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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것들은 이사할 때 찾는다

인생의 최대 물음표

by Susie 방글이




딸이 타주로 이사 가기 위해 짐을 싸기 시작했다.

방 안엔 상자들이 쌓이고, 옷과 책, 그리고 추억이 담긴 자잘한 물건들이 하나둘 정리되며 집은 점점 낯설어진다.


딸의 독립이라는 커다란 물음표가 내 마음을 조용히 누르고 있을 때, 문득 궁금해졌다.

"왜 잃어버린 물건은 꼭 이사할 때, 혹은 새로 산 직후에 나타나는 걸까?"

이건 단순한 우연일까, 아니면 삶이 우리에게 던지는 장난 섞인 퀴즈일까?


딸이 옷장 깊은 곳에서 오래된 스웨터를 꺼내며 묻는다.

"엄마, 이거 언제 샀지?"

그 순간, 몇 년 전 사라졌던 목걸이가 툭 떨어진다.

"어, 이게 왜 여기?"

우리는 동시에 웃었다.


이사할 때마다 이런 일은 꼭 생긴다.

잃어버린 물건들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상자 속이나 옷장 구석에서 고개를 내민다.

오래된 편지, 멈춘 시계, 어린 시절 울며 찾던 인형까지.

그들은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나, 여기 있었잖아."


나는 이런 현상에 세 가지 가설을 세워본다.


첫 번째, 우주는 타이밍의 달인이다.


우리가 새 물건을 사고, 이사를 결심하고, 마음을 정리하는 그 순간을 우주는 놓치지 않는다.

새 물건을 산 직후, 사라진 물건이 "이제 내 차례야!" 하며 등장한다.

이건 어쩌면, 우주가 꾸미는 소소한 코미디 쇼다.

우리는 진지하게 짐을 싸지만, 잃어버린 물건들은 그 틈에 등장하는 재치 있는 조연들이다.


두 번째, 시선이 달라진다.


이사할 때는 평소엔 보지 않던 구석을 들여다본다.

침대 밑, 옷장 맨 위 칸, 오래된 가방의 숨겨진 주머니.

사실 잃어버린 물건은 늘 거기 있었는데,

우리가 너무 바쁘고 무심해서 못 봤을 뿐이다.

이사란 결국, 공간을 정리하면서 마음을 정리하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세 번째, 물건에도 감정이 있다면?


터무니없지만, 그런 상상을 해본다.

물건들은 우리가 새것을 들이는 걸 살짝 질투한다.

"나를 잊고 다른 걸 사?" 하며 삐져 있다가,

결국 못 참고 다시 얼굴을 비춘다.

이사 때도 그렇다. "나를 두고 떠나려고?" 하며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 것처럼.


그러나.... 답은 여전히 없다.

그저 '그럴 수도 있겠다'는 미소만 남는다.


어쩌면 인생도 그렇다.

잃어버린 물건처럼, 사라졌다고 믿었던 것들이 어느 날 문득 우리 앞에 나타난다.

놓친 기회, 멀어진 인연, 혹은 잊었다고 생각한 마음이

다시 불쑥, 우리 삶 한편에서 얼굴을 내민다.


그때 우리는 잠시 멈춰 선다.

물음표 같던 시간이, 그 순간 느낌표로 바뀐다.


딸은 짐을 다 싸고 떠났다.

조용해진 집을 정리하다가, 나는 옷장 구석에서 커다란 박스 하나를 발견했다.


'이건 또 뭐지?'


테이프를 뜯자, 낡은 초등학교 공책들이 우르르 쏟아졌다.

삐뚤빼뚤한 글씨의 일기장, 크레파스로 칠한 그림일기,

"오늘 급식은 맛없었다. 하지만 김치는 맛있었다."

짧지만 진심 가득한 문장들이 가득했다.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동시에 살짝 어이가 없었다.

이걸 우리가 한국에서까지 배로 보냈다는 사실이.


그땐 짐을 부칠 때 '무게'보다 '부피'가 중요하다고 했다.

한 상자당 크기만 맞으면 뭐든 실을 수 있었다.

우리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결국 딸의 초등학교 추억 박스를 넣었다.


"이건 다시 꺼내 볼 거야."라고 하며.


배로 보낸 짐은 한 달쯤 걸려 도착했다.

그 긴 기다림 끝에,

다른 짐들은 자리를 잡았지만 이 박스는 늘 구석에 있었다.

이사 때마다 자리를 옮기며 따라온, 말 없는 가족처럼.


한 권을 펼치니 이런 문장이 보였다.

"오늘 엄마가 아웃백 빵에 버터를 발라줬다. 엄마는 요리를 잘 못한다."

어린 나이에도 이미 다 알고 있었구나. 이렇게 기록으로 다가올 줄은 몰랐다.


나는 그 공책을 덮으며 생각했다.

이사란, 짐을 옮기는 일이 아니라 기억을 재배치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 안에서 잃어버렸던 물건과 마음이,

한 달쯤의 시간차를 두고 다시 우리를 찾아온다.

삐뚤빼뚤한 글씨 속에 담긴 진심
피아니스트가 될 거라던 딸, 지금은 피아노보다 회사 컴퓨터 키보드를 더 잘 두드린다.

인생은 결국, 물음표와 느낌표의 반복이다.

그 둘이 번갈아 찾아오며 우리를 흔들고, 또 단단하게 만든다.


그러니 잃어버린 것이 있다면 너무 조급해하지 말자.

그건 아마, 당신의 삶 어딘가에서

조용히 타이밍을 재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삐뚤빼뚤한 글씨처럼, 조금은 어설프지만

확실한 느낌표로 다시 나타날 테니까.

제일 중요한 짐은 바로 나죠~ 라며 트럭 한가운데서 '귀요미 이삿짐’'포즈를 취하는 저분 ㅎㅎ

잃어버린 물건이 이사 때마다 나타나는 이유, 그건 아마 우리가 떠날 준비를 할 때라서일지도. 그래도 혹시 다른 이유 아시는 분, 연락 주세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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