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다옹
연금에 대한 논의가 뜨겁다. 그렇다고 연금 개혁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연금에 대한 원론적인 이야기부터 시작해 보려고 한다. 연금(年金, annuity)이란 '규칙적인 간격을 두고 지급되는 돈'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예를 들어 1,000만 원이라는 돈을 한 번에 받으면 '일시금'이 되겠지만, 이것을 10개월에 나눠서 100만 원씩 받는다면 '연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연금은 크게 공적 연금과 개인연금으로 나누어진다. 공적 연금에는 국민연금, 기초연금 등 국가나 공공기관에서 주관하는 연금이고, 개인연금은 퇴직연금, 연금저축 등 금융 기관이 주관하고 개인이 선택해서 가입할 수 있는 연금이다. 최근 들어 뜨겁게 논의되고 있는 연금 개혁은 주로 공적 연금에 대한 것이고, 오늘 이야기하려는 연금저축과 IRP는 개인연금에 속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공적 연금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개인연금을 준비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연금은 은퇴 후 고령의 나이에 지속적인 경제 활동이 어려워졌을 때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공적 연금만으로 노후 생활이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공적 연금 외에 추가적인 연금 소득이 필요하다고 판단된다면 선택적으로 개인연금에 가입하는 것이다. 혹자는 개인연금이 아니라 다른 투자 수단이나 사업 소득을 통해 마르지 않는 샘물 같은 충분한 자산을 축적하여 노후를 대비하려고 할 수도 있다. 굳이 주기적으로 받는 연금이 필요 없는 상황을 만들겠다는 판단이다. 그 또한 나름대로 좋은 전략일 수도 있다. 반면, 은퇴 후에도 직장 생활을 하면서 받는 월급처럼 꼬박꼬박 연금을 받는 안정적인 생활을 준비해 두는 것이 마음 편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이 두 가지 노후 대비 방식은 개인의 판단이기 때문에 무엇이 절대적으로 더 낫다고 할 수는 없겠으나, 각각의 장단점을 알고 있어야 더 최선의 판단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개인연금의 양대축, 연금저축과 IRP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한다.
우선 공통적으로, 연금 저축과 IRP는 통장에 넣어둔 돈을 55세 이후에 연금의 형태로 받을 수 있는 상품이다. 원리는 간단하다. 지금 모아둔 돈을 노후에 정기적으로 지급받는 것. 그런데 지금 당장의 내가 아닌 미래의 나를 위해서 돈을 모은다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당장 1년 뒤에 돌려받을 수 있는 정기 예금에 가입하는 것도 망설여질 판에, 10년, 20년 뒤에 받을 수 있는 연금을 위해서 큰돈을 모은다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 입장에서는 국민들의 안정적인 노후를 위해서 노력할 필요가 있다. 결국 국민들이 안정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안정적인 국가 운영의 주춧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가 차원에서 공적 연금을 운영하기도 하지만, 그것만으로 노후 대비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개인연금을 운영하는 사람들에 대한 혜택을 부여한다.
그렇게 부여하는 대표적인 혜택이 바로 세액공제다. 세액공제란 쉽게 말해 세금을 깎아주는 것을 말한다. 즉, 벌어들인 소득에 따라 납부해야 하는 세금을 줄여주는 것이다. 그렇다고 무제한으로 깎아줄 수는 없으니 한도가 있다. 연금저축과 IRP는 연간 1,800만 원까지 납입할 수 있다. 이 중에서 연금저축은 최대 600만 원, IRP는 900만 원에 대해서 세액공제 혜택이 적용된다. 두 가지 상품에 모두 가입했다고 하더라도 합산하여 900만 원까지만 세액공제가 가능하다. 세액공제 금액에 대한 공제율은 가입자의 소득에 따라 달라지는데, 총 급여가 5,500만 원(종합소득 금액 4,500만 원) 이하인 경우에는 16.5%(지방 소득세 포함), 반대로 총 급여가 5,500만 원(종합소득 금액 4,500만 원) 이상인 경우에는 13.2%가 공제된다. 900만 원의 한도를 모두 채웠다고 가정했을 때 16.5%의 공제율을 적용하면 약 148만 원, 13.2%를 적용했을 때에는 약 118만 원의 소득세를 절약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연금 수령 시점 이전에 연금저축이나 IRP 통장에 있는 돈을 인출하는 경우에는 세액 공제 혜택이 사라지고 기타 소득세로 반환해야 한다. 이 점을 유의해서 적정한 금액을 넣어두는 것이 좋다. 특히 IRP의 경우에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인출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더욱 신중할 필요가 있다.
개인연금에는 세액공제 외에도 혜택이 있는데, 바로 과세이연이다. 쉽게 말해 세금을 나중에 낼 수 있는 것을 말한다. 개인연금 통장에 있는 돈으로 투자를 해서 수익을 냈을 때 발생하는 배당소득세 등을 즉시 납부하지 않고, 연금을 받는 시점에 낼 수 있도록 해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심지어 비교적 세율이 작은 연금 소득세(3.3%~5.5%)로 납부하게 된다. 여기서 연금 소득세는 세액공제를 받은 원금과 투자를 통해 얻은 수익에만 적용된다. 즉, 세액공제를 받지 않은 원금에는 연금 소득세조차 부과되지 않는다.
