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모험을 시작하다
어느 날부터 우리 집 욕실에선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크크크크… 으악…!"
놀라서 달려가 보니, 김이 모락모락 나는 욕실 안, 뿌연 김 속에서 남편이 샤워 중이었다. 평소라면 두꺼운 옷 없이는 벌벌 떨던 사람이, 마지막에 샤워기를 찬물 쪽으로 돌려 마무리하며 괴성을 지르고 있었다.
올 겨울이 시작되면서 새로 생긴 남편만의 루틴이었다. 찬물에 온몸을 맡기고 "으악!"소리를 지른 뒤, 곧이어 반팔 차림으로 나타나서는 한마디 덧붙였다.
"당신도 해봐. 면역력도 체력도 좋아진대."
평소 집 안에서 두꺼운 옷 없이는 벌벌 떨던 사람이, 샤워가 끝나갈 무렵 그런 표정을 짓는 걸 보면, 나는 아직 믿기지 않았다. 그런데 동시에 궁금했다. 왜 그는 그렇게 즐겁게, 아무렇지 않게 찬물을 맞는 걸까.
우리 집 온도는 19도에 맞춰져 있다. 올 겨울 유난히 추운 날씨 탓에 난방비 부담도 있지만, 온도를 더 올리면 공기가 금세 건조해지고 목이 칼칼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집 안에서도 그는 늘 두툼한 양말에, 가디건까지 껴입는다. 외출 전이면 "아 춥다, 나가기 싫다"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이다. 그런데도 샤워를 끝내고 나오면 이상하리만치 한동안은 춥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 봐야 몇 초겠지, 그냥 참으면 되겠지.' 하지만 마음 한켠에는 시큰한 기대가 있었다.
샤워기에서 쏟아질 찬물을 떠올리는 순간, 발끝부터 척추를 타고 올라오는 전율. 그게 남편이 말하던 체력과 면역력의 시작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틀지도 않은 물에 벌써 지는 기분이었다. 결국 나는 그날 밤, 마음을 먹었다.
뜨거운 물아래 서서 몸을 녹이며 느끼는 안도감, 손끝과 발끝, 목덜미까지 스며드는 온기. 이 편안함을 잠시 뒤로 미루는 것이 내게 작은 모험이 될 거란 걸 알았다.
마음속으로 깊게 숨을 들이쉰 뒤, 샤워기의 손잡이를 찬물 쪽으로 천천히 옮겼다. 순간, 심장이 '쿵'하고 얼어붙는 듯했고, 손발 끝이 얼얼했다. 잠깐 나는 '내가 왜 이걸 시작했지?' 후회까지 밀려왔다.
요즘 유독 추운 겨울이라, 샤워기의 찬물은 거의 얼음물에 가깝다. 처음엔 거의 비명을 지를 뻔했다. "으악!"하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삼켰다. 하지만 곧 시원함이 온몸으로 퍼지며,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혈관이 수축하고, 체온이 오래 머무르는 느낌이 찾아왔다. 순간의 불편이 남긴 지속적인 온기, 얼음물과 한판 승부를 치른 내 몸이 조금 단단해진 느낌이었다.
사실 과학적으로 보면, 뜨거운 물은 혈관을 확장시켜 열을 쉽게 잃게 만들지만, 찬물로 마무리하면 혈관이 수축해 체온이 더 오래 유지되고, 뇌는 대조 효과로 추위를 덜 예민하게 느끼게 한다고 한다. 잠깐의 불편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몸과 마음이 함께 단단해지는 느낌이 나는 것도 그 때문일 수 있다.
찬물로 마무리하고 욕실 문을 열었다. 예전 같으면, 피부를 찌르는 듯 온몸이 얼어붙을 것 같은 냉기가 기다리고 있었을 텐데, 이번에는 달랐다. 시원함이 남긴 잔열이 몸을 감싸고 있었고, 바깥공기는 그저 살짝 스치는 정도였다.
그제야 깨달았다. 세상이 갑자기 추워진 게 아니라, 내가 너무 뜨거움에만 익숙해져 있었던 거였다는 걸.
피부가 느끼는 차가움 속에서, 왠지 몸도 마음도 조금 단단해진 느낌이었다. 겨울 속 작은 불편을 견뎌내는 기분이라고 할까.
남은 겨울의 찬 공기 속에서도, 그냥 좀 더 씩씩하게 숨 쉬고 싶었다. 그리고 그 시원함을, 내가 원하는 만큼만 느끼면서, 남은 겨울도 조금 더 편하게 보내고 싶다.
때로는 이런 작은 불편함이, 생각보다 살아갈 힘을 주기도 한다는 걸, 찬물 속에서 새삼 깨달았다.
그리고 요즘, 유독 추운 올겨울, 추위에 약한 남편이 또 "아 춥다"를 외칠 때마다 내가 하는 말이 있다.
"샤. 워. 해!"
작은 용기 하나, 그리고 찬물 한 줄기가, 겨울을 버티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