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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컨을 좋아하세요?

근데, 먹지 마세요. 책에게 양보하세요~

by Susie 방글이




딸은 요즘 퇴근하고 나면 '조잡 떠는 취미'에 푹 빠져 있다.판을 깎고 잉크를 굴리고, 작은 작업대를 펼쳐 놓고 하루 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잉크와 함께 쭉쭉 밀어내는 시간이다. 얼마 전에는 무려 채소 모양 판화 8종 세트를 완성했다. 양파, 마늘, 생강, 배추 등등.


딸의 설명에 따르면, 미국 사람들은 이런 하찬지만(?) 귀여운 프린트를 특히 좋아한다고 했다. 주방 벽에 걸어두면 감성이 살아난다고, 딱 그런 스타일이라는 것이다. 실제로도 미국 사람들은 주방 한쪽에 채소, 과일, 또는 여러 친근한 음식 프린트를 걸어두는 걸 즐긴다.


그렇게 딸은 채소 판화를 들고 매년 이맘때 열리는 지역 프린트 바자회에 참여했다. 마침 그 무렵 남편도 향나무 책갈피를 만드는 데 한창이었다. 그리고 아주 절묘한 타이밍으로 말했다.


"아, 내가 만든 향나무 책갈피도 같이 팔아보면 어때? 반응도 궁금하고, 감성도 맞잖아."


딸은 잠시 웃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딸의 채소 판화 옆에는 남편이 만든 향나무 책갈피가 정식 판매용으로 자리 잡았다.


딸의 작은 부스, 채소 판화와 책갈피가 세상에 첫발을 내디딘 날


오프닝과 함께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며, 순식간에 활기로 채워진 행사장


손님들의 질문이 판매로 이어지는 순간.


그런데 문제는… 첫 손님부터 터졌다.

"Is this… bacon?" (이거… 베이컨인가요?)


뒤이어 온 두 번째 손님도,

"Oh wow, a bacon bookmark?!“ (와, 베이컨 책갈피?!”)


세 번째 손님은 아주 진지하게 말했다.

"Wait—this is actually bacon-colored wood!” (잠깐—이거 진짜 베이컨 색 나무인가요??)


딸은 처음엔 성실하게 설명했다.

"Well, it’s bookmark made of cedar wood!" (음, 이건 향나무로 만든 책갈피예요!)


하지만 네 번째, 다섯 번째… 끝없이 이어지는 동일한 반응에 딸의 표정은 서서히 체념으로 바뀌었다. 결국에는 이렇게 말했다.

"…It’s wood. But… yes, I see why." (… 나무예요. 근데… 왜 그렇게 보이는지는 알겠어요.)


그 순간, 우리 부스는 공식적으로 '채소 판화 + 베이컨 북마크 부스'가 되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베이컨이 분위기를 살린 것이다.


"OMG, my husband would love this. This is so fun!" (세상에, 우리 남편 정말 좋아하겠다. 너무 재미있다!)
"This is hilarious—I need to send a picture to my sister.”(진짜 웃기다. 우리 언니한테 사진 보내야겠다.)
"My friend collects unique bookmarks. He’ll die laughing." (내 친구가 독특한 책갈피 모으거든. 이거 보면 쓰러져서 웃겠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재미있어하며 책갈피를 만지작거렸고, 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웃으면서 말했다.

"저기 가면 베이컨 있어요 ㅎㅎ!”


그 순간, 부스는 갑자기 북적이기 시작했다. '베이컨 소문' 덕분에 사람들이 하나둘 몰려들었고, 처음엔 장난감 베이컨이냐며 웃으며 다가오던 이들은 실제로 손에 쥐어본 순간 표정이 바뀌었다.


"Wait… this is wood?!" ("어... 진짜 나무라고요?!")


호기심으로 오던 사람들은 나무라는 사실에 더 놀라워했고, 그 놀라움이 곧 관심으로, 관심은 자연스럽게 구매로 이어졌다. 베이컨 때문에 발걸음을 멈췄다가, 나무 결을 보며 감탄하고, 결국은 "이건 사야 한다"며 지갑을 여는 사람이 생기기 시작했다. 웃음으로 시작해서 감탄으로 끝나는, 아주 이상적인 소비 루트가 딸 눈앞에서 자연스럽게 완성되고 있었다.


이거 어떻게 만든 거예요?로 시작된 대화, 그리고 판매.


덤으로 만든 실 책갈피. 작은 정성을 알아보는 눈은 어디에나 있다.


그날 우리는 아주 중요한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미국에서는 나무도 베이컨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문화적 익숙함은 종종 물리적 사실을 가볍게 이긴다는 것.


한국인에게 향나무는 숲이다. 피톤치드, 힐링, 사우나의 냄새.
하지만 미국인에게 나무 결은 주말 브런치 테이블 위에 바삭하게 누워 있는 베이컨 스트립의 무늬를 떠올리게 한다. 그들에게 베이컨은 아침의 냄새, 행복의 상징, 편안한 주말을 여는 기분 좋은 신호 같은 것. 그러니 비슷해 보이면 조건반사처럼 외칠 수밖에 없다.


"베이컨이다!"


결국 문화 차이란 ‘무엇을 보고 자라왔는가’의 차이인지도 모른다. 채소 판화를 보고 미소 짓는 사람도, 베이컨 북마크를 들고 폭소하는 사람도, 각자 자기에게 익숙한 이미지에 반응할 뿐이다.


숲을 보면 향나무가 떠오르는 나처럼, 나뭇결을 보면 베이컨이 떠오르는 미국 사람들처럼. 완전히 달라 보이지만 어느 순간 참 닮아 있다. 익숙함으로 세상을 읽는다는 점에서, 정말이지—거기서 거기다.


그리고 우리는 그날 바자회에서 아주 명확한 인사이트 하나를 얻었다.

‘미국에서 향나무 책갈피를 팔려면… 베이컨으로 마케팅하면 된다.’
그래서 즉석에서 이렇게 카피를 적어보았다.


Wood-Smoked Bacon Bookmark

(우드 스모크 베이컨 북마크)


"Real wood, zero grease, maximum flavor for your books.”

(진짜 나무, 기름기 제로, 책에는 풍미 200%.)


Hand-sanded from aromatic wood and styled like a crispy bacon strip —
your book will sizzle every time you open it.
(향 좋은 나무를 손으로 샌딩해 바삭한 베이컨처럼 만든 북마크.
책을 펼칠 때마다 ‘치지직’ 맛있는 느낌이 올라온다.)




그날, 채소는 작품이었고, 베이컨은 분위기 메이커였다.
나무를 베이컨으로 읽는 순간, 작은 오해 하나가 큰 웃음을 만들었다.


다르지만 닮았고, 익숙함이 다르게 만나면 웃음이 된다.
결국, 우리 모두가 보고 있는 세상은—거기서 거기였다.


그리고 이제, 우리도 왠지 베이컨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ㅎㅎ

게다가 놀랍게도, 우리는 연말 여행비 정도를 벌었다.

채소는 작품, 베이컨은 분위기 메이커, 그리고 우리 지갑도 웃었다.

참, 보기 나름이다. 이제는 책갈피가 아니라 베이컨으로 보이는 마법까지 생겼다.


그래서 말인데요… 이번 주말 브런치엔 베이컨, 어떠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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