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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코파이.
그 이름만 들어도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부드러운 마시멜로와 초콜릿의 조화, 어린 시절 책상 위에서 펼쳐지던 소소한 행복. 군인들에겐 PX의 단골손님이자, 친구들과 나눠 먹던 K-간식의 대명사. 그 포장지를 펼치면 늘 설렘이 따라왔다.
그런데 얼마 전, SNS에서 본 초등학생의 초코파이 이야기에 나는 한바탕 웃고 말았다.
포장지에 쓰인 한자 情 을 그 아이는 '아홉'으로 읽었다는 거다.
'초코파이 아홉'이라니.
마치 봉지 안에 정확히 아홉 개가 들어있을 것 같은, 근거 없는 확신이 귀여웠다.
그 이야기를 읽고 웃다가 문득 깨달았다. 나도 세상을 이렇게 읽을 때가 많다는 걸.
글자를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내 마음이 원하는 대로 읽고, 때론 내 맘대로 번역까지 해버린다. 그 오해는 웃음을 주기도 하고, 어느 순간엔 위안을 가져다준다.
예를 들어, 길을 걷다 'LH 아파트'간판이 눈에 들어오면 나는 무심코 '내 아파트'라고 읽어본다.
"내 아파트가 많네."
그럴 때면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고, 그 순간만큼은 부동산 부자가 돼 본다. 혼자 웃고, 혼자 위안을 받는다. 세상은 잠시나마 내 편이 된다.
그런가 하면, 더 강력한 사건도 있었다. 남편과 드라이브를 하다 어느 조용한 시골 길가 플래카드에 큼지막하게 쓰인 문장을 봤다.
"장기숙박환영"
띄어쓰기 하나 없이 붙어 있는 그 문장을, 나는 망설임 없이 이렇게 읽었다.
"장기숙 환영"
순간, '장기숙… 누구지? 동네 유지인가?' 하는 생각이 스쳤다. 나는 고개를 살짝 돌려 남편에게 물었다.
"여보, 장기숙이 누굴까?"
남편은 잠시 나를 바라보더니, 참지 못하고 폭소를 터뜨렸다. 그리고 그 순간, 차 안은 웃음바다가 됐다.
그날 이후로 나는 그 플래카드가 떠오르거나, 길을 가다 여느 플래카드를 볼 때면, 어디선가 장기숙 씨가 손을 흔들며성대한 환영을 받는 장면을 떠올린다. 어쩌면 그 동네 명예시민쯤 되는 인물일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 상상만으로도 하루가 가벼워진다.
혹시라도 진짜 장기숙 씨가 이 글을 본다면… 연락 좀 주세요. 성대한 환영식을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이런 해프닝은 나만 겪는 게 아니다. 예전에 친구의 엄마가 어떤 차를 설명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 4 곱하기 4 차 있잖아!"
트럭 뒷면에 적힌 '4x4'를 보고 나온 말이었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엔 네모난 바퀴가 달린 차가 그려졌다. 주변은 웃음바다가 되었고, '4x4'라는 글자는 단순한 사륜구동 차량이 아니라 우리를 기발한 상상의 세계로 안내했다.
세상은 정답을 요구하는 시험지가 아니다. 가끔은 내 마음대로 읽어도 괜찮다. 초코파이의 '정'을 '아홉'으로, 'LH’를 ‘내 아파트'로, '장기숙박'을 '장기숙’'으로 읽는 그 순간, 세상은 내 손 안의 그림책이 된다.
글자가 조금 비틀려 들어오면 그 틈으로 웃음이 스며들고, 그 웃음은 하루를 포근한 담요처럼 감싸준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간판을 본다. 글자 그대로가 아니라, 내 마음이 먼저 그리는 그림으로. 초코파이 아홉 개를 세던그 아이처럼, 내 아파트가 많은 사람 마음처럼, '장기숙' 씨를 상상하며 웃던 그 순간처럼.
세상은 해석하기 나름이고, 그 해석은 언제나 나만의 이야기로 남는다.
세상은 그대로지만, 내 마음이 그려낸 풍경 속에서 나는 매일 다른 세상을 산다. 그리고 그 세상이, 조금이나마 각박한 삶의 위로가 되기도 한다.
여러분만의 장기숙 씨를 만나는 하루가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