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ght) AI는 마케팅을 어떻게 바꿀까
"유튜브? 그냥 동영상 올리는 사이트 아닌가요?"
2014년 경 들었던 이 말이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다. 그때만 해도 유튜브를 마케팅 툴로 활용하는 브랜드는 드물었다. 기업에게 유튜브는 그저 '심심할 때 보는 영상 사이트' 정도였다. '콘텐츠 마케팅'이라는 용어조차 낯설던 시절. 우리 팀은 당시 최고의 인기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설정을 차용해 브랜디드 콘텐츠를 만들었는데, 이 콘텐츠가 유튜브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성공의 배경에는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방송사의 폐쇄성이 있었다. 그때만 하더라도 TV방송사들은 자사 콘텐츠의 일부라도 유튜브에 ‘공짜’로 올리는 일은 없었다. 방송사 역시 플랫폼 사업자였기에 유튜브 같은 다른 플랫폼을 밀어줄 이유가 없었다. TV 영상을 다시 보고 싶다면, 방송사의 홈페이지에서 유료 결제하고 보라는 의미였다. 아니, 유료가 아니더라도 굳이 유튜브에서 보게 할 이유는 없었다. “누구 좋으라고 유튜브에 공짜로 올려?”라는 생각이 있었던 것이다. 그 덕에 유튜브에서 '응답하라 1988' 검색하면, 우리 팀이 제작한 브랜디드 콘텐츠가 유일한 영상이었다.
그리고 5년 후.
"엄마, 나 유튜버 될래요!"
"나 회사 그만두고 유튜브 해볼까?"
2018년 즈음이 되자 세상이 완전히 뒤집혔다. 그야말로 유튜브 광풍이 불었고 아이 어른 할아버지 할머니 할 것 없이 모두가 유튜브를 즐기는 시대가 돼 버렸다. 사람들은 방송에서 볼 수 없었던 과감하고 신선하며 때론 선을 넘어버린 콘텐츠에 열광했다. 유튜버라는 게 직업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시대였고 끼와 재능과 성실함이 더해진다면 평범한 사람도 우주 대스타가 될 수 있을 것만 같은 시대였다. 초등학생의 장래희망에 '유튜버'가 순위권에 올라가고, 직장인들이 회사의 희망을 본 것이 바로 유튜버였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이라고 가만히 있을 리 없다. 사람이 몰려드는 곳엔 언제나 나 같은 마케터들 또한 몰려들게 돼 있다.
사람들이 무언가에 열광한다는 것은 그 시대의 욕망을 마주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렇게 마주한 욕망 안에 많은 비즈니스기회가 숨어있기 마련이다. 이번엔 유튜브였다. 유튜브에 기회가 보였다. 기업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브랜드 채널을 만들었고 콘텐츠를 올렸다.
금광을 찾아 서부로 몰려가는 골드러시 시대처럼. 한 개로 부족해서 여러 개 채널을 만들어 운영하는 곳도 흔했다. 10개가 넘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넥슨' 같은 곳도 있었다. 그리고 브랜드 채널에는 브랜드가 만드는 웹예능과 각종 기업 홍보 영상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때론 'KT 와이키키 스튜디오'처럼 브랜드를 가린 채 웃음에 포커스를 맞춘 콘텐츠도 있었고, 때론 한화처럼 자사가 가진 자원을 다큐멘터리로 보여주는 곳도 있었다. 그렇게 2019~2022년 정도가 브랜디드 콘텐츠의 전성기가 아니었나 싶다. 콘텐츠 마케팅에 열광하며 제작 수요도 높았다. 2021년에 내가 <유튜브 마케팅 인사이트>라는 책을 쓰게 된 이유이기도 했다.
그리고 현재.
