 않으려고 안감힘을 쓰는  머슴의 아들 같은 느낌이다. 아버지의 커피는 지금처럼 라떼라는 용어가 들어간 커피들이 익숙하지 않을 때,  항상 우유를 따뜻하게 데워서 맥심 골드라는 노란 포장의 고소한 인스턴트커피와 섞어 내 오곤 했다.




성격이 불 같은 딸의 화를 가라앉히고 위로하기 위해 동네 분위기 좋은 카페로 불러들여 커피 한 잔을 시켜 놓고 건방진 딸을 기다리는 아버지. 조용조용한 말투로 나를 달래는 아버지, 그렇게 달콤한 커피와 함께 나의 성질은 누그러지곤 했었다.

 새벽까지 일을 하느라 같은 집에 살면서도 딸의 얼굴을 보기가 힘들었던 아버지는, 잠시 쉬어가라는 의미로 바쁜 딸을  일부러 커피를 마시자고 약속을 잡아 불러냈다. 젊은이들이 넘쳐나는 핫한 곳에 위치한 커피집에서 딸을 기다리는 아버지였다.


낭만을 달고 살지만 삶의 힘듦으로 인해 자신의 성정대로 살지 못했던 나의 아버지는,  그 낭만을 아버지는 딸에게서 보상받았다. 해외 일정이 잡혀 있는 날이면 나는 어김없이 아버지의 동행을 기정사실화 시켰고, 당연히 아버지는 공식적인 나의 짐꾼으로 나의 옆 자석을 차지하곤 했다.

엄마도 모르게 아버지와의 밀회가 시작된다.


좋은 노천카페가 있는 곳에 아버지와 나는 물 만난 고기처럼 카페 한 칸을 차지하고 있다.

모스크바의 핫한  아르바트 거리의 노천카페에도 나와 아버지의 흔적이 있고, 모스크바 크레믈린 궁 근처에서 일하는 친구가 데리고 간 노천카페에도 우리의 흔적들이 그대로 남아있다.

동경 시부야의 중심가 하라주쿠의 세련된 노천카페에도 아버지와 나의 밀회의  증거가 있다.

밀회의 주인공처럼 남몰래 애달파하는 밀회가 아니라, 누가 보든 상관없이 당당하게  룰루랄라 콧노래를 불러 가며 부녀는 팔짱을 끼고 이곳저곳을 남들이 보란 듯이 활개를 치고 다녔다. 어쨌든 엄마의 입장에선 아무것도 모르니 밀회는 맞다.


바늘과 실처럼 항상 같이 했던 아버지와 나는 결혼을 하고 나서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남편은 나와 아버지의 이런 사이를 보고 이해를 하지 못했다. 어린 시절 가뭄에 콩 나듯 한 번씩 아버지가 아들들을 데리고 나갔지만, 짜장면이 먹고 싶던 아이들의 생각과는 달리 당신 자신이 좋아하는 해장국을 시켜 버려 속상했던 남편. 그 마음이 야속해 아직 까지도 그 멍울이 남아있는 남편이었다. 자식에 대한 애정표현이라고는 일도 없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그 애정 표현이 자신의 자식들인 나의 아이들에게 그대로 물려받은 것을 알고 난 후엔 부러워하기도 했다.



결혼을 하고 나후, 나는 부모님과 일 년을 같이 살았다.

바늘과 실처럼 항상 같이 했던 아버지와 나는  결혼을 하고 나서도 달라진 것은 없었다.


여지없이 아침이 되면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커피 냄새가 먼저 들어왔다. 아버지가 또 딸을 깨우기 위해 커피를 들고 온다.


평생을 아버진 딸을 보챈 적이 없었다.

딸의 모든 것을 기다려 준다. 그것이 비록 잘못된 결정이었을지라도, 그 결과로 초라해진 딸이라도 아무 이유 없이 슬픔을 숨기고 말없이 받아준다.


부모!!!! 무엇이 그토록 자식을  희생을 하도록 만드는 것일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에게 해 줄 수 있는 게 너무 없어 너무 슬프다는 아버지의 딸에 대한 고백.

사랑한다는 말로도 부족해 자신의 무능으로 힘들어했을 자식들에게 건네지 못하는 편지한 줄로 그 무한한 사랑을 표현하는 아버지.


아버지의 커피는 값을 매길 수가 없다.


지금은 아버지의 커피가 딸의 커피로 바뀌었다.

이른 아침 학교를 가기 전에, 아버지가 타다 날랐던  우유가 들어간 카페 라테는 더 이상 아니지만, 원두의 고소한 커피를 내려 아직 잠에서 깨지 않은 엄마의 머리맡에 살포시 내려놓고 나간다. 엄마의 결혼생활의 힘듦을 말없이 무심하게 커피 한잔으로 표현하는 딸.

아버지의 커피를 이젠 딸이 대신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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