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마다 다른 문화
미국 식당에 가면, 메뉴판 펼치기도 전에 눈앞에 툭 놓이는 게 있다.
얼음이 가득 담긴 물컵! 밖이 영하든, 눈보라가 몰아치든 상관없다. 미국에선 물 = 얼음물, 거의 국민 룰이다. 입이 얼얼하고 치아가 시려도 ‘이게 미국 스타일!’이라며 쓴웃음을 짓게 된다. 마치 한국에서 한겨울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기분처럼.
물 한 잔이 이렇게 극적일 수가!
이 얼음 사랑, 그냥 생긴 게 아니다. 옛날 미국은 냉장고와 얼음 공장을 세계에서 제일 먼저 뚝딱 만들어냈다. 동네마다 '아이스맨'이 얼음 덩어리 배달하던 시절도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얼음물은 "우린 넉넉해, 환영해!"라는 메시지다. 미국 식당에서 웨이터가 얼음물 자꾸 채워주는 건, 손님을 왕처럼 모시는 그들만의 쇼다.
한국은? 정말 다르다. 식당 구석에 정수기 있고, 셀프로 물 따라 마신다. 어느 식당들은 손님들이 앉음과 동시에 물이 담긴 물병을 테이블로 가져다주기도 한다.
옛날엔 보리차가 기본이었는데, 이젠 정수기 물이 대세다. 물은 '공짜'라는 게 한국인의 상식이다. 그래서 유럽 식당에서 "물 좀"했다가 5유로 생수병 내밀면, "아니, 물이 공짜 아니야?" 하며 눈 휘둥그레진다. 한국인이라면 다 공감할 그 멘붕 순간이다.
유럽에서 물을 병에 담아 돈을 받는 문화는 역사적, 문화적 맥락에서 비롯됐다. 중세부터 수질이 좋지 않아 생수가 프리미엄 상품으로 자리 잡았고, 물 브랜드는 청정함을 강조하며 고급화됐다.
유럽은 미국의 얼음물처럼 "넉넉함"을 뽐내기보다, "질"과 세련됨을 중시하며, 수돗물 불신과 효율적 서비스 구조도 한몫한다. 그래서 한국인이 "물 좀"했다가 5유로 생수병에 당황해도, 결국 그건 유럽의 문화가 담긴 한 잔이라는 걸 받아들인다.
한국 식당의 정수기는 그냥 물통이 아니다. 유럽에 비하면 서비스 정신의 상징이다. 종이컵 들고 셀프로 물 뜨는 그 익숙함, 이게 한국의 효율성과 '함께'의 바이브다.
미국처럼 웨이터가 얼음물 들고 달려와 극진히 챙겨주는 건 없지만, "여기 물, 맘껏 마셔!"라는 넉넉한 마음이 있다.
보리차에서 정수기로 바뀐 건 한국이 현대화된 흔적이지만 그래도 '물=공짜'라는 믿음은 여전하다. 유럽에서 물값 내는 거 보면 "뭐야 이게!" 하며 당황하는 이유도 그래서다.
K-드라마 팬이라면 다 안다. 물 한 잔이 그냥 물이 아니라는 거. 로맨스 드라마에서 "물 한 잔 줄까?" 하며 건네는 장면은 설렘의 시작이다.
가족 드라마에서 아무도 안 마시는 물컵은 어색한 분위기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기생충'에서 부잣집의 반짝이는 정수기 물은 가난한 이들의 갈증과 대비되며 계층을 드러낸다.
'응답하라'의 보리차 한 잔은 90년대 골목의 따뜻함을 소환한다. 이 작은 디테일 때문에 K-드라마가 전 세계를 사로잡는 거 일수도 있다.
요즘 한국 20~30대는 물도 '취향'으로 마신다. 제주 삼다수, 피지, 심지어 반짝이는 스파클링 워터! 힙한 카페에서 유리병 물 나오면 그건 그냥 물이 아니라 분위기다. MZ세대는 물맛까지 따지며 인스타에 올린다. 유럽의 "가스? 노 가스?"느낌이지만 한국 특유의 감성이 있다.
그래도 '물=공짜'라는 뿌리는 남아서, 비싼 생수 사 먹는 건 살짝 사치스러운 기분이 들 때도 있다. 전통과 트렌드가 섞인 한국의 물 바이브, 이게 우리 스타일이다.
더 나아가, 일본 식당에서는 차가운 보리차나 따뜻한 녹차가 기본으로 제공된다. 이는 일본 특유의 '오모테나시', 즉 손님의 필요를 미리 헤아려 정성껏 대접하는 서비스 정신의 표현이다. 반면 중국에서는 뜨거운 물을 고집하는데, 차가운 물이 건강에 해롭다는 믿음 때문이다.
한국의 셀프 정수기 물은 이 둘의 중간쯤일 거다. 일본처럼섬세하지도, 중국처럼 건강 집착도 아니지만, "물은 기본!"이라는 마음은 똑같다. 이웃 나라 물 한 모금 마셔보면, 한국의 물이 더 정겹게 느껴진다.
미국의 얼음물은 치아 시리게 차갑고, "이걸 다 어쩌라고!" 하게 된다. 한국 식당에서 외국인이 정수기 앞에서 "이거 무료야? 어떻게 써?" 하며 헤맬 수도 있다. 이런 순간들이 여행의 재미 아닌가?
그러니 물 한 잔 앞에서 당황해도 괜찮다. 그 컵엔 H₂O가 아니라 각 나라의 심리가 담겨 있다.
미국의 "얼음 넉넉하게 즐겨. 이빨은 알아서 챙기고."
한국의 "셀프지만 정이야!"
그리고 유럽의 "물도 좀 쿨하게!"까지.
차와 물, 세계는 제각각이다.
일본은 배려, 중국은 건강, 미국은 시원함, 유럽은 계산, 한국은 자유!
물 한 잔으로 세상 문화를 맛보는 거, 이게 여행의 참맛 일수도 있다.
혹시 제목에 잠시 속으셨다면,
제가 일상에 작은 미소 한 모금은 채워드린 걸로 할게요.
미국이든 한국이든, 가장 좋은 물은 결국 입에 잘 맞는 물—
이 글도 그렇게 스며들었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