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열어준 서랍
최근 여가시간을 보내며 오규원 시인의 ‘죽고 난 뒤의 팬티’를 읽었다. 제목의 낯선 위트에 처음엔 웃음이 터졌다.
"죽고 난 뒤의 팬티 누가 볼까 부끄럽지 않도록 단정히 접어 두자."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이렇게 가볍게 풀어내다니. 그런데 시를 곱씹을수록 그 웃음 뒤에 숨어 있던 속마음이 슬그머니 내 마음을 건드렸다.
그 구절을 읽는 순간, 몇 해 전의 기억이 물밀듯 떠올랐다.
속옷 서랍을 정리한 건 정말 별일 없는 어느 날이었다. 몇 년간 쌓인 낡고 엉킨 속옷들이 괜히 거슬리던 날, 하루를 꼬박 정리하는 데 썼다. 버릴 건 버리고, 쓸 건 정갈히 접어 넣었다.
그러고 나니 빈 공간이 생겼고, 괜히 기분이 좋아져 새 속옷 몇 개를 사다 채워 넣었다. 서랍이 단정해지니 신기하게 마음도 가벼워졌다. 인생이 조금 정돈된 기분마저 들었다.
며칠 뒤, 갑작스러운 복통으로 응급실을 찾았다. 남편은 한국에, 딸은 타주에 있었다. 친한 회사 동료가 내 소지품을 챙겨 병원으로 왔다. 그녀가 내 가방과 몇 가지 속옷을 챙겨 오며 웃으며 말했다.
"와, 서랍이 어쩜 그렇게 정돈돼 있어? 완전 군대식 접기 아니냐!”
나는 그 순간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다행이다. 일주일 전만 해도 엉망이었는데…'
만약 그 지저분한 서랍을 누군가 봤다면? 으,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어쩌면 팬티 하나가 내 자존심을 지켜준 셈이다
시인의 이 구절이 내 경험과 겹치며, 그때 사소한 정리 습관이 나를 지켜줬던 순간이었음을 이제 깨닭는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입원 기간이 길어지며 내가 맡았던 HR 업무, 특히 면접 스케줄과 지원자 리스트, 후보자별 메모같은 중요 자료도 같은 부서 직원에게 넘어갔다. 마침 그 시기가 면접이 몰려 있던 때라, 작은 실수 하나에도 일정이 틀어지기 쉬운 상황이었다.
다행히 평소 체계적으로 정리해 둔 덕분에 내가 없는 동안에도 모든 일정이 차질 없이 진행됐다. 병실에서 그 소식을 듣고, 나는 또 한 번 속으로 중얼거렸다.
'서랍도, 일도 정리해 둬서 천만다행이다.'
이번에 이 시를 읽으며, 그때의 기억이 왜 이렇게 선명히 떠오르는지 곰곰이 생각해 봤다.
오규원의 시는 죽음 앞에서도 팬티를 걱정하는 사람의 마음을 통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단정함이 우리 삶의 체면과 존엄을 지켜준다고 말한다. 한국 문화 속 '염치'와 '정갈함'은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한 외적 꾸밈이 아니다. 어쩌면 스스로를 다잡고 마음의 질서를 유지하는, 가장 개인적인 방식이다.
그날 정리해 둔 서랍장과 업무 폴더는 남의 눈이 닿지 않는 곳에서, 나의 준비된 삶을 보여줬다. 정돈된 서랍이 민망함을 막아주었고, 체계화된 자료가 회사의 업무를 이어가게 했다. 결국 위기 속에서 나를 지켜준 건 보이지 않는 곳의 작은 습관들이었다.
병원 침대에 누워, 나는 정리된 서랍과 폴더가 가져온 평온함에 미소 지었다. 그 소소한 단정함이 삶의 균형을 지켜준 순간이었다.
한국에 오기 전, 동생에게 집을 맡기며 괜히 서랍 정리를 또 한 번 했다. 그땐 그냥 '혹시라도' 하는 마음이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 작은 단정함이 내 마음을 편하게 해 줬던 것 같다.
요즘 여행을 다닐 때도 마찬가지다. 호텔방을 떠날 때마다 괜히 수건을 개켜두고, 쓰레기를 한데 모으고, 침대를 가지런히 덮는다. 누가 볼 것도 아니고, 다시 그 방에 올 일도 없는데.
이젠 남의 시선 때문이 아니다. 내 마음의 작은 질서를 지키기 위해, 그리고 스스로를 존중하기 위해.
오늘도 나는 내 서랍과 여행지의 방을 들여다본다. 그게 내가 나를 아끼고 단단하게 세우는, 가장 조용한 방식이니까.
세상의 시선은 접어두고, 오늘도 내 마음의 서랍을 정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