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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커스의 여자」 - 한강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를 읽었다옹

by 수상한호랑이

붉고 긴 천으로

벗은 몸을 묶고

허공에 매달린 여자를 보았다


무덤의 천장에는 시퍼런 별들

순장된 우리는 눈을 빛내고

활짝

네 몸에 감긴 천을 풀어낼 때마다

목숨 떨어지는 소리


걱정 마


나는 아홉 개의 목숨을 가졌어

열아홉 개, 아흔아홉 개인지도 몰라


아흔여덟 번 죽었다가 다시 눈 뜰 떄

태아처럼 곱은 허릴 뒤로 젖히고

한번 더 날렵하게 떨어져주지


팽팽히 더 뻗어야지,

붉은 끈이 감긴 다리를


분질러진 발목을

마저 허공에 눕혀야지


눈을 가린 광대가 던져 올리는

색색의 공들처럼

점점 빨라지거나,

영원히 놓치거나


어디서 장사 지내는 소리

울부짖는 소리


들리면 마중 나가야지

더,

좀더 아래로




2025.2.3. 떨어지는 그 순간 기뻐하는 이들에 둘러싸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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