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가 보이는 카사블랑카

by kseniya

예준네가 가고 나서 교회서 새로 만난 사람들과 자주 어울리긴 했지만 그 공허함을 지워나가기는 쉽지 않았다.

그들은 내가 살고 있는 곳과는 조금은 멀리 떨어진 한국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인 오따이 메사에 집이 있었다.

그 당시 띠후아나는 미국과의 국경이 내가 살고 있는 센트로가 있는 소나 리오 지역에 가까이 위치해 있는 산 이시드로 검문소와 오따이 메사에 위치해 있는 오따이 검문소 이렇게 두 군데에 자리하고 있었다.

주로 주재원들의 회사가 위치 해 있고 띠후아나에서 가장 큰 대학이 위치해 있는 오따이 메사 지역에 주재원들의 가족들이 그들만의 그룹으로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었다.

내가 처음 하숙집을 이용한 곳도 그곳에 위치해 있었다.

나 홀로 센트로 지역에 홀로 떨어져 있어서 한국사람들과 접촉은 예준네외에는 거의 없었다.


예준네는 미국으로 들어가고 난 후, 한동안 교회를 나오기는 했다. 미국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미국에 있는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자, 교회에 남아있는 여러 명의 사람들이 있었지만 긴밀하게 지내기는 쉽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와는 다른 나이 때의 젊은 사람들의 가족은 내가 머물렀던 하숙집 시동생을 주축이 되어 모두 그의 친구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 하숙집 시동생네 부부는 남이 있는 곳에서의 이미지는 수더분하니 세상 착한 사람들로 행동을 하고 있었다. 그들의 그 더러운 거짓 속내를 감춘 채 행동을 했기에, 나처럼 그들의 속속들이 겪은 사람 이외에는 그들에게 속아 넘어가기 일수였다.

그는 교회에서 나를 마주쳐도 세상 순한 사람처럼 행동했다.

파라과이에서의 이민 온 사람들로 형성이 되어 오랫동안 그들만의 관계가 있는 것도 한 몫하는 부분이기도 했다.

예준네가 빠져나간 교회는 예전과 다르게 썰렁했다.


교회를 마치고 난 후, 곧바로 우리는 밖으로 나가기 시작하였다.

교회가 있는 그곳을 자주 들러 보다 보니 미처 가보지 않았던 도시의 안쪽에 어떤 동네가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이 곳 저곳을 기웃거리다 보니 한적하고 깨끗한 한 바닷가 동네가 나왔다.

동네의 끝 쪽에는 태평양 바다가 길게 늘어서 있는 모래사장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마치 그들만의 바닷가처럼 동네를 감싸고 깊게 숨어있었다.

바닷가를 주변으로는 크고 화려한 대저택들이 미국처럼 해안선을 따라 줄지어 있었다. 그 위로는 작은 단위들의 아파트들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그중의 한 곳이 막바지 공사를 하고 있었다.

남편은 평상시 이런 공사현장에 관심이 많아 그냥 지나치지 않는 사람이었다. 아파트 내부도 궁금해서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 다가가니 자기가 아파트 주인이라고 소개를 하였다.

조만간 집이 마무리되면 아파트를 렌트로 내놓을 계획이라고 하였다.

아파트 내부를 좀 볼 수 있는고 물어보니 무뚝뚝한 독일식 영어를 하던 독일에서 왔다는 이 남자가 우리를 아파트 안으로 안내했다.

총 여섯 유닛으로 구성되어 있는 3층짜리 아파트는 2층과 3층의 가격차이가 있었다.

2층에서 본 바닷가는 아파트 현관문을 나서 복도에서 바다가 보였지만, 3층에서는 방 안에서 태평양의 푸른 바다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방 안에서 펼쳐지는 바닷가!!!!

상상 그 이상이었다.

가슴이 뻥 뚫리는 시원한 느낌...


아파트를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그 집이 눈앞에 아른거리기 시작했다.

남편은 이 곳이 마음에 들면 이사를 하는 것도 생각을 해 보자고 했다.

우리는 모든 것이 즉흥적이었다.

계획적이라기보다는 그 순간순간 충실하는 이방인 같은 삶은 이 곳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참 다른 것들은 맞지 않는데 이런 것들은 어찌나 잘 맞는지 바로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다음 주 다시 오기로 하고 아쉬운 발걸음을 집으로 향해 돌렸다.


다음 일요일이 되자, 우리는 바로 그 아파트로 발길을 돌렸다.

같은 자리에서 부지런히 막바지 작업을 하던 그가 보였다.

그는 우리를 보고 반가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아파트를 렌트하고 싶은데 방을 한 번 더 보고 싶다고 했다. 그는 우리의 제안에 흔쾌히 응하면서 그 사이 몇 군데는 이미 나갔다고 했다. 3층에 한 군데와 2층에 두 군데가 남아 있으니 둘 중의 하나를 택하라고 했다. 그러나 3층과 2층의 가격차이는 생각보다 차이가 많이 났다.

뷰의 차이라고나 할까? 많은 고민 끝에 2층 코너에 위치한 아파트를 계약하기로 하고 계약금을 지불하고 돌아왔다.

꿈에서나 가능 할 것 같았던 바닷가가 보이는 곳에 우리가 살게 된 것이다.

온통 사방이 하얗게 꾸며져 있던 아파트 내부 또한 나에겐 설렘을 동반한 꿈같은 일이었다.

꿈은 이루어지는 것인지 부푼 마음을 안고, 얼마 후 우리는 이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이제 또 다른 새로운 환경에서 일시적인 일상을 살아나가야 했다.


동네의 작은 숨겨진 계단길을 이용해서 다다르는 바닷가는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아침마다 동네 사람들의 산책길이 되어주는 이른 새벽의 뽀얗게 안개가 끼어있는 흐린 바다의 해안가는 예술이었고, 동네 사람들만의 프라이빗한 비치가 되었다.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부부들, 새벽 운동을 하는 젊은 사람들... 전혀 다른 세상의 다른 광경이었다.


멕시코에 살면서 그전까지는 주말이 되면, 항상 남편은 아무 데도 나가지 못하고 집에서만 5일 내내 갇혀 지내는 나와 아이들을 위해 무조건 밖으로 나가곤 했었다.

밖이라고 하는 것이 끝없이 펼쳐져 있는 바닷가가 다 였지만..

그 바다를 이젠 집에서 5분 거리에서 편안하게 갈 수 있었다.

큰 아이의 자전거를 가르치기 위해서 모래사장에 줄을 묶어 놓고 가르치는 모습은 보기 드문 일상의 여유였다.

그 모습은 인생의 한 폭의 그림이 되었다.

틈만 나면 우리는 바닷가에 나가서 바다를 만끽하다 돌아왔다. 동네의 바다가 지겨울 무렵이면 더 아래쪽으로 차를 몰고 나가 또 다른 바다를 만나고 돌아오는 일상이 주가 되었다.


나는 항상 남들이 경험하기 힘든 순간들 속에서도 남들이 부러워하는 순간까지도 경험을 하는 팔자를 타고나서 그런지, 그 힘든 과정 안에서도 쉽지 않은 경험들을 하곤 했다.

속에 있는 보이지 않는 고통은 모르고,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에 부러워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 속에 있는 고통을 알면 그렇게 부러워할 것도 아닌 일들이 태반인데도 말이다.

그렇게 나는 기약할 수 없는 희망의 불빛이 꺼져 가려는 순간에 또다시 희망을 붙들어 매 보려는 평범하지 않은 일상과 마주하며 바닷가가 보이는 그 집에서 살았다.

말 그대로 바닷가의 하얀 집, 카사블랑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