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se Study #9) AI는 마케팅을 어떻게 바꿀까
A 씨는 한 스타트업의 마케터이다. 여느 스타트업이 다 그렇듯 혼자서 해결해야 하는 일이 많았다. 콘텐츠도 직접 만들어 유튜브와 SNS 운영까지 하려다 보니 몸이 열개라도 모자랐다. ‘내가 생각한 마케터가 이게 맞나’ 회의감이 들 때쯤 A 씨의 관심을 사로잡은 건 바로 생성형 AI였다.
그에게 생성형 AI는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텍스트만 간단히 입력해도 AI는 원하는 이미지를 뚝딱뚝딱 만들어 냈다. 온라인에 공개된 프롬프트만 따라 해도 이미지의 퀄리티는 몰라보게 좋아졌다. 마치 전문 디자이너의 도움을 받는 듯했다. “아 이런 세상이 있다니” 마술봉을 들고 있는 기분이었다. A 씨는 신이 나서 생성형 AI를 활용했다. 회사의 SNS 뿐만 아니라 각종 홍보물에도 A 씨가 만들어낸 이미지가 사용됐다. 대표까지 나서서 A 씨의 활약을 칭찬했다.
그런데 어느 날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화가로 활동 중인 B 씨가 회사로 메일을 보낸 것이다. B 씨는 A 씨가 자신의 작품을 모방했다며 소송을 예고했다. A 씨는 메일을 받고 어쩔 줄 몰라 당황했다. 그리고 억울했다. B 씨의 작품이 세상에 존재하는지도 모르고 있었는데 표절이라니. 게다가 소송이라니.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A 씨의 이야기는 허구이지만, 실은 마케터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다. 나 또한 광고를 만들고 캠페인을 진행하며 내용증명을 받은 적이 있다. 소송을 예고하는 내용이었는데.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스트레스가 쌓인다. 결과적으로 잘 해결되긴 했지만, 열심히 해보려 했던 일이 꼬여가는 기분은 씁쓸함 그 이상이다.
마찬가지로 누구나 A 씨의 상황에 내몰릴 수 있다. 특히나 생성형 AI의 저작권 이슈는 사용하는 이들 모두에게 잠재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리스크나 다름없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바로 생성형 AI와 저작권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알아야 피할 수도 있고 대응할 수도 있는 것 아닐까. 그리고 그러한 리스크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극복해 낸 기업의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저작권 분쟁이 있었던, 영국의 이야기해 보고 싶다. 영국에서는 ‘23년 무려 200조 원의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이 일어났다. 글로벌 최대 규모의 이미지 제공 업체인 ‘게티이미지’가 Stability AI를 대상으로 한 소송이었다. Stability AI 사는 스테이블 디퓨전이라는 생성형 AI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문제는 스테이블 디퓨전이 게티이미지가 보유한 수백만 장의 이미지를 AI학습에 사용했다 것이다. 그렇다면 게티이미지는 이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놀랍게도 스테이블 디퓨전이 생성한 이미지에 게티이미지 태그가 붙어 있었다. 게티이미지에서 워터마크처럼 사용하는 태그인데, AI가 그 부분까지 학습한 것이다.
AI는 기본적으로 온라인에 공개된 방대학 데이터를 학습한다. 그렇게 학습하여 소설을 만들어 내기도 하고 세상에 없던 이미지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그런데 학습하는 과정이 과연 공정한 지에 대한 논쟁이 있다. 아무리 온라인에 공개된 데이터라 할지로도 저작권자는 존재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저작권자 스스로 누구나 볼 수 있게 공개한 자료라 할지라도 해당 자료를 AI학습에 사용하는 것을 동의하냐는 다른 문제 일 수 있다. 심지어 AI가 학습의 결과물로 수익을 창출한다면 좀 다른 얘기일 수 있다. 예컨대, 내가 저명한 디자이너이고 나만의 독특한 디자인 상품의 샘플을 온라인에 공개해 두었다면 어떨까. 그리고 생성형 AI가 그걸 학습에 유사한 결과물을 만들어 낸다면? 문제가 그리 간단하지 않은 것 같다.
위의 소송에서는 ‘공정 이용(Fair Use)’ 개념이 중요한 잼정이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이것은 저작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동의 없이도 저작물을 사용할 수 있느냐를 판단하는 기준인데, 주로 미국 법원에서 사용된다. 쉽게 말해, 저작권자의 동의가 없더라도 ‘공정 이용’에 부합한다면, 저작권 위반에 대한 면책 권리를 주겠다는 말이다. 이러한 공정 이용을 판단하기 위해 중요하게 보는 몇 가지가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변형적 이용(Transformative use) 여부다. AI가 생성한 결과물에 새로운 변형적 요소가 추가되거나 창의적 요소가 결합되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원 저작물이 갖는 의미와 달리 새로운 의미나 메시지를 갖는 경우 공정한 이용으로 본다. 또한 AI가 생성한 결과물이 사회 전체의 이익을 확대한다면 공정 이용으로 판단할 수 있다. 비록 해당 결과물이 상업적으로 활용된다 할지라도 ‘문화산업발전’이라는 저작권법이 만들어진 취지와도 부합한다.
