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seniya Aug 09. 2020

내가 아직도 응답하라 88을 보지 못하는 이유 2.

지워지지 않는 기억이라면  기억할 수밖에...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ko/3/35/%EC%9D%91%EB%8B%B5%ED%95%98%EB%9D%BC_1988.jpg

4학년 마지막 학기에  몇 개의 전공과목을 빼곤 나머지 과목들을 미리 다 들어놓은 그는 꽤 성실한 학생이었다.

그는 나의 공부 또한 방해하지 않았고 진심으로 내가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길 바랬다.

대학로에서 쌍문동까지 지하철을 타고 갔다가 다시 지하철을 타고 아현동으로 돌아오는 코스는 항상 정해진 코스였는데 쌍문 지하철역을 나와서 그의 집을 가려면 쌍문 시장을 통과해야 했다. 그 시장 안에 김밥집 할머니가 파는 김밥은 아직도 생각날 만큼 기억에 남는 맛이다. 생각해 보면 참 단순한 일상이었다.


재채기와 사랑은  숨길 수 없다고 했다.

남자 친구의 엄마는 자신의 아들이  만나는 내가 무척 궁금했을  것이다. 남자 친구 엄마의 초대로 쌍문동 집을 방문한 그 날 ,  나를 반겨준 사람은 할머니와 그 집 삽살개뿐이었다.

나를 노골적으로 반대했던 그들의 식구는 내가 앉아 있는 자리를 가시 방석으로 만들었다. 그 모멸감으로 나는 그 자리를 박차고 나오고 싶었지만,  어떻게든 분위기를 바꿔보려는 그의 노력이 가상해서 꾹 참았다.

대문을 나서자마자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나의 아버지가 떠올랐다.

밤늦은 딸이 걱정되어 지하철역까지 나와 나를 기다리던 아버지와 우연히 날 데려다주던 남자 친구와 마주쳤을 때 아버지는 근처 포장마차로 우리를 데리고 갔다.

좋은 말만 해 주었던 우리 아버지, 그러나 남자 친구가 가고 난 후 둘이 남았을 때 아버지는 타이르듯이 조용하게 말했다.

그만 만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그냥 공부나 열심히 했으면 좋겠다고... 아마도 아버지는  딸이 상처 받을 걸 알았을까?



남자 친구의 엄마는 남편과의 불화로  남인 아들에게 모든 것이 쏠려있을 정도로 그에 대한 기대가 컸다. 남편에게 기댈 수 없는 대신 모든 걸 장남과 상의하고 장남을 위해 사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여장부였다. 동대문 상가의 포목점을 5개나 운영하고 있는 재력가이기도 했으니 샛말로 금수저다. 

어느 날 남자 친구는  나를 엄마에게 소개해주고 싶어 했다. 그런데 난 정말 자신이 없었다. 아마도 내심 내가 누군지 궁금했을 것이다.

지금의 내 나이보다 10살은 어렸을 남자 친구의 엄마의 심정을 그때는 몰랐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나도 자식키우는  입장에서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좀 더 나은 사람, 누구나 인정하는 그런 사람을 아들이 만나기를 누구나 바라는 거는 인지상정이 닌가?

하지만 내가 그 대상이 될 경우 나의 상처 또한  클 수밖에 없었다.

교양을 가장한 그녀의 교묘한 친절, 그러나 그 안의 속내를 느낄 수 있을 정도의 차가움 속에 나의 자존감은 버티기 힘들어졌다.

그런 그녀와 나사이의 힘겨루기에서 그는 분명히 힘들었을 테고 나를 증명해 보이고 싶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젊은 시절 강한 호르몬의 영향으로 그런 낭만적인 사랑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생각해도  그는 나에게 너무 잘해 주었고, 나로 인한 세상과의 잣대와도 무던히 힘겹게 싸워왔을 테니까..

그런 생활이 계속 이어지면서 내가 진정으로 좋은 대학에 들어가길 바랬고,  그래서 기와  세상의 잣대로부터 동등해지  바랬다.

그러나 가족들 특히 엄마의 반대는 쉽게 뿌리치지  못했을 거다. 나를 나고 온 날에는 술을 마시며  혼자서 늦은 밤까지 아들을 기다리며 무언의 강한 반대를 표현하는 엄마를 말이다.


내가 너무 보고 싶어  전화를 했다고 부대 안에 라일락 꽃이 었는데 향기너무 좋아서, 꽃을 꺾어 손편지에 붙여 나에게 편지를 썼다고 비웃지 말라고 하면서 수줍게 전화를 ,  그 날의 라일락 향기가 무색하게 우린 헤어졌다.



분명 내가 차인 거 같은데 항상 내가 그를 찬 거 같은 분이 들었다.

나는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았고,  그는 원하는 만큼의 나의 마음을 얻지 못했기 때문일까? 아마도 그는 후회가 없을 것이고 나는 미련이 남았을 것이다.

외모 빼고 다 가졌던 , 난 뭐하나 제대로 가진 것도 었지만 후회보단 미안함이 더 드는 만남이었다.

그때만 해도 학벌의 벽은 높았고 ,  현실에 안주해서 어떻게 해서라도 잘 보이고 싶지 않았던 나와의 대립이 결국은 헤어짐으로 어졌지만,  시리고 아팠던  그러나  아름다웠던 청춘가운데에서 좋은 경험으로 아직도 남아있다.


지금쯤 그는 어느 하늘 아래  사회적으로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을 거라 짐작해 본다.

  어두운 영화관에서의  번뜩이던 그의 눈빛과 , 아무리 잘 타고난 운명이라도 스스로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그의 말에서 느꼈듯이, 그는 그렇게 노력하며 살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에게는  완전하게 자신의 뒤를 밀어주는 헌신적인 엄마가 있었다.


 깍쟁이 같고 도도했던 내가 다루기 힘든 애라서 너무 화가 났다는 그의 엄마에게 나는 지금 시어머니에게 치를 담가주고 고스톱 친구가 되어   집안의 분위기 메이커가 될 정도로 살가며느리이며, 아들의 기를 다 뺏을 것 같아서 내가 싫은 이유라던 내가 자기 손으로 커피 나 못 뽑아 마시는 남편을 위해 새벽잠이 덜 깬 채 눈을  비비며 어나,   편의점의 1불의 커피라도 아끼려고  커피를 내리는  여자라는 걸 상상이나 하셨을까?

이렇듯 삶은 반전의 연속이다.

단지 그와의 인연이 거기까지였을 뿐.....

그리고, 지금  나는 외모만 되는 남편과 살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내가 아직도 응답하라 1988을 보지 못하는 이유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