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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 흐르는 눈3」 - 한강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를 읽었다옹

by 수상한호랑이

허락된다면 고통에 대해서 말하고 싶어


초여름 천변

흔들리는 커다란 버드나무를 올려다보면서

그 영혼의 주파수에 맞출

내 영혼이 부서졌다는 걸 깨달았던 순간에 대해서

(정말) 허락된다면 묻고 싶어


그렇게 부서지고도

나는 살아 있고


살갗이 부드럽고

이가 희고

아직 머리털이 검고


차가운 타일 바닥에

무릎을 꿇고


믿지 않는 신을 생각할 때

살려줘, 란 말이 어슴푸레 빛난 이유


눈에서 흐른 끈끈한 건

어떻게 피가 아니라 물이었는지


부서진 입술


어둠 속의 혀


(아직) 캄캄파게 부푼 허파로


더 묻고 싶어


허락된다면,

(정말)

허락되지 않는다면,

아니,




2025.2.17. 모든 것이 온전해 보이는 창백한 공포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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