대표적 사례가 바로 구글의 ‘북스 라이브러리’ 프로젝트다. 구글은 인류의 지식을 디지털화한다는 목적으로 전 세계 도서관들과 협업해 장서들을 스캔하고 있다. 그렇게 디지털화된 책들은 구글 검색을 통해 일부 내용이 공개되는 것은 물론이다. 이건 상업적인 성격을 띠고 있지만, 프로젝트의 취지를 고려할 때 사회 전체의 이익을 확대하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이 경우, 공정 이용에 부합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 참고: 이영록(2009). 구글 북스 프로젝트와 미국저작권법상 고아저작물의 이용. 한국저작권위원회 정책연구실 Copyright Issue Report 제8호. 2009.12. 18
우리나라에서도 유사한 취지의 법률이 있다. 저작권법 제35조 5항인데, 직접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저작물 이용의 목적 및 성격, 저작물의 종류 및 용도, 이용된 부분이 저작물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그 중요성, 저작물의 이용이 시장이나 가치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고려해 저작자의 정당한 이익을 부당하게 해치지 않은 경우 저작물을 이용할 수 있다”
그렇다면, 게티이미지를 사용한 스테이블 디퓨전은 어떨까? 이건 공정 이용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것일까. AI의 사회적 기여와 사회 전체의 이익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AI 생성물이 학습한 원천 데이터의 시장 가치를 얼마나 위협하는지도 고려해야 할 것 같다. 또한 AI 기술에서 다소 뒤처져있는 유럽의 법원이 미국 AI기업을 대상으로 과연 어떤 판단을 내릴지도 고려요소가 될 것 같다.
실제로 EU 집행위원회에서는 얼마 전 AI관련법을 가결시켰다. 해당 법에 따르면 생성형 AI 기업은 2026년부터 학습에 사용된 데이터의 출처를 모두 공개해야 한다. 그리고 저작권자들은 자신의 저작물이 생성형 AI의 결과물에 영향을 미쳤다면 수익배분을 요청할 수 있다. 물론, 기여분을 어떻게 계산해야 할지, 학습 출처에 대해서는 또 어떻게 검증할 수 있을지는 과연 계산할 수 있겠지? ^^;;
결국, 문제가 이렇다 보니 아예 저작권 이슈가 없는 ‘없다고 주장하는’ 생성형 AI가 등장하기도 했다. Adobe의 파이어플라이가 대표적 사례다. Adobe는 권리 보유 중인 콘텐츠나 저작권 만료된 콘텐츠를 학습에 사용했다고 밝혔다. 그러니까 학습한 데이터만 놓고 보자면 저작권 이슈로부터 상당히 자유롭다는 말이다.
물론 여기서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생성형 AI의 결과물은 얼마나 양질의 데이터를 학습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또한 데이터가 방대할수록 결과물의 퀄리티가 좋아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위와 같이 학습 데이터를 한정할 경우, 사실 결과물의 퀄리티가 얼마나 좋아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아마도 Adobe의 특성상 디자인 작업을 위한 보조적인 장치로 생성형 AI를 고려하고 있는 것 아닐까 싶다. 우리가 생각하는 디자이너의 도움 없이도 텍스트 만으로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과는 조금 다른 문제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dobe의 저작권 이슈를 미연에 방지하려는 노력은 높이 사야 하지 않을까.
* 관련기사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3101110971
앞서 저작권 분쟁의 실제 사례와 쟁점에 대해서 살펴봤다. 이러한 저작권 이슈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는 이상 사실상 브랜드가 생성형 AI를 자유롭게 사용하지는 못할 것 같다. 그럼에도 이러한 이슈를 지혜롭게 헤쳐나간 곳이 있다. 바로 한국관광공사다.
한국관광공사는 몇 해 전 진행한 ‘필더리듬오브코리아’ 캠페인을 통해 큰 주목을 받았다. 한국의 전통적인 모습을 퓨전국악, 트렌디한 댄스로 표현하며 창의적인 결과물을 만들어 냈다. 해당 결과물에 감탄한 이들이 많아서인지 필더 리듬오브 코리아 캠페인은 다양한 국내외 광고제를 휩쓸고 단숨에 한국관광공사를 마케팅 명가의 레벨까지 끌어올렸다.
