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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대신 책상을 두드리며

오늘도 톡톡, 행운을 불렀다

by Susie 방글이


회의실 안은 이상할 만큼 고요했다.
에어컨 바람이 서류를 스치며 '사각'소리를 내는 게 유일한 움직임이었다.


누군가는 커피잔을 돌리며 괜히 시선을 피했고,
누군가는 화면 속 그래프를 무심히 확대했다 줄였다 했다.

그 정적을 깨듯, 누군가 가볍게 헛기침을 했다.


"요즘은 유난히 조용하네. 사직서 내는 직원이 한 명도 없어."


순간, 공기가 살짝 뒤틀렸다.
서로 눈을 마주치며 어색한 웃음이 번졌다.
운이란 녀석의 예민한 귀가, 그 말을 놓칠 리 없었다.

나는 재빨리 주먹 마디로 책상을 톡톡 두드렸다.


"Knock on wood."


짧은 두드림 소리가 마치 주문처럼 회의실을 맴돌았다.
그제야 모두 안도한 듯 웃음을 터뜨렸다.

운이란 녀석은 참 예민하다.
괜히 자랑했다가, 다음 날 퇴사 메일이 날아올 수도 있으니까.


Knock on wood. 운아, 떠나면 안 돼! (이건 미신이 아니라, 내 마음의 안전벨트)


그 제스처엔 마법이 있다.

말 한마디로 풀린 행운이, 혹시라도 부정 타지 않게 막아주는 소심한 주문.


이 표현은 고대의 나무 신앙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사람들은 나무 안에 정령이 산다고 믿었다.

좋은 일이 있을 땐 나무를 두드려 그 정령에게 감사하고,

나쁜 일이 생기면 두드려 보호를 요청했다.

오늘날엔 미신이 아닌, 그저 "이대로만 가길"바라는 마음의 제스처로 남았다.


책상을 두드리는 그 톡톡 소리엔

'운이여, 가지 말아라'라는 속삭임이 숨어 있다.


나무는 대답하지 않지만, 언제나 들어주고 있었다.


며칠 뒤, 커피머신 앞에서 동료가 말했다.

"요즘 이력서 많이 들어오지요? 채용시장 다시 살아난 것 같아요."


그때 옆자리에서 누군가 재빨리 중얼거렸다.


"Don’t jinx it!"


이 말 역시 운의 섬세한 결을 건드리지 않으려는 표현이다.

jinx는 본래 고대 영어에서 '불운을 가져오는 부적'이란 뜻이었다.

말 한마디, 생각 하나가 운을 어지럽힌다고 믿었기에

"그런 말 하지 마, 부정 탄다"라는 경고가 탄생했다.


한국의 "부정 타요"와 놀라울 만큼 닮았다.

언어는 달라도 마음의 결은 같다.

좋은 일을 말로 꺼내는 순간, 운명이 그 소리를 듣고 장난을 치지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

그 마음이, 동서양을 막론하고 우리를 조용히 닮게 만든다.


깨졌어도 괜찮다. 그 틈으로 빛이 들어오니까.

그리고 역시나,

그 주엔 면접 일정이 세 번이나 취소됐다.

지원자는 넘쳤지만, 정작 필요할 땐 아무도 없었다.


우린 서로를 보며 동시에 말했다.


"Murphy’s Law."


“잘못될 수 있는 일은, 결국 잘못된다.”라는 뜻에서 쓰는 말이다.


머피의 법칙은 1940년대 미 공군 엔지니어 에드워드 머피(Edward A. Murphy)의 이름에서 왔다.


실험이 반복해서 실패하자, 그는 말했다.

"If anything can go wrong, it will."

(뭔가 잘못될 수 있다면, 반드시 잘못된다.)


이 말은 냉소 같지만, 사실은 유머로 포장된 체념의 미학이다.

우리는 통제할 수 없는 세상 속에서 실수를 예감하며, 동시에 웃어넘긴다.

불운조차 농담으로 바꾸는 인간의 회복력 —그게 머피의 법칙이 오래 살아남은 이유일지도 모른다.




가만히 보면, 이 세 표현은 모두 같은 마음에서 태어났다.

운을 불러내고 싶지만, 불운이 들을까 봐 조심스러운 마음.


그래서 우리는 책상을 두드리고,

말을 삼가고, 결국 일이 틀어지면 웃으며 이름을 붙인다.


Knock on wood — 행운이 머물길 바라며

Don’t jinx it — 말로 운을 쫓지 않게 막으며

Murphy’s law — 그래도 일이 틀리면 웃으며 받아들이는 법


그리고 한국엔,

그 모든 말보다 간단한 주문이 있다.

"퉤, 퉤, 퉤."

보이지 않는 불운을 향해,

입김처럼 가볍게 뱉는 우리의 주문.

불운이여, 제발 — 이번엔 그냥 지나가라.



번역 Tip


Knock on wood - "부정 타지 않게 나무라도 두드려야지."

• Don’t jinx it! - "그런 말 하면 부정 타요."

• Murphy’s law - "안 되려면 꼭 이런다니까."/ "이럴 줄 알았지."


결국,

이 모든 표현은 운명과 화해하려는 인간의 언어적 예절이다.

말 한마디, 손마디(주먹을 살짝 쥔 손)로 톡톡 두드림,

그리고 실수 위에 피어나는 웃음.


그 모든 것이 우리 삶의 균형을 잡아주는 소박한 주문 같다.

- Knock on wood-


그렇게 운과 불운 사이를 오가며,

오늘도 삶을 이어간다.

네 잎이 내게 속삭였다 — 괜찮을 거야.


그리고 행운은 우리 가까이 있다.


관련 표현이나 더 알고 싶은 표현이 있으면 언제든 댓글로 질문해 주세요.

다음 회에서 또 만나요! See you in the next episo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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