2024년, 유튜브 생태계가 조용히, 하지만 분명하게 변화하고 있다."월 수입 1,000만 원 유튜버!" 같은 화려한 헤드라인은 더 이상 보기 힘들어졌다. 대신 "100만 구독 유튜버도 적자…수익 내기 어려운 현실"같은 냉정한 기사들이 뉴스를 채우고 있다. 직장을 박차고 나와 유튜버의 꿈을 좇았던 이들의 고백도 들려온다. "회사 다닐 때만큼도 벌지 못해요." 배우나 가수처럼, 유튜버 세계도 결국 소수의 스타들이 수익을 독점하는 구조로 굳어지고 있는 듯하다.
기업이 운영하는 브랜드 채널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우후죽순처럼 쏟아지던 브랜디드 콘텐츠들이 이제는 좀 다른 국면을 맞이했다. 한때 웹예능의 메카처럼 보이던 기업 채널들 중에는 침묵하는 곳도 보인다. 매주 새로운 콘텐츠를 쏟아내던 채널 중, 어느새 '마지막 업로드 2년 전'이라는 쓸쓸한 흔적만 남긴 곳도 있다. 하지만 잠깐, 이게 정말 '유튜브의 종말'을 의미할까? 우리는 정말 '절망의 계곡'을 지나고 있는 걸까? 어떤 기업들에게 이건 분명 사실이다. 더 이상 기업의 웹예능이나 자사 홍보 콘텐츠가 예전만큼 효과를 내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곳들이 분명 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유튜브는 여전히 사람들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미디어 플랫폼이며, 그 시청 시간은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앱 분석 서비스 와이즈앱에 따르면, '24년 한국인의 유튜브 월평균 사용시간은 40시간으로 조사를 시작한 2019년 이래 최고치를 경신했다. 미국인의 월평균 시청시간이 24시간, 글로벌 평균 23시간을 훨씬 웃도는 시간이다. 유튜브의 영향력이 그만큼 우리 일상 속으로 강력하게 파고든 것으로 읽힌다. 초기에는 젊은 층을 중심으로 퍼져나갔다면, 이제는 고령층까지 아우르는 진정한 의미의 대중 매체로 자리 잡은 것이다.
더욱 주목할 만한 것은, 이런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성공적으로 기회를 만들어내는 브랜드들이 분명 존재한다는 점이다. 이들은 콘텐츠 마케팅을 통해 실질적 성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많은 기업들이 전략 없이 뛰어들어 실패를 맛보는 동안, 이들은 영민한 방식으로 고객과 소통하며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토스, 무신사, 컬리 같은 브랜드들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흔해빠진 웹예능이나 연예인 체험기 같은 식상한 콘텐츠로 승부를 보지 않는다. 대신 고객들이 찾아보고 싶어 할 만한, 가치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내고 있다. 아마도 이들은 실패한 브랜드들의 사례를 보며 새로운 깨달음을 얻은 것 아닐까. 그저 그런 브랜디드 콘텐츠에 환멸을 느낀 고객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안겨주는 데 성공한 것이다.
모두가 유튜브에 열광하며 우후죽순 채널이 생기던 초기 시기를 지나, 다수가 절망하던 시기를 거쳐 이 제막 뭔가를 발견하며 점점 상승하고 있는 브랜드들을 있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유튜브 생태계의 성장 과정을 더닝크루거 효과 곡선에 대입해 아래처럼 표현해 봤다. 과연 우리 브랜드는 어디쯤에 위치해 있을까.
당연히 우리 목표는 찐팬의 고원으로 향하는 것이다. 그곳에서 브랜드는 팬들의 사랑을 받으며 팬과 함께 끈끈한 관계 속에서 함께 성장하게 된다. 흡사 유명 셀럽과 팬들과의 관계처럼 말이다. 이 글에서는 바로 그 고원으로 가기 위한 오르막을 오르는 이들을 만나보고자 한다. 이들의 콘텐츠 스타일과 접근 방식은 각자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자신들만의 확실한 팬층을 구축해가고 있다는 점이다. 각자의 깨달음과 전략을 바탕으로, 브랜드만의 독특한 팬덤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시장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어떤 깨달음을 얻어 지금의 성공을 일궈낼 수 있었을까? 이제부터는 '깨달음의 오르막'을 오르고 있는 브랜드들과 함께, 그들이 포착한 시장의 변화를 자세히 들여다보자.
