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있다
북한산 정상에 오른 순간, 시원한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숨을 몰아쉬며 올라온 능선 뒤로 세상은 한눈에 펼쳐졌고, 그 아래 모든 것이 장난감처럼 작아 보였다. 도로도, 건물도, 사람 사는 집들도 점처럼 흩어져 있었다.
저 작은 세상 안에서 우리는 매일 큰 일이라도 벌어지는 듯 아등바등 각박하게 살아가고 있지만, 이렇게 위에서 바라보니, 그 모든 게 바람 한 점 스치듯 별거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산은 늘 그런 시선을, 그런 마음을 선물해 줬다.
한편, 최근 책을 펼친 순간에도 비슷한 고요함을 느꼈다. 한강의 '채식주의자' 속 문장이 내 안으로 스며들며, 마치 산 정상에서 맞이한 바람처럼 마음을 맑게 비웠다.
산을 오르는 것과 책을 읽는 일은 심리적 안정과 스트레스 해소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는 점에서 깊이 연결되어 있다. 연구에 따르면 단 6분의 독서로도 스트레스를 68%나 줄이고, 심박수와 근육 긴장을 완화할 수 있다고 한다. 산행 역시 자연 속에서 몸을 움직이며 불안을 덜어내고, 마음을 맑게 비우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두 활동 모두 현실의 걱정을 잊게 하고, 몰입을 통해 내면의 평온과 정서적 회복력을 키워준다. 이 설명은 내게 깊이 와닿았다. 특히 산을 오르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그 시간들이 내 삶에 얼마나 큰 에너지를 주었는지 되새기게 되었다.
나는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은 아니다. 오히려 산이 내게 더 익숙한 안식처였다. 한국에 살았던 시절, 3년 동안 거의 매주 주말이면 산을 올랐다. 북한산의 바위 능선을 오르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고, 관악산의 숲길에서 햇살이 스며드는 나뭇잎을 만났다. 설악산의 안개 낀 계곡과 웅장한 암벽은 내게 경외감을 안겼다.
각 산은 저마다 다른 얼굴을 가졌지만, 그곳에서 느낀 충만함과 자유는 언제나 같았다. 산은 내게 늘 따뜻한 스승이었고, 그 험난한 길을 오르는 과정은 나를 단련시키는 시간이었다.
미국으로 이사 온 뒤, 다시 새롭게 시작한 바쁜 일상 속에서 산행은 점점 멀어졌다. 북한산의 날카로운 바위와 설악산의 바람은 내 안에 생생했지만, 그 감정을 대신할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러던 중, 늘 책과 함께하는 남편 덕에 책을 펼치게 되었다.
처음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집어 들었을 때는 낯선 산길의 초입처럼 어색했다. 하지만 한 페이지씩 넘기며 영혜의 고통과 저항이 산길의 고된 오르막과 닮았음을 깨달았다. 이야기에 스며들며, 어느 순간 그녀의 내면과 마주한 새로운 세계가 눈앞에 펼쳐졌다. 마치 설악산의 안개가 걷히며 계곡이 드러나듯, 책은 내게 또 다른 풍경을 열어주었다.
아직 독서는 익숙하지 않다. 하지만 '채식주의자'를 읽으며 느낀 깊은 공감은 산행의 고요함처럼 내 마음을 뒤흔들었다. 책 속 문장들은 마치 산 정상에서 부는 바람처럼 내 안의 혼란을 가라앉히고, 새로운 길을 열어주었다. 한 페이지씩 넘길 때마다, 나는 새로운 풍경을 마주하는 기쁨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지금, 다시 한국을 찾은 나는 예전에 오르던 산들을 다시 걷는다. 관악산의 숲길에서,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겹쳐진다.
사람들은 종종 묻는다. "어차피 다시 내려올 텐데, 왜 힘들게 산에 오르는가?"
맞다. 다시 내려온다. 다시 내려오기 위해 산에 오른다. 강신주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산에 오르는 건 결국 산을 내려오기 위해서고, 마찬가지로 책을 읽는 것도 삶을 건강하게 다시 시작하기 위해서다." 이 말은 내게 깊은 울림을 준다.
산의 바람과 책의 문장은 각기 다른 길을 열지만, 그 안에서 나는 나를 더 깊이 이해한다. 앞으로도 설악산의 계곡을 다시 걷고, '채식주의자'처럼 마음을 흔드는 책을 한 권씩 만나며, 더 풍요로운 삶을 이어가고 싶다.
산과 책, 이 두 길은 나를 비추는 거울이자,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여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