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그림자」 - 윤동주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를 읽었다옹

by 수상한호랑이

황혼이 짙어지는 길모금에서

하루 종일 시들은 귀를 가만히 기울이면

땅거미 옮겨지는 발자취 소리,


발자취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나는 총명했든가요.

이제 어리석게도 모든것을 깨달은 다음

오래 마음 깊은 속에

괴로워하든 수많은 나를

하나, 둘 제 고장으로 돌려 보내면

거리 모퉁이 어둠 속으로

소리 없이 사라지는 흰 그림자,


흰 그림자들

연연히 사랑하는 흰 그림자들,


내 모든것을 돌려 보낸 뒤

허전히 뒷골목을 돌아

황혼처럼 물드는 내 방으로 돌아오면

신념信念이 깊은 으젓한 양羊처럼

하루 종일 시름없이 풀포기나 뜯자.


(1942.4.14)




2023.10.18. 스스로를 괴롭히던 속박의 굴레에서 벗어나 내면에 평화가 깃든 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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