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저트 말고, 후식으로 할래요

달콤함의 끝과 시작

by Susie 방글이




'디저트(dessert)'는 보통 '후식'으로 번역된다.

하지만 이 두 단어는 같지 않다.

같은 달콤함을 품고 있지만, 그 맛이 머무는 자리는 다르다.


미국 식당에서의 식사는 언제나 '대본 없는 쇼' 같다.

메인 요리가 끝나면 서버가 미소를 띠며 묻는다.


"Would you like to see our dessert menu?" (디저트 메뉴 보실래요?")


그 말은 식사의 끝이 아니라, 무대 위 조명이 한 번 더 켜지는 순간이다.


미국의 디저트 문화는 식당에서만 머물지 않는다.

집에서도 식사가 끝나면 오븐에서 갓 꺼낸 애플파이, 냉장고 속 치즈케이크가 등장한다. 달콤함은 하루의 연장선이고, 가족이 함께 나누는 작은 축제다.


'더 많이, 더 달콤하게' 즐기는 미국의 식탁에는 풍요를 향한 긍정적인 에너지가 흐른다. 디저트는 마침표가 아니라, "오늘을 조금 더 이어가자"는 초대장에 가깝다.


달콤함은 끝이 아니라, 하루를 이어가는 또 하나의 문장.


한국의 식탁은 조금 다르다.

밥, 반찬, 국이 어우러진 한상에는 오랜 세월 이어져 온 조화와 절제의 미학이 담겨 있다.


식사가 끝나면 엄마가 부엌에서 배나 귤을 꺼내온다.

"식후엔 과일이지."

그 말에는 단순한 습관 이상의 온기가 있다.


한국의 후식은 집에서도, 식당에서도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한정식집에서는 식혜나 수정과, 오미자차 같은 전통 음료가 식사를 마무리한다. 과일 한 조각, 차 한 잔이 만들어내는 여운은 화려하진 않지만 마음을 정리해 준다.

그것은 끝이 아니라, 하루를 천천히 정돈하는 시간이다.


두 문화의 달콤함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미국의 디저트는 자신을 표현하는 자유이고,

한국의 후식은 관계를 이어주는 다정함이다.


미국의 달콤함은 하루를 확장시키며 '오늘'을 더 길게 즐기게 하고,

한국의 달콤함은 마음을 다독이며 '내일'을 준비하게 한다.


나는 그 두 리듬 사이에서 자라났다.


미국 식당에서 브라우니와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나누며 "이건 너무 달아!" 하고 웃던 기억은 즉흥적이고 활기찼다.

반대로 한국에서 어머니가 깎아주신 배를 먹으며 "역시 식후엔 과일이지"라던 순간은 조용하고 따뜻했다.


미국의 단맛은 바깥으로 퍼지며 하루를 더 길게 남기고,

한국의 단맛은 안으로 스며들며 마음을 단단하게 한다.


미국 식탁 위의 케이크 조각은 오늘을 조금 더 이어가고 싶은 마음이고,

한국의 식후 과일이나 식혜 한 잔은 하루를 부드럽게 내려놓는 마음이다.


달콤함은 혀끝의 맛이 아니라, 세상과 관계 맺는 태도에 남는다.


누군가는 진한 초콜릿 케이크로 하루를 마무리하고,

누군가는 따뜻한 차 한 잔으로 마음을 정리한다.


그리고 나는 그 둘 사이에서 천천히 배운다.

인생의 맛은 '끝'을 선언하는 데 있지 않다.

어떤 리듬으로 마무리하느냐, 어떤 마음으로 내려놓느냐에 달려 있다.


미국의 디저트처럼 인생을 한 번 더 즐기려는 용기도 필요하고,

한국의 후식처럼 하루를 다독이며 정리할 줄 아는 여유도 필요하다.

달콤함은 혀끝에서 사라져도, 그 향은 마음에 오래 남는다.


미국의 디저트의 단맛은 오늘을 확장시키고,

한국의 후식의 은은함은 내일을 준비하게 한다.

하나는 불빛 같고, 하나는 촛불 같다.

결은 다르지만, 둘 다 하루의 어둠을 부드럽게 밝혀준다.


결국 인생의 맛은 어떤 단맛을 고르느냐가 아니라,

그 달콤함을 어떤 마음으로 음미하느냐다.

그 자리에 천천히 머물 때, 하루는 비로소 완성된다.


하루를 이어주는 케이크, 마음을 다독이는 과일, 그리고 그 모든 걸 감싸는 촛불.


불빛 같은 디저트, 촛불 같은 여운 — 둘 다 있으면, 그건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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