깨달음의 오르막을 오르기 위해, 시장의 변화를 포착해 보자. 이 글에서는 크게 두 가지 변화를 이야기하겠다.
유튜브 생태계에서 첫 번째로 눈여겨봐야 할 변화는 '린백(Lean Back) 콘텐츠'의 급부상이다. 린백 콘텐츠란 소파에 등을 기대고 TV를 보듯 편하게 소비하는 콘텐츠를 말한다. 이는 유튜브의 초기 시청 형태였던 '린 포워드(Lean Forward)'와는 상반된 개념이다. 린 포워드가 양손으로 폰을 쥐고 몸을 앞으로 숙여 거북목 자세를 취한 뒤 적극적으로 콘텐츠와 상호작용하는 방식이었다. 반면 린백은 등을 기댄 자세를 말하는 보다 수동적이고 편안한 시청 형태를 의미한다.
어찌 보면 최근 들어 유튜브 시청 행태 중 TV 시청과 유사해지고 있는 부분이 있다. 사람들은 집에 들어오면 습관적으로 유튜브를 켜놓고, 다른 일을 하면서 '듣는' 매체로 활용한다. "혼자 있을 때 적막이 싫어서 틀어놓는다"거나 "밥 먹을 때 조용한 게 어색해서 켜둔다"는 이용자들의 발언이 이를 잘 보여준다.
실제로 TV에 연결해 유튜브를 시청하는 CTV(Connected TV) 이용 시간은 매년 증가하고 있으며, 많은 이용자들이 공부할 때의 백색소음이나 운전 중 라디오 대용으로 유튜브를 활용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자연스럽게 러닝타임이 긴 콘텐츠인 '롱폼'의 부상으로 이어진다. 기존의 유튜브 예능이나 유튜버들의 콘텐츠가 10분 내외였던 것을 감안해 보면, 10분마다 새로운 영상을 찾아야 했다. 반면 롱폼 콘텐츠는 10분마다 새로운 영상을 찾아 클릭할 필요 없이, 30분에서 1시간 정도의 긴 콘텐츠를 틀어두고 편하게 소비하는 것이다. "아닌데 지금은 숏폼의 시대인데?"라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숏폼이 사라지고 있다는 말이 아니다. 숏폼이 대유행을 하고 있는 이런 시대에 롱폼을 보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는 의미다. 언제나 변화의 시작에 주목해야 거대한 흐름을 예측할 수 있다. 결국, 이 건 숏폼이 사라지고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숏폼의 대세화 속에서 롱폼 또한 다시금 주목을 받으며 콘텐츠 길이의 양극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
사실 숏폼과 롱폼, 이 둘의 역할은 분명히 다르다. 우리가 대중교통에서 유튜브를 볼 때와 밥 먹으며 유튜브를 볼 때, 그리고 자기 전에 유튜브를 이용하는 방식이 다 다르듯 각자의 쓸모가 있다. 그래서 이를 똑똑히 이용하는 채널의 경우, 숏폼은 예고편처럼 사용하고 롱폼을 본방송처럼 포지셔닝한다. 숏폼을 통해 롱폼으로 유입시키는 용도로 쓰고, 롱폼을 통해 채널의 팬심을 올리는 용도로 활용한다.
이 같은 롱폼 트렌드는 통계를 통해서도 나타난다. 구글에서는 매년 유튜브 인기콘텐츠를 발표하는데. 2023년 인기 콘텐츠 TOP 10중 1위는 차.쥐.뿔. 카리나 편이 차지했다. 해당 콘텐츠의 러닝타임은 약 40분 분량이나 되지만, 조회수는 2500만 뷰가 넘는다. 3위는 핑계고 설연휴 콘텐츠다. 이건 러닝타임이 1시간 가까이 되는데 조회수는 1300만 뷰가 넘는다. 처음 핑계고가 등장했을 때는 유난히 느슨한 호흡감이 유튜브에서 보기 드문 거라고 생각했다. 대부분의 유튜브 예능이 10~15분 정도로 빠른 편집감과 현란한 자막플레이가 기본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슴슴한 평양냉면처럼 켜놓고 딴짓하며 듣기 좋다는 생각이 갈수록 들어, 이제는 나도 빠짐없이 챙겨보는 콘텐츠가 되었다.