이렇게만 들으면 머릿속에서 잘 그려지지 않을 테니 예를 들어 생각해 보자. 1년 동안 500만 원을 연금저축 통장에 넣어두고, 해외 ETF 투자를 통해 100만 원의 매매차익을 얻었다고 생각해 보자. 만약 연금저축 통장이 아닌 일반 CMA 계좌였다면 매매차익 100만 원에 배당소득세 15.4%를 적용하여 15만 4천 원을 원천징수로 납부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연금저축 통장에서 발생한 수익금에 대해서는 원천징수가 되지 않는다. 통장에 600만 원이 고스란히 들어있는 것이다. 따라서 배당소득세로 내야 했던 금액을 고스란히 다른 투자에 활용할 수 있다. 그리고 이 100만 원을 나중에 연금으로 받을 때에는 연령에 따른 연금소득 세율에 따라 3만 3천 원에서 5만 5천 원까지 납부하게 되는 것이니, 결과적으로 일반 계좌로 투자했을 때보다 더 적은 세금을 납부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연간 900만 원 이하의 원금에는 세액공제 혜택을, 투자로 얻은 수익은 과세이연 혜택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다만, 과세이연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개인연금 가입 기간이 5년을 넘어야 하고 10년 이상 연금을 수령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 또한, 연금저축과 IRP 통장에서 혜택을 받은 금액에 대한 연금 수령 금액이 연간 1,500만 원(개정 전 1,200만 원)이 초과되는 경우에는 초과 금액에 대해 종합과세 또는 15% 분리과세되기 때문에 연간 수령하는 연금 금액을 적절히 조절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은 연금저축과 IRP의 공통적인 내용이었다. 지금부터는 차이점에 대해 살펴보자. 두 개인 연금이 어떤 차이점을 지니고 있는지는 그 이름에서 바로 드러난다. 연금저축은 누구나 가입이 가능한 반면, IRP(Indivisual Retirement Pension; 개인형 퇴직연금)은 '퇴직'연금이기 때문에 소득이 있는 근로자, 자영업자 등이 가입할 수 있다. 즉, 소득이 없는 사람이라면 연금저축에 가입이 가능하고, 소득이 있는 사람이라면 연금저축과 IRP에 모두 가입할 수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통장의 종류와 투자 가능한 상품에서도 차이가 있다. 먼저 연금저축은 성격에 따라 두 가지로 나뉜다. 바로 연금저축'펀드'와 연금저축'보험'이다. 연금저축'신탁'은 2018년부터 가입이 불가능해진 상품이니 따로 언급하진 않겠다. 연금저축펀드의 경우 증권사에서 운용하는 상품으로, 운용 실적에 따라서 나중에 받는 연금 금액이 달라진다. 반면, 연금저축보험의 경우 보험사에서 금리를 제안하는 상품이기 때문에 납입하는 금액에 따라서 연금으로 받는 금액이 그대로 확정된다. 따라서 입금한 만큼 확실히 정해진 금액을 연금으로 안정적으로 받고 싶다면 연금저축보험을, 운용 실적에 따라 더 많은 연금을 노려보고 싶다면 연금저축펀드를 선택할 수 있겠다. 이때, 연금저축펀드에 가입한 경우 입금한 금액으로 펀드와 ETF에 투자할 수 있는데, 투자하는 상품에 따라 정해진 수수료가 부과된다.
IRP의 경우 투자할 수 있는 상품이 연금저축에 비해 다양하다. 하지만 한 가지 조건이 있다. 바로 30% 이상의 금액을 안전 자산에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때 안전 자산이란, 예금과 RP, ELB 등 원금과 이자가 보장되는 상품과 주식 비중이 40% 미만인 펀드와 채권 ETF 등을 말한다. 나머지 70% 미만의 금액은 원리금 손실 위험이 있지만 높은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는 위험 자산에 투자가 가능하다. 위험 자산에는 주식 비중이 40% 이상인 펀드와 하이일드 채권, 리츠 등이 있다. 결과적으로 연금저축은 상품별로 정해진 비율 없이 자유롭게 투자할 수 있는 대신 선택권이 적은 반면, IRP는 다양한 투자 상품이 있는 대신에 안전 자산을 30% 이상 구성해야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연금저축과 IRP의 차이점을 아래 표를 보며 정리해 보자.
오늘은 연금저축과 IRP에 대해 알아보았다. 연금 상품이라는 특성상 통장에 돈을 넣는 시기와 연금을 받는 시기 사이에 긴 시간이 소요된다는 점에서 당장 필요할까에 대한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지금 번 돈을 미래의 나를 위해 저축해둔다는 것이 심리적인 저항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상품들이 가지고 있는 여러 혜택과 노후를 대비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충분히 매력적인 상품들인 것은 사실인 것 같다. 노후를 위해 현재를 지나치게 희생하는 것도, 반대로 아무 대비 없이 노후를 맞이하는 것도 합리적인 방식은 아닌 것 같다. 그 중간 어디쯤을 찾아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오랫동안 영위하기 위해, 연금저축과 IRP를 적절히 활용해 보는 것은 어떨까?
하우 투(How to):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다! "들어는 봤는데, 이거 어떻게 하는 거지?" 낯선 주제에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유쾌한 가이드북. 매주 일요일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