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이 집을 봤을 때 집을 꾸미기가 참 난감하겠구나 생각했었다.보통은 정사각형으로 된 집들이 집을 꾸미기에는 훨씬 보편적이고 꾸며도 이쁘게 살아나는데, 이 집은 딱히 묘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집을 바꿀 수는 없으니 할 수 없지 싶었다.
일단 그나마 막혀있던 벽들이 뚫리니 한결 시원해 보이고 넓어 보이는 착시현상까지 일어난다. 거기에 기존의 칙칙하고 오래된 누런색의 페인트를 차가운 회색톤으로 전체적으로 칠하고 나니 집안은 훨씬 밝아지고 현대적으로 변했다.
동네 이웃 언니가 고쳐진 우리 집을 보고 놀랜다
이 언니는 산책하다 만난 동네 한국 언니인데, 비어 있는 우리 집을 보고 저 을씨년스러운 집에 과연 누가 이사 올지 내심 무척 궁금했다고 한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새로 이사 온 집주인이 한국 사람이어서 놀랬다고 했다.
집이 고쳐 지기 전에는 사람을 초대할 수도 없어 문 밖에서만 대화를 하다가, 주로 언니네 집에서 차를 마시고 수다를 떨었다. 집이 어느 정도 바뀌어지고 나서 언니를 초대하니, 그 전의 집을 알고 있는 언니가 그 집이 이렇게 바뀔 줄 몰랐다 하며 너무 이쁘다고 좋아했다.특히 비 오는 날, 커피를 마시면 너무 운치 있다고 좋아했다. 이웃 간의 정도 생기니 좋았다.
이 집에서 한 해를 지나다 보니 특히, 창을 통한 계절이 보이기 시작했다.
봄
만물이 겨울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켜고 살아날 준비를 하는 봄이 되면 , 거실 창을 통해서는 아직도 남아있는 겨울 끝자락의 눈 속에 작은 봉우리를 틔우고 피어나 있는 수선화가 노란 꽃봉오리를 내밀고 있다.
사방이 벚꽃이고 목련꽃이 피어난다. 안방 창문을 통해서는 뒷마당에 축 늘어진 겹벚꽃나무에서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시키고, 앞마당으로 난 창에서는 봄마다 싹이 트는 나무의 성장이 보였다.
여름
봄이 지나 여름이 다가오는 계절이 되면 내리는 비 또한 가슴속이 뻥 뚫릴 정도로 시원시원 빗줄기를 내린다.
비가 오는 소리를 직접 들으며, 나무에 스치며 타고 내리는 빗방울을 보는 느낌이란.....
그 나무들이 여름이 되기 시작하면, 녹음이 짙게 드리워져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고, 집을 푸른색으로 도배를 해 놓았다.
봄부터 피기 시작한 장미들이 여기저기 만개하기 시작한다.
가을
여름이 지나 매미들이 먼저 가을이 올 것이라는 걸 알려주듯이, 나무 위에서 시끄럽게 울기 시작한다.
땅 위에서는 맥문동의 보라색들이 여기저기 환상의 보라꽃을 내밀기 시작한다. 이 꽃 역시 조만간 가을이 올 거라고 알려주는 계절의 알림이다. 매미소리와 맥문동의 보라색 꽃이 서로 앞을 다투어 가을을 알리기 바쁘다.
가을이 무르익기 시작하면 자연은 화려한 옷을 바꿔 입기 시작한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색의 변화가 창을 통해 가을이 왔음을 알리고, 만추의 분위기를 느끼게도 해 주었다.
겨울
이 집으로 이사 온 첫해에 겨울에는, 거의 조지아에는 눈이 내리지 않는다는 풍문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엄청난 양의 눈이 내렸다. 엘에이에 살던 아이들은 눈이라고는 산 정상에나 가야 볼 수 있는 걸로 알고 있다가 , 학교의 휴교령까지 내려질 정도의 눈이 내리는 걸 보고, 그대로 동심으로 돌아갔다.
집 앞마당 비탈에서 눈사람을 만들고 눈썰매를 타고 놀았다. 상상이나 할 수 있는 일이었나 싶다.
눈 덮인 뒷마당의 숲들은 겨울동화에 나오는 숲 속의 겨울 집이 된다.
봄을 지나 겨울에 이르기까지 계절의 변화를 고스란히 볼 수 있는 행운을 나는 이 집에서 맛보고 있다.
자연이 주는 이 신비한 축복감은 어디에다 비교할 수 조차 없이 황홀하다.
매일매일 조금씩 조금씩 변하는 자연의 형용색색의 변화 앞에서 내 마음이 또 한 번 치유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