위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 린백, 롱폼 콘텐츠는 대부분 토크 형태가 많다. 그중에서도 연예인 토크가 많다. 구글 공식 블로그에서도 유튜브 트렌드 중 하나로 ‘연예인 토크 콘텐츠’를 꼽았으니 말 다했다. 친구를 집에 초대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정재형의 요정식탁’이나, ‘조현아의 목요일 밤’이 대표적 사례다. 정재형과 조현아와 직접적인 친분이 있는 이들을 중심으로 시작된 콘텐츠이다 보니 이들 사이에서 오가는 대화는 편안하다. 웃기려고 노력한다거나 무언가를 억지로 끌어내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없다. 오히려 개인적 친분에서 나오는 '찐텐'과 시간의 퇴적 속에 녹아든 그들의 관계를 엿보는 재미가 있다.
브랜드가 바로 이러한 트렌드를 브랜드가 놓칠 리 없다. 이 같은 연예인 토크쇼를 가장 영민하게 이용한 사례로 컬리의 '냉터뷰'를 들 수 있다. 이 콘텐츠에서는 덱스, 사나와 같은 비주얼 연예인을 호스트로 내세워 게스트의 냉장고를 털어(?)본다. 그리고 후반부에서는 게스트와 함께 요리까지 해보는 구성이다. 콘텐츠의 길이는 평균 30분~50여 분에 이른다. 1시간 정도 되는 콘텐츠도 간간이 보일 정도로 롱폼이다. 사실 구성 자체는 아주 특별할 게 없지만, 훈훈한 연예인 투샷을 볼 수 있다는 점이 차별성이 될 것 같다. 그래서인지 냉터뷰가 업로드되는 '일일칠' 채널의 일평균 조회수는 71만 뷰나 된다. 이 긴 영상을 매일 같이 보는 횟수가 무려 70만이 넘는다는 의미다. 콘텐츠별 평균 좋아요는 1만 개에 달하고 댓글수는 400여 개다(출처: 블링, 조사일: '24.12.15). 브랜드가 만든 채널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큰 성공을 일궜다.
주목할만한 점은 컬리는 콘텐츠 내에서 자사 브랜드를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이게 컬리가 운영하는 채널인지 알기 어려울 정도다. 단지 후반부에 요리하는 재료를 소개하며, 자사몰에 랜딩 될 수 있는 링크를 올려뒀을 뿐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하자면 자사의 브랜드 컬러인 보라색을 일관되게 사용하고 있으며 자사가 추구하는 고급스러움을 영상에서도 담고자 했다.
특이한 점은 콘텐츠 안에서 타사의 PPL을 진행한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컬리의 브랜드 콘텐츠인데 타사 광고를 하고 있다는 말이다. 브랜드 간의 콜라보다 협업과는 분명히 다른 행보다. 진짜로 타사의 광고를 해주는 식이다. 마케팅 업계에서 불문율처럼 여기는 부분까지 과감하게 넘어서며 컬리가 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물론, 어마무시한 셀럽 출연료를 감당하려는 의도도 있겠지만 나는 좀 더 장기적인 관점에서 다른 속내가 있다고 본다. 컬리는 일일칠 채널을 단순한 마케팅 도구가 아닌 독립적인 콘텐츠 플랫폼으로 발전시키려는 계획이 있어 보인다.
