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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가 이치

감정의 기술

by Susie 방글이




한식이 대세라 고깃집에서 모였다.


회식 자리는 늘 미묘하다. 한 상에 앉았지만 마음의 거리는 젓가락 길이보다 멀 때가 있다. 고기 굽는 소리와 웃음소리가 엇갈리며, 공기는 익지도 덜 익지도 않은 미묘한 온도를 유지한다.


그날도 그랬다. 다들 술잔을 돌리며 무난하게 안부를 주고받던 순간, 한 동료가 갑자기 말했다.


"월요일 아침 메뉴 진짜 별로죠? 다들 그렇게 생각 안 해요?"


순간, 젓가락 소리가 멎었다. 웃던 얼굴들이 미묘하게 굳어지고, 그 자리에 있던 공기마저 살짝 식었다. 누군가는 물을 마시는 척했고, 누군가는 괜히 휴대폰을 확인했다.


그 월요일 식사는 원래 힘든 출근길을 조금이라도 덜 피곤하게 만들자는 취지로 시작된 사내 프로그램이었다. 한 주의 시작을 '활기차게' 열자는 의미에서, 회사 측에서 직접 메뉴를 바꿔가며 정성껏 준비해 주는 작은 이벤트였다.


늘 새로운 메뉴를 선정하고 준비하려면 신경이 많이 간다.

나는 그 담당 직원이 매주 얼마나 애를 쓰는지, 그 애로사항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담당 직원이 있는 자리에서 그런 말을 하다니. 나는 숟가락을 들고 얼어붙은 듯 당황했다.


그때 내 옆자리 다른 동료가 나직이 말했다.


"쟤 진짜 눈치가 없어."


'눈치'는 참 묘한 단어다. 보이지 않는데, 모두가 그 존재를 안다. 소리를 내지 않는데, 그 부재는 즉시 감지된다.


눈치는 한국 사회의 공기압 같은 것이다. 너무 높으면 숨이 막히고, 너무 낮으면 관계가 풀린다. 어쩌면 눈치는 대화 사이를 흘러 다니는 투명한 물결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조금만 어긋나도 파문이 생기고, 그 잔물결은 오래도록 식탁 위를 맴돈다.


여긴 평가도, 비교도 없는 곳. 'No Judgement Zone'이라니까, 오늘은 자세 엉망이어도 괜찮다.


길에서 공갈젖꼭지를 물고는 슬쩍 내 눈치를 보는 우리 강아지. 눈치라는 건, 사람만의 언어가 아닌가 보다.


'눈치가 없다'- 영어로는 어떻게 표현할까?


영어로는 이 감각을 온전히 옮기기 어렵다.


"He’s clueless."- “전혀 모르고 있네.”

"He can’t read the room."- “분위기 읽을 줄을 몰라.”

"He’s oblivious."- “정말 둔감해.”


그나마 'read the room'이 가장 가깝지만, 그 속에는 한국의 정서적 온도차를 감지하는 체온계가 빠져 있다.


그날의 공기는 정말 썰렁했다. ‘분위기 썰렁하다'를 직역하면 "The atmosphere got chilly."지만, 그건 단순히 온도가 내려갔다는 뜻이다.


실제로는 "It killed the vibe."혹은 "The mood got awkward."라고 해야, 그 얼어붙은 공기의 어색함이 전해진다.


그래서 한국에는 이런 지혜가 있다.

"가만히 있어도 중간은 간다."

말 한마디로 공기를 얼리느니, 차라리 침묵이 낫다는 뜻이다. 영어로 굳이 옮기자면,


“Sometimes silence keeps you safe."

“Better to keep my mouth shut.”

혹은 "Just stay quiet and you’ll be fine."


입을 다물면 최소한 ‘눈치 없다는 평’은 피할 수 있다가 된다.




잠시 후, 난 고깃집 연기를 훅 불며 웃었다.


"이럴 땐 그냥, 고기나 뒤집어."


그 한마디에 사람들이 다시 웃었고,

얼어붙었던 공기가 천천히 풀렸다.


눈치란 결국, 누가 말을 하느냐보다 언제 말을 멈춰야 하느냐를 아는 감각이다.


그날의 짧은 침묵 속에는 언어보다 깊은 문화가 숨어 있었다. 한국의 '눈치'는 영어로 옮길 수 없는 감정의 기술이다.


‘He’s clueless’도, ‘He can’t read the room’ 그 말 한마디가 식탁의 온도를 10도쯤 낮추는 힘까지는 담지 못한다.


결국, '눈치'는 공기를 읽는 감각이고, '가만히 있어도 중간은 간다'는 그 감각이 만든 생존의 지혜다.


여긴 평가 없는 곳, 눈치도 잠시 내려놓자. 'No Critics.’'마음이 먼저 움직이는 순간을 허락하는 공간.


번역 Tip


* '눈치가 없다'- "He’s clueless."

“He can’t read the room."

"He’s oblivious.”

그중에서도 read the room은 분위기나 상황을 파악한다는 뉘앙스가 가장 가깝다.



* '분위기 썰렁하다’- “It killed the vibe.” / "The mood got awkward."



* '가만히 있어도 중간은 간다’는 표현은 직역하기 어렵지만, '침묵이 무난함을 지킨다’는 뜻으로 가능하다.

- "Sometimes silence keeps you safe." / "Just stay quiet and you’ll be fine."

"Better to keep my mouth shut."- 더 형식적인 표현

"Better to be safe than sorry."- 조금 더 교훈적인 어조






직장 생활에서, 그리고 어쩌면 우리의 인생에서

눈치란 참 묘한 존재다 —

너무 많으면 피곤하고, 너무 없으면 위험하다.

결국 우리는 다들 그 사이 어딘가에서

'적당히 눈치 있는 사람'으로 살아남는다.


그러니까 말이다.

회사든 인생이든, 결국 답은 하나.

눈치껏 살아남자.


Or as they’d say in English —

Read the room, survive the day.


건물이 예뻐서 담고 싶었는데, 그새 얼굴을 들이밀며 ‘나도 예쁘지?’ 하는 사람


살다 보면 알게 된다. 눈치가 곧 삶의 이치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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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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