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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vs 엄마

내가 다시 쓰는 이야기

by Susie 방글이

"슬기야, 난 너와 나의 관계가 부러워!"


딸이 말한다.


"그게 말이야? 방귀야? 우리 관계가 부럽다니?"






내가 자라면서 본 엄마는 늘 병상 위, 혹은 고통과 함께였다.


'엄마'라는 단어는 다른 이들에게 포근한 품이나 든든한 버팀목을 떠올리게 할지 모르지만, 내게는 안타까움과 무거운 마음으로 남아 있다. 친구처럼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엄마, 언제나 곁에서 웃어주는 엄마의 모습은 내게 낯설었다.


대신, 아픈 엄마를 보며 때로는 지치고, 외면하고 싶을 때도 있었다. 그런 생각을 품는 내가 괜찮은 자식인지, 늘 스스로에게 묻는다.


솔직히 나조차도 엄마의 병을 마주하며 버거울 때가 있었다. 그러니 사위인 남편이 그런 감정을 느끼는 건 어쩌면 더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예전에는 그의 태도에 서운함을 느꼈지만, 이제는 그 부담을 이해하려 한다. 누군가를 끝없이 돌보는 일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다. 그래도 내 몫까지 엄마를 챙겨주는 두 남동생들이 있어 내가 조금 덜 무겁게 살아갈 수 있었다. 그들에게 진심으로 고맙다.


엄마에 대한 마음을 정리하다 문득 깨달았다. 나도 엄마라는 걸.


딸과 나는 서로에게 친구 같은 존재다.
가끔은 우리가 엄마와 딸인지, 절친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티격태격 장난치며 웃고, 속 깊은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나누는 순간들이 참 소중하다.


어쩌면 지금 이 따뜻한 시간들은, 엄마와 나누지 못했던 소소한 행복에 대한 조용한 보상인지도 모른다.
내가 느껴보지 못한 포근함, 친구 같은 유대감—그게 그리웠던 거였다.


"야, 내가 좀 더 예쁘고 똑똑한 건 팩트지, 안 그래?"
농담을 던지고, 깔깔대며 웃는 그런 순간들이 좋다.


내 바람은 단순하다.
딸이 어디서든 "우리 엄마, 진짜 멋져"라고 웃으며 말할 수 있는 사람.
필요할 때 언제든 곁에 있어주는, 그런 든든한 존재가 되는 것.

앞으로도 지금처럼 서로를 놀리고, 가끔은 진지하게 마음을 나누며,
함께 웃고 울면서 나이 들고 싶다.


나중에 머리가 하얗게 세었을 때, 딸과 맥주 한 잔 기울이며 말하고 싶다.
"우리 인생, 꽤 근사했지?" 하고.

나란히 걷는 뒷모습엔, 말없이 닮아가는 시간이 흐른다
빼꼼이도 빠질 수 없지. 세 마음이 하나 된 여름.
숨이 차도 좋아, 함께 오르는 길이니까.

엄마는 여전히 많이 아프시다. 나는 몇 달간 한국에 머물고 있다. 예전엔 그러지 않으셨는데, 요즘 부쩍 보고 싶다고 하신다. 솔직히, 엄마의 그 말이 익숙하지 않다. 우린 애틋한 사이는 아니었으니까.


우리 세대 부모님들, 특히 이민자 사회는 먹고사는 게 바빠 부모 자식 간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틈이 없었다. 그렇지 않나, 그 시절엔 다들 그렇게 살아오셨던 것 같다. 어쩌면 그 세대들의 사랑하는 방법이 달랐을지도 모른다.


전화로 엄마가 또 "보고 싶다" 하시면, 나는 일부러 툴툴거리며 말한다.


"뭐야, 새삼스럽게. 이 못난 딸이 왜 보고 싶은데." 그러면 엄마는 웃으시며 "그냥"이라고 하신다.

나는 웃으며 대꾸한다. "그러면 그냥, 목소리 들었으니까 됐네."


엄마의 웃음소리가 전화 너머로 들려오면, 그 작은 소리가 내 마음을 조금씩 따뜻하게 채운다.

느릿한 걸음 뒤로 세월이 따라오는데… 왜 이렇게 가슴이 아릴까요.

언젠가 내 엄마와도, 지금의 나와 딸이 그러는 것처럼, 소소한 순간을 웃으며 공유할 수 있기를.

차 한 잔을 놓고 마주 앉아, 서로의 하루를 묻는 그런 날이 올 수 있기를.


그때까지, 나는 엄마라는 이름을 천천히, 그리고 따뜻하게 써 내려가고 싶다.

평범함은 싫어. '굼마'는 '엄마' 보다 더 정이 간다는 딸.

엄마라는 이름으로 빛나는 모든 이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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