콘텐츠 비즈니스는 일단 고객이 모이고 나면 뭘 해도 된다는 네트워크 효과가 적용된다. 그러니까 일단 냉터뷰의 팬이 생기고 나면 그 뒤로는 우리 브랜드와 우리 상품을 판매할 수도 있지만, 콘텐츠 그 자체가 돈이 되는 비즈니스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앞선 글에서 유튜브 생태계 안에서 브랜드는 콘텐츠 제작사가 되어야 한다는 말을 했다. 컬리는 바로 그러한 뷰를 가지고 자기만의 로드맵을 하나씩 실행해 나가고 있는 것 아닐까. 앞으로 일일칠 채널은 어떤 모습으로 진보할지, 과연 '깨달음의 언덕'을 올라 팬과 함께하는 평온의 고원을 맞이하게 될지 함께 지켜보자.
이러한 린백/롱폼의 대세화가 만들어낸 또 하나의 경향성이 바로 교양 컨텐츠의 부상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SK브로드밴드가 운영하고 있는 'B tv 이동진의 파이아키아' 채널이다. 이 채널은 이동진이 출연해 최신 영화나 콘텐츠 리뷰는 기본이고, 총균쇠, 사피엔스 같은 배게 만한 책을 리뷰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나 조여정 배우의 인터뷰 콘텐츠도 있다. 이동진 원톱으로 끌고 가는 종합 교양 채널 정도로 볼만하다. 이 채널은 2020년 9월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수년간 동일한 컨셉으로 운영해 오고 있다. 콘텐츠 별 평균 '좋아요'는 4천, 평균 댓글수는 518건으로 브랜드가 운영하는 콘텐츠임을 감안할 때 상당히 높은 수치다(출처: 블링, 조사일: '24.12.15). 그래서인지 최근 1년간 가입자 증가 수치를 보면 꾸준히 상향 중임을 알 수 있다. 화려한 셀럽들이 등장해 다양한 콘텐츠를 쏟아내고 있는 이 생태계에서 이렇게 조용하고 진중한 콘텐츠가 좋은 반응을 보인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흥미로운 점은 브랜드가 운영하는 채널임에도 상품을 강력히 홍보하거나 세일즈 메시지를 내세우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동진이 등장해 btv서비스가 왜 좋은지, 혹은 btv를 통해 어떤 혜택을 볼 수 있는지 굳이 소개하지 않는다. 대신 콘텐츠의 내실을 다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편이다. 영화를 깊게 파는 이들이 봐도 흥미를 가질 수 있게 탄탄한 구성을 한다. 그런 영화 리뷰는 SK브로드밴드가 진행하는 IPTV 사업의 본질과도 연관성이 높다. 그렇기에 영화 리뷰라는 콘텐츠의 제작에 브랜드의 진심을 담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브랜드도 오랜 시간 이 콘텐츠를 끌고 갈 수 있었던 것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성공의 핵심은 바로 브랜드가 가진 본질적 역량과의 '연관성' 그리고 그것을 지속해 나갈 수 있는 '지속성' 아니었을까.
물론, 해당 채널에서 Btv의 광고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영상 상단에 Btv브랜드를 노출하고 있고, 영상 중간에 중간 광고처럼 Btv의 상품을 소개하기도 한다. 하지만 영상 전체의 맥락을 봤을 때 몰입을 해치는 수준은 아니다. 오히려 워크맨이나 전과자 같은 유튜브 예능 콘텐츠의 중간 광고보다 순한 맛에 가깝다. 브랜드가 운영하는 채널이기에 상품 홍보는 필연적일 수밖에 없는데, 도가 지나치면 고객을 떠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적정선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이 채널의 사례는 바로 그 적정선이 어느 지점인지 잘 보여주고 있는 것 아닐까. 여기서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건, 콘텐츠 경쟁력이 분명하게 받쳐줘야 한다는 것이다.
