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라면, 라면 어디서 사겠어요

월마트 vs 한국마켓

by Susie 방글이


딸 집에 와 있었다.
내 집이 아닌 공간에서 며칠을 지낼 때면, 꼭 필요한 것보다 먼저 익숙한 것이 떠오른다. 장을 보고 돌아온 뒤에야 깨달았다. 집에 라면이 없다는 걸.


딸이 사는 곳 근처에는 한국 마켓이 멀다. 차를 다시 몰고 가기엔 거리도 애매했다. 일단 미국 마켓에서 사야 할 물건들이 있어 월마트로 향했다.


몇 개 통로를 지나던 중, 자연스럽게 라면 진열대 앞에 섰다. 신라면, 신라면 컵, 너구리. 굳이 소리 내 읽지 않아도

익숙한 이름들이 눈앞에서 반짝였다. 미국 월마트 한켠에서 한국인의 소울 푸드인 라면을 보았을 때, 괜히 마음이 먼저 반응했다.


한인들이 많지 않은 중서부 한복판이어서 더 뜻밖이었다. 늘 한국 마켓에서만 장 보던 나는, 막상 이렇게 미국 마켓에서 처음 라면을 사보니 더 신기하게 느껴졌다.

요즘은 한국 음식이 대세라더니, 이제는 미국 어디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식품이 된 모양이었다.


가격표를 보고 잠시 멈췄다. 비쌀 줄 알았는데, 오히려 조금 더 쌌다.

"오, 의외네."


승리감은 아니었다. 그냥 마음 한쪽이 슬쩍 웃는 정도였다. 별것 아닌데도, 묘하게 기분이 좋아졌다.


월마트 (Walmart) – 라면은 같아도, 진열대가 달라지면 느낌이 달라진다.


라면은 김치와 달랐다. 발효도 없고, 손맛을 떠올릴 필요도 없다. 끓는 물만 있으면 빠르게 완성된다. 그런데 한국 마켓에서 라면을 고를 때면 다르다. 진열대 사이를 걸으면 어린 시절과 지난날들이 떠오른다. 한 봉지 라면에도 이야기와 기억이 담긴 듯한 기분이 들고, 어떤 라면을 집어 드는 순간, 그것은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내 하루와 밤, 내 마음을 채우는 작은 의식과도 같다.


월마트의 라면 코너는 훨씬 단순했다. 신라면과 너구리는 한국을 대표하지도, 추억을 불러내지도 않았다. 매운지, 컵인지, 봉지인지가 전부였다. 이 라면이 왜 필요한지, 어떤 밤을 지나왔는지에는 관심이 없었다. 잘 팔리면 계속 있고, 아니면 어느 날 조용히 사라질 뿐이었다. 감정보다 계산이 먼저인 공간처럼 보였다.


그날, 월마트에서 사 온 라면을 끓였다. 물은 평소처럼 끓었고, 면도 늘 먹던 대로 익었다. 맛 자체는 같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남은 건 맛보다 '같은 라면으로 만들어지는 전혀 다른 공기'였다.


딸이 사는 주에 있는 한국 마켓도 나는 처음 가보는 곳이었다. 월마트도, 한국 마켓도 모두 낯선 공간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두 공간의 낯섦은 같지 않았다. 한국 마켓은 처음인데도 길을 잃지 않을 것 같았고, 진열대 앞에서 망설여도 불안하지 않았다. 어디에 뭐가 있을지 대충 짐작이 갔고, 계산대 앞의 풍경도 익숙했다.


낯선데 낯설지 않은 곳, 처음인데 이미 한 번 와본 것 같은 곳. 반면 월마트는 친절하고 효율적이었지만, 끝내 '내 공간'으로 들어오지는 않았다. 그날 내가 느낀 차이는 장소의 문제가 아니라, 기억과 감각이 만들어낸 익숙함의 방향이었다.


멀리 있어도, 조금 번거로워도 한국 마켓에서 느끼던 따뜻함과 익숙함이 떠올랐다. 진열대 사이를 걸으며 느꼈던 그 공기, 손끝에 남던 이야기와 기억들. 월마트의 라면은 충분히 편리하고 가격도 합리적이었지만, 그곳에는 이야기와 추억, 정서적 안정감이 담겨 있지 않았다.


익숙함을 사는 공간- 자주 가기 힘든 한인 마트


여기서는 가격보다 기억이 먼저 움직인다.


결국 그날 나는, 라면 하나에도 내가 어디에 마음을 두고 사는지가 드러난다는 걸 알게 됐다. 편리함은 배를 채워주지만, 익숙함은 마음을 데워준다. 같은 라면이었지만, 그날 밤 내 속을 먼저 채운 건 면이 아니라 공기였다.


여러분이라면, 조금 멀어도 이야기가 담긴 공간에서 라면을 사시겠어요, 아니면 편리함을 따라 쉽게 집으시겠어요?


너무 배고파 사진 찍기도 전에 밥까지 미리 말아놓은 남편을 구박하며 찍은 사진- 비주얼은 이래도 맛있었답니다 ㅎㅎ



라면 드시고 가실래요? ㅎㅎ

keyword
이전 18화왜 트레이더 조 가방에 설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