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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도 이민을 꿈꾸네요

짭짤한 도전

by Susie 방글이




남편이 미국에 처음 와서 소프트 프레첼을 한 입 베어 물었을 때였다.


그 표정이란, 마치 "밀가루 덩어리인데 이걸 왜 먹지?"라고 묻는 듯했다.

입술에 닿은 딱딱함, 손에 느껴지는 묵직함, 은은한 소금기—모든 게 낯설고 어색했다.


"이 맛없는 걸 누가 먹어?"그는 고개를 갸웃하며 프레첼을 내려다봤다.


그때 프레첼은 그에게 '이국적인 실패작'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는 그 투박함과 쫄깃함 속에 숨어 있던 은근한 매력을 발견했다.


이제 그는 거리에서 프레첼을 사 먹으며 웃는다.

한때 낯설던 그 빵은 어느새 그의 일상에 녹아든 친구가 되었다.


다들 그런 음식이 하나씩은 있지 않나요?

처음엔 어색했지만, 어느 순간 사랑하게 된 그 맛.

그 음식은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을까?


빵순이인 나에게 이런 이야기는 유난히 재미있다.

그래서인지, 소금빵의 여정은 내 마음을 끈다.


버터와 암염을 넣고 구운 소금빵은 육체노동이 많은 일본 어시장에서 입소문을 타기 시작해 인기를 얻었다 한다. 결국 소금빵은 일본에서 여름날 땀으로 빠진 염분을 채우려는 실용적인 이유로 태어났다.


하지만 한국에 오자 전혀 다른 옷을 입었다.


카페 진열장 속 소금빵은 더 이상 '염분 보충제'가 아니었다.

버터가 녹아내리는 황금빛 결이 마치 햇살처럼 진열대를 물들이고,

그 향은 사람들의 오후를 달래주는 작은 위로가 되었다.


대전 성심당의 소금빵은 한때 줄을 서게 만들며 유행의 중심에 섰다.

소금빵은 그렇게 한국에서 '짭짤한 포옹'이자, 하루의 피로를 덮는 부드러운 담요가 되었다.


이쯤 되면 진열대가 아니라 빵 패션쇼 런웨이.
오늘의 런웨이는 버터 향으로 채워졌습니다
진열대 앞의 설렘, 사람들의 눈빛에 반짝였다. 나만 빵순이가 아니다
이곳의 모든 빵이 1,000원이라니. 빵값이 비싼 한국에서 고마운 풍경이다. 그런데 왜 하필 소금빵은 없을까.


소금빵이 한국의 달콤한 유행을 입었다면,

프레첼은 대서양을 건너 미국에서 전혀 다른 모습으로 피어났다.

독일 프레첼은 원래 단단하고 바삭한 빵이었다.

하지만 미국, 특히 필라델피아의 품에 안기자 폭신하고 쫄깃한 소프트 프레첼로 변신했다.


그 배경에는 역사가 있다.

18~19세기 독일계 이민자들이 필라델피아에 정착하며 길거리에서 프레첼을 팔기 시작했다.


현지 밀가루와 기후, 도시 사람들의 입맛이 더해지며

단단한 독일식 프레첼은 부드러운 소프트 프레첼로 진화했다.


출근길, 야구장, 공원—어디서든 손에 들기 편한 이 빵은

필라델피아의 일상을 담는 ‘짭짤한 도시 아이콘’이 되었다.


매일 아침, 신선한 프레첼의 향기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보기만 해도 군침 도는 완벽한 꼬임
하나씩 떼어먹어야 진짜 맛을 느낄 수 있는 프레첼
단 소금이 그대로? 있는 대로는 절대 못 먹죠. 그리고 머스터드와 함께라면, 프레첼 맛이 두 배.
현재 170개 매장이 있는 Philly Pretzel Factory
사서 집으로 가는 길, 빵 냄새와 설렘이 함께한다
이제 프레첼은 빵에서 과자로 진화했다. 소프트 버전이 출근길의 친구라면, 스낵 프레첼은 TV 앞의 단짝. 이쯤 되면 미국의 국민 과자다.
미식축구 경기장의 프레첼은 한국 겨울 거리의 붕어빵이나 호떡 같은 존재다. 손에 쥔 온기가 마음까지 데워주는 풍경. Photo: Inquirer Newspaper
1934년의 필라델피아. 갓 구운 프레첼의 짭짤한 냄새가 골목마다 퍼지던 시절- 길 위의 굽는 냄새가 도시의 일상이었다. Philadelphiaencyclopedia

소금빵은 위로였다.

프레첼은 일상이었다.


둘 다 짭짤함으로 시작했지만, 각자의 무대에서 다른 춤을 췄다.


흥미로운 건, 음식이 한국으로 들어오면 언제나 조금 더 세련된 옷을 입는다는 것이다.

소금빵도 그랬다.

일본에서는 땀을 식히는 간식이었지만,

한국에선 카페 조명 아래에서 '버터 향을 두른 오후의 사치'가 되었다.


최근엔 한 유튜버가 소금빵을 '원가 수준'으로 싸게 팔아 화제가 되었다.

그만큼 소금빵은 이제 한국에서 하나의 '고급 빵'으로 자리 잡았다는 뜻일 것이다.


빵순이인 나도 한국에 있을 때 자주 사 먹었다.

버터 향이 퍼질 때마다, 작은 위로가 입안에 천천히 녹아들었다.


한국은 평범한 일상을 예쁘게 포장하는 재능이 있다.

어쩌면 그건 음식에 대한 예의이자,

삶을 조금 더 반짝이게 만드는 일상의 마법일지 모른다.


음식은 문화의 거울이다.

소금빵과 프레첼은 짭짤한 맛이라는 공통된 언어로 시작했지만,

각 나라와 도시의 취향에 따라 다른 멜로디로 연주되었다.


그리고 세상 어디서든, 빵은 결국 이민을 꿈꾼다.

다른 나라의 오븐 속에서, 새로운 이름과 맛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


그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깨닫는다.

음식은 단순한 배 채움이 아니라,

문화와 취향이 국경을 건너 만나는 작은 드라마라는 것을.


소금빵과 프레첼은 그 여정을 먼저 보여준,

세상에서 가장 짭짤한 문화의 이민자들이다.


이쯤 되면, 내 차는 작은 베이커리다. 국경을 넘은 빵들의 여정이 오늘은 내 차 뒷좌석에서 멈춰 있다.


뭐든 맛있게 먹는 순간, 국경 따위는 잊힌다.





한국에 계신 독자님들, 오늘 소금빵 한 입 하셨나요?

소금 톡톡, 행복 톡톡!

저는 미국에서 응원할게요.

대신 맛있게 즐겨 주세요.

그리고 언젠가 미국에 오시면, 따끈한 프레츨 하나 꼭 맛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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