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첫 문장
2020년, 세상이 멈췄다. 마스크와 거리 두기가 일상이 되었고, 채용 시장은 얼어붙었다. 눈보라 속에 길이 사라진 듯, 젊은이들의 발걸음은 멈춰 섰다.
영화학을 전공한 딸은 대학 졸업을 앞두고 영화 업계에서 꿈을 펼칠 준비에 한창이었다. 하지만 코로나로 영화 일은 거의 올스톱 상태였다. 딸이 쏟아부은 열정은 허공을 맴돌았고, 부모로서 딸을 바라보는 마음은 무거웠다. “이 험난한 시기에 딸이 길을 찾을 수 있을까?” 하루에도 몇 번씩 불안이 스쳤다.
졸업은 설렘과 기대로 빛나야 할 순간이었다. 꽃다발을 들고 웃으며 "이제 진짜 세상으로 나아가는구나"라고 축하했어야 할 때였다. 하지만 세상은 문을 걸어 잠갔다. 졸업식은 각자 개인의 행사로 조용히 지나갔고, 축제 같은 날은 멀게만 느껴졌다.
우리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 시절, 수많은 부모가 자식의 앞날을 걱정하며 같은 물음표를 떠올렸다.
조바심에 여러 회사에 지원서를 내고 초조하게 기다리던 딸에게, 뜻밖의 소식이 날아들었다. 영화와는 전혀 무관한 스타트업에서, 집에서 차로 열네 시간을 달려야만 닿을 낯선 도시에서의 오퍼였다. 순간, 그토록 간절히 기다리던 문이 열렸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차오르고, 안도와 환희가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드디어 기회가 왔구나!
하지만 곧 새로운 물음표가 고개를 들었다.
"전혀 생각지 못했던 분야인데?"
"너무 멀리 떨어져도 괜찮을까?"
"낯선 곳에서 외롭진 않을까?”
"내가 없어도 잘 살아갈까?"
심지어 남편은 "설마 라면만 먹는 건 아니겠지" 라며 농담 반으로 중얼거렸다.
코로나라는 불확실한 시기 속, 안전한 길은 보이지 않았다. 두려움이 커졌다. 하지만 나는 알았다. 부모의 걱정은 울타리가 될 수는 있어도, 벽이 되어선 안 된다는 걸. 울타리는 바람을 막아주지만, 벽은 햇빛마저 가려버린다. 내 불안이 딸의 날개를 꺾어선 안 된다는 걸.
딸은 담담히 말했다. "해보지 않으면 모르잖아. 해보다 아니다 싶으면 뭐... 다른 거 찾으면 되지"
그 말에 울컥했다. 물음표로 흔들리던 부모에게, 딸이 작은 느낌표를 건넸다.
남편과 나는 짐을 싣고 딸과 함께 그 도시로 향했다. 열네 시간의 고속도로 여정은 푸른 언덕을 지나 끝없는 평원과 옥수수밭을 거쳐 다시 구불구불한 언덕으로 이어졌다. 마시다 만 식은 커피, 플레이리스트 속 노래, 이런저런 대화가 섞여 그 여정은 어느새 우리의 또 다른 로드트립이 되었다.
우리는 도착하자마자 침대를 들이고, 부엌을 정리하고, 세제와 식기를 챙기며 분주히 움직였다. 어릴 때부터 늘 곁에 있던 토끼 인형까지 챙기니,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걸 들고 가나 싶어 웃음이 났다. 하지만 그 사소한 물건 하나하나가 결국 작은 갑옷이 되어 줄 거라 믿었다. 보잘것없는 짐 속에 부모 마음을 꾹꾹 눌러 담으며.
문득 딸이 대학 기숙사에 처음 들어갔던 날이 떠올랐다. 그때는 집과 가까운 곳이라 "주말이면 올 수 있지"라는 위안이 있었다. 언제든 달려갈 수 있다는 안도감, 필요하면 손을 내밀 수 있다는 든든함이 있었다. 그건 진짜 독립이 아니라, 부모 품에서 살짝 떨어진 연습 같은 독립이었다.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열네 시간 거리는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부모의 손이 닿지 않는 세계로 건너가는 다리였다. 전화 한 통으로 달려갈 수 없다는 사실이 마음을 짓눌렀다.
짐을 풀고 돌아서는 길, 나는 결국 눈물을 터뜨렸다. 차 문이 닫히자마자 잘 버텨왔던 둑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린 것이다. 이제 부모 품을 떠나 홀로 서야 하는 딸을 생각하니 마음이 저려왔다.
그런데 그 순간, 차 안에서 플레이리스트가 흘러나왔다. 우리가 늘 가사를 엉뚱하게 바꿔 불러 배꼽 잡게 웃던 그 노래였다. 남편이 옆에서 씩 웃으며 말했다.
"거봐, 얘도 울지 말래."
늘 이 노래만 나오면 자동으로 웃음 버튼이 눌리듯, 눈물은 또 터졌지만 이번엔 웃음이 앞섰다. 울다가 웃다가, 그 길 위에서 우리는 딸을 두고 오는 마음을 그렇게 버무려냈다.
그때는 불안이 컸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 나는 안다. 딸은 잘 해내고 있다. 낯선 곳에서 부딪히고, 배우고, 자기 길을 만들며 이제는 후배들을 이끄는 리더가 되었다. 그 성장은 우리 가족의 자랑이자 나의 가장 큰 위안이다.
자식걱정으로 가득했던 우리의 마음과 수많은 물음표가 결국 빛나는 느낌표로 이어진다. 물음표는 늘 구부러져 있지만, 결국 그 끝은 똑바로 서서 느낌표가 된다.
물음표로 시작된 부모의 마음은, 자식의 성장과 함께 언제나 느낌표로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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