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야와의 갈등이 시작되면서 나는 사샤네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늘었고, 가쨔는 일이 끝나고 나면 집에서 가까운 사샤네 집을 들리곤 했다.
올야는 맏언니답게 동생들을 챙기기도 했지만, 그 안에는 무소불위의 힘 같은 것도 작용하였다.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받고 있어서 그런지 말 하나도 조심스럽게 꺼내놓곤 했다.
사샤는 따뜻한 사촌이긴 했지만 , 올야만큼이나 고집이 세고 직설적이었다. 사샤 역시 가쨔 누나를 도와주고 있었다.
가쨔는사춘기의 정점에 들어선 큰아들을 비롯해 만만치 않은 두 아들을 키우고 있었는데, 막내아들은 아직 애기 티도 벗어나지 못한 5살짜리 남자아이였다.
여자 혼자 남자아이 셋을 키운다는 것은 이 세상이나 저세상이나마찬가지 세상인가 보다. 형제들이 어떻게라도 가쨔를 돕고 있었다.
과연 팔자 도둑은 못하는 것일까?
어느 날 가쨔가 올야 언니네 들렸다 돌아갔을 때 올야는 그녀를 보고 기가 찼는지 혀를 찼었다.
어쩌다가 저리 팔자가 더러워졌는지 모르겠다고..
올야의 그녀에 대한 넋두리가 시작되었다.
어릴 때 집 밖에 있는 똥독간에 빠진 적이 있는데, 옛 어른들이 그런 말을 했다고 한다.
똥독간에 빠진 사람은 팔자가 세다고, 그래서 그런가....
그리고 나서 똥독이 올라 죽다 살아났다 했다.
똥독간에 빠진 것이 무색할 정도로 가쨔의 미모는 빛이 났다. 남자들 여럿 울렸다 했다.
올야와는 달리 자그마한 체구에 여성스럽게 이쁘게 생긴 가쨔는 남자 보는 눈이 없는 건지, 옛 어른들 말대로 팔자가 그렇게 흘러간 건지는 모르겠으나, 지금까지의 상황으로 보면 좋은 팔자라고는 말 못 하겠다. 아니 누가 봐도 센 팔자였다.
그 당시 러시아 상황에 누구랄 것도 없이 팔자들이 오십 보
백보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팔자는 측은할 정도로 기구했다.
빗나간 사랑의 콩깍지
젊은 시절 가쨔는 꽃다운 나이에 사랑해서는 안 될 남자를 사랑했었다.
그 남자는 이미 가정을 가진 남자였지만, 그녀를 만나기 위해 자신이 유부남이라는 걸 속였다. 사랑이란 것이 무르익을 대로 익어 버려 정점에 다다르면, 그 어떤 시련이라도 같이 할 수 있을 거란 착각을 하게 마련이다. 가쨔 역시도 그랬을 것이다. 가지 말아야 할 길임을 알면서도, 너무 멀리 와 버린 빗나간 사랑을 진실한 사랑이라고 믿었다. 그 남자의 아이가 생기자 가쨔는 그 남자가 자신에게 올 거라는 또 다른 착각을 했었다. 아이만 낳으면.... 그러나 그 남자는 자신의 가정을 지키기 위해 그녀와 그의 아들을 버렸다.
그녀는 혼자서 애를 낳았고, 고모는 딸의 불행에 말없이 그녀와 그 아이를 보듬었다. 그 아이의 이름은 알료사였다.
알료사의 아버지는 그녀와 마찬가지로 한국사람이었다.
처참한 비극의 시작과 끝
가쨔는 혼자서 아들을 키우며 고모네 집에서 살게 되었다. 그러자 그 동네 사는 중앙아시아 출신 러시아 남자가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다. 가쨔의 아들까지도 품을 수 있는 사랑은 그러나 비극으로 끝나고 말았다.
자신과 자신의 아이까지도 책임질 수 있다고 말한 그의 말을 믿고, 가쨔는 그 남자와 결혼을 했다. 그 남자와 아들을 둘을 더 낳고 살면서, 갈등은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그럴 때마다 부부 싸움을 하는 날도 부지기수로 늘어났다. 그 원인은 대부분 큰 아들 알료사였다. 카자키 남자들 성격은 만만치 않았다. 그에 못지않게 가짜도 온순하지는 않았다.
부부 싸움이 시작되면 부부가 끝을 볼 정도로 갈 데까지 가는 극단적인 경우가 많았는데 , 그 날 역시 평소와 같이 말다툼이 시작되었다.
가쨔는 방안에 있었고, 남자는 부엌에 있었다. 가쨔집은 방과 부엌이 문으로 분리되어 있었다.
남자는 부부싸움의 끝을 보기 위해 한 번만 더하면 불을 질러 죽을 거라고 했다. 그녀는 해 볼 테면 마음대로 해보라고 막갈 때까지 갔는데, 그 말하고 채 1분도 안지나 남자의 비명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가쨔는 장난이려니 생각하고 나가보지도 않았다. 그녀도 성질이 날대로 나버린 상태였다. 잠시 후, 어린아이인 막내아들이 그 광경을 지켜보고 엄마에게 달려와 그대로 흉내를 냈다. 그제야 가쨔가 나가보니 , 남자의 온몸에 이미 불이 붙어 남자는 거의 타 죽어가고 있었다.
이 비극을 막내아들 블라직은 다 기억하고 있었다.
남자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너무 심하게 화상을 입어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다.
남겨진 비극의 씨앗
그 부부싸움의 비극으로 가쨔의 인생은 더욱 힘들어지게 되었는데, 엎친데 겹친 격으로 남겨진 세 아들의 관계 또한 그녀에게는 힘겹게 넘어야 할 산이였다. 아버지가 다른 큰 아들과 밑에 두 형제들은 , 서로 두 패로 갈려서 형제들의 싸움이 시작되면, 러시아 놈 , 한국 놈 , 이러고 싸움을 했다.
둘째 아들이 아버지를 닮아 만만치 않은 성격이었는데, 큰 아들은 이미 삐뚤어질 데로 삐뚤어져 가쨔의 속을 엄청 썩이고 있었다. 집안에서도 겉도는 아이는 집에 붙어 있지를 않았고, 동네의 껄렁껄렁한 애들이랑 어울려 다니며 해가 지면 잠이나 자러 들어왔다. 나도 한 번씩 그 동네에서 알료사의 무리들과 마주치면 , 그 불량스러움에 섬찟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가여운 가쨔는 남편 복을 떠나 아들도 그녀 인생에는 버거워 보였다. 아들들도 이미 엄마의 손에 좌지우지 될 상황이 아니었다.
삶이 녹녹지 않은 것도 있지만, 그녀의 비극과 가난은 그녀를 더욱 비참하게 하였고 , 그녀의 자존심은 바닥을 치고 있어서 집 밖을 나오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가쨔는 이미 우울증으로 인한 게으름과, 삶에 대한 무기력감이 같이 다가온 상황이 아닌가 싶었다.
가쨔의 집을 둘러보면 움막도 그것보단 깨끗했을 것 같았다. 집의 상황이 그녀의 어지러운 마음 상황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아렸다.
후에 내가 러시아를 떠나 올 때, 그녀는 이미 커버린 큰 아들을 어디라도 맡기고 싶어 했지만, 아무도 그를 원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