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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기상청 출신입니다

내 마음의 하늘을 읽다

by Susie 방글이




날씨는 하루를 여는 문 아닌가?


여행을 앞둔 전날 밤, 나는 침대 머리맡에 놓인 휴대폰을 들어 날씨 앱부터 열었다. 구름이 낀 아이콘 옆에는 '비 올 확률 60%'라는 숫자가 떠 있었다. 양말 여유분도 챙기고, 우산을 꺼냈다. 혹시 추울지 몰라 긴팔 옷도 몇 개 넣는다.


예정보다 짐이 불어나 가방 지퍼가 잘 잠기지 않았지만, 그래도 마음은 한결 편했다. 날씨를 안다는 건, 하루를 조금 더 예상할 수 있다는 뜻이니까.


요즘 날씨 앱의 정확도가 참 높다. 비 올 확률, 자외선 지수, 바람 방향까지 알려준다. 그걸 보다 이런 상상을 해본다. 마음의 날씨도 예보할 수 있다면 어떨까?


나는 한때 그걸 진짜로 했다. 전 직장에서, 인사과 담당자로 일하며, 사장의 기분 예보를 담당했다.

인사과는 원래 사장과 가장 가까이에서 일하는 자리다. 그러니 직원들이 내게 사장 기분이 어떤지 묻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아침마다 동료들의 전화가 울렸다. "오늘… 날씨 어때요?" 나는 사장의 눈썹 각도, 말투의 떨림, 책상 위 머그잔의 위치까지 분석해 답했다. "흐림입니다. 강한 강풍은 없을 듯하지만 조심하세요."


나에게 사장이 "요즘 지원자들이 좀 뜸하네"라고 툭 던지면, 그건 폭풍의 전조였다. 곧 회의가 소집되고, 의미 없는 자기반성 타임이 이어졌다. 나는 동료들의 단톡방에서 속삭였다. "감정 저기압, 우박성 피드백 주의."


가끔은 맑은 날도 있었다. 사장이 "굿모닝 에브리원!" 하며 웃는 날이면 사무실에 봄바람이 불었다. 나는 단톡방에 띄웠다. "오늘 사장님 날씨 맑음. 결재 서류 통과 확률 70%. 지금 올리세요!"


이제 그 회사를 나왔다. 타인의 기분을 읽던 나는, 이젠 내 마음의 풍향을 관측한다.

무지개는 모든 혼란이 지나간 뒤, 비로소 드러나는 마음의 화해 같아.
비 오는 날은 말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처럼, 감정이 천천히 스며드는 것 같아.
안개 낀 아침은 앞이 잘 보이지 않는 마음처럼, 방향도 감정도 잠시 멈춰 선 기분이다.
눈이 내리면, 시끄러운 세상에 살며시 덮이는 고요한 위로 같아.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은 걱정 없는 어린아이처럼 가볍고 단순한 기분이 드는 것 같아.
화려한 노을은 하루를 버텨낸 마음이 마지막으로 터뜨리는 불꽃같은 감정 같아- 어느 하루 퇴근길.

아침에 눈을 뜨면 스스로 묻는다. 오늘 내 마음의 하늘은 어떤가?

만약 가상의 감정 예보 앱이 있다면, 이런 알림이 뜰지도 모른다.


오전 8시 3분: 감정 스모그 주의보 발령

어젯밤 뉴스에서 본 황당한 사건, 아직도 머릿속에서 뿌연 안개처럼 맴돎.
처방: 창문을 활짝 열고 커피 한 잔. 그리고 "세상은 원래 이상해"라고 속으로 3번 말해봐.


오후 1시 17분: 우박성 멘트 경보

"그 말, 지금 꼭 해야 돼?" 싶은 누군가의 한마디에 기분이 상할 수 있음.

처방: 좋아하는 노래 크게 틀고, 따라 부르다 보면 감정 회복 완료 가능.


오후 4시 5분: 일시적 갬 예상

늦은 오후, 커피 한 잔과 창밖 햇살이 조용히 스며드는 시간.

처방: 따뜻한 음료를 들고 창가에 잠깐 서 보세요.

"나 진짜 뭘 원하지?"라는 질문을 살짝 던지되, 너무 깊이 파지 말 것. 감정 소나기 몰려올 수 있음.


오후 6시 42분: 감정 폭풍주의보 발령

쌓이고 쌓였던 짜증, 서운함, 피곤함이 한꺼번에 몰려오는 격변의 시간대.
"나만 참았나?"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면 이미 첫 돌풍은 시작된 것.

처방: 휴대폰은 잠시 멀리. 말 걸지 말라는 표지판을 마음속에 세워두고, 외식을 하세요.


감정을 들여다보는 건 단순히 기분을 체크하는 게 아니다. 그 안에서 내가 진짜 원하는 걸 찾아가는 여정이다. 어제는 따뜻한 밥 한 끼가 필요했고, 오늘은 조용히 책을 읽으며 나를 채우고 싶을 수도 있다. 예보를 하다 보니, 내 마음이 어디로 흐르는지 알게 된다.


감정은 날씨처럼 예측이 어렵다. 맑다고 했다가 비가 내리고, 폭풍일 줄 알았는데 평온하기도 한다. 하지만 하나 확실한 게 있다.


이제 나는 타인의 눈치를 보지 않고, 먼저 나를 챙긴다. 흐리면 깊은숨을 내쉬고, 소나기가 오면 잠깐 비를 맞으며 걸음을 멈춘다. 그리고 아주 가끔, 무지개가 뜨면 그 순간을 눈에 담는다.


오늘의 예보는 이렇다. 흐림으로 시작했지만, 오후엔 햇살이 비친다. 나는 내 마음의 무지개를 찾고, 내가 원하는 삶을 그려본다. 먼저 나를 챙기는 것, 그걸로 충분하다고, 나는 오늘도 나에게 말해준다.

맑은 날의 기분은, 두려움마저 장난처럼 가볍게 느껴지는 순간을 만든다

오늘도 나는, 나의 날씨를 따라 산다. 흐려도 괜찮고, 맑으면 더 좋고… 나는 계속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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