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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아직도 스티커 놀이 중

추억은 접착력과 비례하지

by Susie 방글이



지금 나는 한국에 와 있다.
동해안? 맛집 투어? 명동 쇼핑? 빵지순례?
다 좋지만, 그보다 먼저 할 일이 있다.
스티커 사기.


곧 스물여덟 되는 딸아이가 부탁했다.

"엄마, 한국 가면 스티커 좀 사다 줘."
스물여덟에 웬 스티커냐고?
그냥 그렇다. 우리 집은 원래 그렇다.


딸은 회사에선 프로페셔널이다.

제품개발 및 혁신팀장.
회의 때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고, 팀원들 챙기고...
근데 집에 오면, 그 시절로 돌아간다.
유난히 스티커를 좋아한 초등학교 때부터 중학교 2학년까지.
한국 떠나던 그때 그 감성 그대로.


소파에 앉아서 일기장 펼친다.
하루 있었던 일, 느낌, 기분, 성과, 먹은 거 다 적고...
그 위에 스티커 붙인다.


물론 아무 스티커나 붙이는 건 아니다.
룰이 있다.

깔끔하고 제대로 생기면 안 된다.

디자인에 공을 들인 스티커는 안되고,

좀 멍청하게 생겨야 한다.
이 까다로운 나름의 기준이 있다.

환장쓰….


이번 한국행 미션도 그거다.
"엄마, 발로 디자인한 거 같은 스티커야."
"하찮은 것들."
그래서 우린 지금 문구점 순례 중이다.


문구점에서 스티커 고르다 보면
옆에 있던 초등학생들이 힐끔 쳐다본다.
그 눈빛이 딱 그렇다.
'저 아줌마, 아저씨 뭐야…?'


괜찮다.
우리 가족에겐 이게 중요한 일이다.
스티커 한 장,
딸아이 어린 시절을 붙잡고 있는 소중한 물건이니까.


이민자 인생이 원래 그렇다.
몸은 미국에 있어도,
마음은 떠나던 그 순간에 머물러 있다.


우리 엄마도 마찬가지다.
미국에 명품 옷이 널렸는데도
한인마트 옆 '엄마룩'가게에서
꽃무늬 원피스, 편한 속옷을 고르신다.
"이게 제일 편해."
40년째 똑같다.

이번에도 비너스 속옷 부탁하셨다.


남들 눈엔 촌스러워 보여도
우리한텐 그게 편하고 좋다.
스티커 한 장, 꽃무늬 원피스 한 벌이
멀리 떠나온 고향을 살짝 만지는 방법이다.


딸은 회사에선 어른,
집에선 여전히 중2 스티커 수집가.
우린 골프장 대신 문구점에서 설레고
한인마트 속옷 코너에서 신난다.


시간이 지나도,
세상이 바뀌어도,

우린 아직 그때 감성으로 산다.


그리고 난 안다.
다음에도 딸이
"엄마, 스티커 좀…" 하면
나는 또 문구점으로 달려갈 거다.


그때도 이렇게 말하겠지.

"우린 아직도 추억 놀이 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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