그런 한국관광공사가 이번에도 명예를 걸고 생성형 AI를 활용해 좋은 사례를 만들어 낸 것 같다. 어떻게 하면 한국의 아름다움 모습을 소개할 수 있을지 고민하던 관광공사는 바로 ‘명화’에서 답을 찾았다. 누구나 알만한 명화의 화풍을 모방해 서울의 모습을 재 창조 한 것이다.
고흐나 뭉크, 모네 같은 작가가 현재의 한국을 방문한다면 어떨까. 그들이 한국의 골목길과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장소를 그린다면? 특유의 화풍으로 소화해 낼 현재 한국의 모습이 궁금하다. 이번 캠페인은 바로 그런 호기심에서 시작됐다. 광고는 가장 먼저, 누가 봐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고흐의 화풍으로 그린 한강과 여의도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그렇게 을지로는 틀루즈 로트렉의 화풍으로, 부산 감천문화마을은 마티세의 스타일로 표현됐다. 불국사는 클로드 모네의 그림처럼, 첨성대는 클림트의 화풍으로 그려졌다. 그림은 곧장 영상처럼 살아 움직이며 눈앞에 재현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명소가 이렇게 생경한 방식으로 표현되는 것이 흥미롭다.
그렇다면 한국관광공사는 저작권 이슈를 어떻게 해결했을까? 유명작가의 화풍 또한 분명히 지적재산권으로 보호되는 것일 테니 말이다. 저작권자를 모두 만나서 비용을 지불하고 해결했을까? 그건 아니었다.
공사는 사후 70년이 넘은 화가의 경우, 지적재산권에서 자유롭다는 점에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그렇게 사후 70년 이상된 화가 중 우리에게 비교적 친숙한 이들을 선별했다. 그렇게 선별된 화가들의 작품 모아 AI에게 학습시켰다. 공사는 1100장이 넘는 작품을 확보해 각 작품당 8만 회 이상 AI 학습을 진행했다고 한다. 또한 한국 사진 1600장 이상을 직접 촬영해 AI 학습을 위한 기반을 마련했다고 한다. 즉, AI가 학습한 원천 데이터가 저작권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었다. 그렇다 보니 누구나 알만한 화풍을 활용해 위와 같은 영상을 제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저작권 분쟁 이슈를 피해 가면서도 완성도 높은 영상을 만들어낸 건 전략의 승리 아니었을까. AI의 한계를 이런 방식으로 극복하고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실행력에 박수를 보낸다.
생성형 AI는 마케터에게 전에 없던 가능성을 열어 주었다. 그저 간단히 텍스트 몇 줄만 입력하면, 완성도 높은 이미지가 생성되기도 한다. 우리 매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음악을 만들어 주기도 한다. 그리고 아예 영상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다양한 전문가들이 오랜 시간 협업해야 만들어 낼 수 있는 결과물은 쉽게 만들어 낼 수 있게 한다. 그야말로 마법 같은 일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기술은 저작권 분쟁 이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기업은 생성형 AI로 이미지를 만들었을 뿐인데, “너 왜 내 디자인을 훔쳐?” 라며 소송에 휘말릴 수 있다. 따라서 생성형 AI를 마케터가 사용하기 위해서는 저작권 이슈를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한국관광공사와 같이 아예 AI 학습 단계에서부터 관여해 저작권 이슈를 원천 차단하는 것도 방법이다. 생성된 결과물에 인간의 창의성을 더해, 새로운 결과물을 만드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겠다. 누구의 화풍이라고도 볼 수 없는 일반적인 생성물이나 자연형태를 모방한 생성물을 이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그 외에도 창의적인 방법을 통해 저작권 이슈를 피해 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는 여전히 열려있다고 본다. 마치 한국관광고사가 그리 했든 말이다.
결국, 생성형 AI은 너무도 매력적인 무기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그 위험성을 알고 조심히 다뤄야 효과성이 극대화될 수 있는 무기 아닐까. 지금 우리가 AI에 대해 더 많이 알고 공부해야 하는 이유다.
* 참고 자료
- 조희경(2023). Getty v Stability AI 저작권 침해 소송 사건. COPYRIGHT TRENDS REPORT
- 이영록(2009). 구글 북스 프로젝트와 미국저작권법상 고아저작물의 이용. 한국저작권위원회 정책연구실 Copyright Issue Report 제8호. 2009.12. 18
- 방통위 '생성형 AI 윤리가이드' https://www.korea.kr/multi/visualNewsView.do?newsId=148927815
- 한국관광공사 보도자료 https://knto.or.kr/pressRelease/547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