린백/롱폼의 경향성과 함께, 컬리와 Btv의 사례를 살펴봤다. 이들은 자신만의 방법으로 성과를 만들며, 깨달음의 오르막을 오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린백/롱폼 경향을 인지하고 그 같은 성과를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시장의 변화에 안테나를 세우고 고민하는 시간만큼 스스로의 진보를 일궈낼 수 있지 않았을까. 숏폼과 롱폼이 공존하는 가운데, 린백 콘텐츠의 성장은 새로운 시청 행태와 콘텐츠 전략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다음으로 유튜브 생태계에서 주목할 만한 변화는 바로 빅플레이어들의 대거 유입이다. 이들은 크게 세 부류로 나뉜다. 연예인, 스타PD, 그리고 전문 제작사다. 이들의 등장은 유튜브 생태계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고 있을까?
(1) 연예인
먼저 유튜브 생태계에 등장한 연예인에 대한 얘기부터 해보자. 이들은 이미 대중적 인지도라는 강력한 무기를 갖추고 있다. 여기에 외모와 입담이라는 매력 자본, 카메라 앞에서의 자연스러움, 대중의 취향을 꿰뚫는 감각까지 겸비했다. 연예인들에게 유튜브는 곧 자신만의 방송사를 차리는 것과 다름없다.
김종국의 '짐종국' 채널은 단 한 명이 촬영과 편집을 도맡아 하지만 구독자는 300만을 돌파했다. 강민경, 신세경, 성시경 같은 이들은 그간 유튜브를 꾸준히 운영해 온 것으로 유명하다. 최근에는 최화정과 한가인이 새롭게 합류해 화제를 모았다. 최화정은 상당수 콘텐츠가 조회수 100만을 넘기고 있고, 한가인은 인기 급상승 동영상 1위까지 차지했을 정도다. 방송에서는 볼 수 없었던 이들의 새로운 모습이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한 것 아닐까.
무엇보다 이들의 가장 큰 강점은 바로 출연료가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신의 채널이니 초상권도 무제한으로 활용할 수 있다. 다른 제작사들이 연예인을 섭외하려면 막대한 출연료를 지불해야 하는 것과 비교하면, 이는 엄청난 경쟁력이다. 게다가 대단한 기획이 아니어도 스타의 일상 자체가 콘텐츠가 된다.
(2) 스타PD
다음으로 주목할 빅플레이어는 스타 PD들이다. 나영석 PD는 '채널 십오야'를 개설해 '나불나불', '뉴욕뉴욕' 등 유튜브 전용 콘텐츠를 선보였다. 김태호 PD는 'TEO'라는 채널에서 '장도연의 살롱드립'이라는 토크 콘텐츠를 히트시켰다. 더 나아가 '지구마블 세계여행'은 TV와 유튜브 각각의 특성에 맞춘 버전을 따로 제작하는 실험적인 시도를 했다. KBS '해피투게더'를 연출했던 PD는 '차.쥐.뿔'을 제작해 화제를 모았다. 이처럼 지상파와 케이블 방송의 기획·연출 전문가들이 속속 유튜브에 진출하고 있다. 이들은 탄탄한 기획력과 제작 노하우를 바탕으로 새로운 환경에서 성과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유튜브가 주목받을 수 있었던 TV와 전혀 다른 시각, 색다른 시도 등 참신성이 크게 한몫했다. 바로 그런 맛에 유튜브를 봤던 이유도있다. 그렇다 보니 나영석 PD는 유튜브를 배우겠다며 침착맨의 채널을 방문하기도 하고, 피지컬 갤러리에서 김계란을 만나기도 했다. 방송계의 거장들이 유튜브의 문법을 하나씩 체화해 가는 모습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그들이 만든 콘텐츠의 성공을 통해 확인하고 있다.
