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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그리고 우리

각자의 섬에서 보내는 편지

by Susie 방글이





회사 연말 파티는 화려했다. 반짝이는 조명 아래, 동료들은 잔을 쨍 쨍 부딪치며 깔깔 웃었다. 테이블엔 와인과 근사한 음식들이 넘쳐났다. 그런데 나는 그 시끌벅적한 분위기 속에서 슬쩍 외로워졌다.


몸은 파티 한가운데 있었지만, 마음은 이미 집으로 가 있었다. 꽉 끼는 드레스 대신 푹신한 잠옷, 쨍한 샴페인 대신 따뜻한 차 한 잔이 더 어울릴 것 같은 밤. 그런 기분, 당신도 아는가?


얼마 전, 정현종 시인의 시집을 펼치다가 그때의 순간들이 떠올랐다. 정현종에게는 두 편의 '섬'이 있다.


하나는 "사람이 섬이다"라는 아주 짧은 시.


또 하나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라는 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저 섬처럼 고요한 틈이 필요하다

두 시 모두 몇 줄 안 되는 짧은 글인데, 오히려 그래서 더 마음에 콕 박힌다. 별말 아닌 듯 던진 한마디가 괜히 오래 남는 것처럼.


섬은 고독을 말하기도 하고, 관계의 거리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혼자 떠 있는 외로운 공간, 그 안엔 말하지 못한 비밀스런 마음도 숨어 있다. 우리 모두 저마다의 섬에 산다. 그곳엔 쉽게 열어 보이지 않는 마음의 구석이 있고, 가끔은 누군가 슬쩍 들여다봐 주길 바라기도 한다.


파티에서 문득, 평소 조용하던 내향적인 동료를 봤다. 그날만큼은 달랐다. 큰 소리로 웃으며 잔을 부딪쳤다. 그런데 그 웃음에 어딘가 어색한 그림자가 섞여 있었다. 잔을 내려놓는 순간, 그의 손끝이 살짝 떨렸고, 테이블 위 휴대폰에는 잠깐 아이들 사진이 켜졌다.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나처럼 포커페이스를 하고 있는 걸까, 아님 진정 그 자리가 재미있는 걸까?


나는 이제 그 북적이는 공동체에 속해 있지 않다. 남편과 한국의 시골 마을로 여행을 떠났다.

반짝이는 조명 대신 잔잔한 호수가 우리를 맞았다. 한 카페에 들어섰다. 창밖으론 호수가 보이고, 커피 향이 은은하게 퍼졌다. 남편은 옆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그러다 책장을 넘기다 말고 잠시 멈췄다. 창밖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엔 뭔가 말하지 않은 이야기가 담긴 듯했다. 우리는 같이 있지만 이렇게 가끔씩 딴 세계에 빠지기도 한다.

말 없는 틈, 그 사이로 각자의 생각이 조용히 흘러갔다.

문득, 딸의 짓궂은 웃음소리가 귀에 맴돌았다. 카페 문이 열리고 닫힐 때마다 들어오는 바깥공기에 그 웃음소리가 실려 오는 것 같았다. 강아지 빼꼼이가 딸 옆에 찰싹 붙어 온몸을 비비며 꼬리를 흔들고 있을 것만 같았다. 강아지의 반짝이는 눈, 작작거리는 작은 발톱 소리, 딸과 소파에 나란히 앉아 시시콜콜 나누던 이야기들.


그런 평범했던 순간들이 이 조용한 카페 안에서 괜히 또렷해졌다. 지금 떨어져 있는 가족의 생각으로 차 있었다. 바쁠 땐 잘 몰랐는데, 조용해지니 어김없이 떠오른다.


카페도 이내 북적이기 시작했다. 직원이 환하게 "즐거운 하루 되세요!" 하고 인사했지만, 그녀의 눈가엔 살짝 피로가 묻어 있었다. 손목에 감긴 낡은 빨간 실팔찌가 문득 눈에 들어왔다. 누군가의 선물일까, 아니면 자기에게 건넨 작은 다짐일까. 빠르게 움직이는 손놀림 사이, 잠깐 고개를 숙인 얼굴엔 순간의 고독이 스쳤다.

그녀도 아마도 간절히 퇴근시간만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우리는 모두 자기만에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진짜 마음은 나만이 안다. 그렇다고 그게 대단히 비밀스럽거나, 누군가 꼭 알아주길 바라는 건 아니다. 누구나 가슴속엔 남몰래 품고 있는 조용한 방 하나쯤은 있으니까. 작은 그리움, 쿡쿡 찌르는 기대, 아쉬움등이 숨어 있지 않을까. 잠시 상상해 본다.


섬은 '나'이면서 '당신'이다. 우리는 소란 속에서도, 고요한 여행 속에서도 각자의 섬에 머문다. 그리고 어쩌다 한 번씩, 서로를 향해 작은 용기를 낸다.


어색한 물살을 건너는 그 순간, 비로소 관계가 시작된다. 다시금 정현종 시인의 시 구절이 떠오른다.

"그 섬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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