이렇듯 평생을 기획과 연출을 업으로 해온 사람들이 유튜브 생태계로 뛰어든 다는 것은 이 세계가 한 단계 더 성숙해진다는 의미가 될 수 있다. 아울러 이 세계도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게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동시에 이제는 단순한 열정과 아이디어만으로는 성공하기 어려운 시장이 되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3) 전문제작사
마지막 빅플레이어는 전문 제작사이다. 전통 미디어 기업들이 유튜브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JTBC는 '스튜디오 룰루랄라'를, CJ E&M은 '스튜디오 와플'을, MBC는 '14F'를, SBS는 '스브스뉴스'를 론칭하며 유튜브 전문 채널을 활발하게 운영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유튜브는 TV의 대항마로 성장했다. TV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파격적인 시도가 가능했고, 평범한 개인도 자신만의 아이디어로 스타가 될 수 있었다. 게임 리뷰어들은 전문 게임 방송보다 더 생생한 콘텐츠를 만들어냈고, 메이크업 크리에이터들은 뷰티 프로그램 못지않은 영향력을 발휘했다. 해외 생활을 솔직하게 전하는 브이로거들, 패션에 대한 소신 있는 의견을 전하는 인플루언서들까지. 이들의 신선한 시각과 거침없는 입담은 기존 미디어가 줄 수 없는 매력이었다.
하지만 판도가 바뀌고 있다. 시청자들의 유튜브 시청 시간이 TV를 압도하기 시작했다. 특히 젊은 세대는 유튜브와 넷플릭스 같은 OTT 플랫폼만 시청하기에 이르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전통 미디어 기업들도 이 시장에 뛰어들었다. 앞서 스타 PD들이 독립해 성공한 것처럼, 이제는 기업 차원의 대규모 투자가 시작된 것이다.
이들의 무기는 강력하다. 수십 년간 쌓아온 인적 네트워크, 제작 경험과 인프라, 탄탄한 자본력까지. 미디어 업계의 '고인물'들이다. 처음에는 새로운 플랫폼 적응에 더뎠지만, 이제는 그들만의 '짬바'를 제대로 보여주기 시작했다. 전문 인력, 스타 섭외력, 제작 노하우, 그리고 긴 호흡의 투자가 가능한 자본력까지 동원하며 빠르게 입지를 다지고 있다.
결과적으로 유튜브는 이제 거대한 '올스타전' 무대가 되었다. 1인 크리에이터의 신선함, 스타 PD들의 기획력, 그리고 대형 미디어 기업의 자본력이 한데 어우러진 각축장이 된 것이다. 전통 미디어의 '귀환'이 유튜브 생태계를 어떻게 변화시킬까.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브랜드의 콘텐츠 마케팅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바로 그 지점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유튜브 생태계의 변천사를 살펴봤다. '절망의 계곡'에 빠진 브랜드들이 있는가 하면, '깨달음의 언덕'을 오르며 성공을 거두는 브랜드들도 있었다. 이들이 발견한 유튜브 생태계의 핵심 변화는 두 가지였다. 린백 & 롱폼 콘텐츠의 부상과 빅플레이어들의 대거 유입이다.
한때 1인 크리에이터들의 놀이터였던 유튜브는 이제 거대한 미디어 생태계로 진화했다. 유명 연예인들이 직접 채널을 운영하고, 스타 PD들이 새로운 실험을 하며, 대형 미디어 기업들이 막대한 자본을 투자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시청자들의 눈높이도 높아졌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걸까? 한 마디로 이 생태계가 더 이상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말하고 싶어서다. 기업 브랜드로서 우리는 분명 곤란한 상황에 처했다. 각 분야 고수들이 총출동한 이 판에서 우리도 두각을 나타내야 하는데, 이게 말처럼 쉽지 않은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렇다면 많은 브랜드들처럼 이 판을 떠나는 게 답일까? 그건 선택이 될 수 없다. 이곳에는 여전히 많은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의 고객들은 여전히 이곳에서 무수한 시간을 보내고 있고, 좋은 콘텐츠는 언제나 사랑받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고무적인 것은, 절망의 계곡을 넘어 고객과의 접점을 찾아낸 브랜드들이 분명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자신만의 생존 법칙을 깨닫고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그들이 발견한 깨달음의 언덕으로 가는 길은 무엇일까? 그 답을 찾는 것이 바로 우리의 다음 과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