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구」 - 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읽었다옹

by 수상한호랑이

오대나 나린다는 크나큰 집 다 찌그러진 들지고방 어득 시근한 구석에서 쌀독과 말쿠지와 숫돌과 신뚝과 그리고 녯적과 또 열두 데석님과 친하니 살으면서


한 해에 몇 번 매연지난 먼 조상들의 최방등 제사에는 컴컴한 고방 구석을 나와서 대멀머리에 외양맹건을 지르터 맨 늙은 제관의 손에 정갈히 몸을 씻고 교우 우에 모신 신주 앞에 환한 촛불 밑에 피나무 소담한 제상 위에 떡 보탕 식혜 산적 나물지짐 반봉 과일들을 공손하니 받들고 먼 후손들의 공경스러운 절과 잔을 굽어보고 또 애끊는 통곡과 축을 귀에하고 그리고 합문 뒤에는 흠향 오는 구신들과 호호히 접하는 것


구신과 사람과 넋과 목숨과 있는 것과 없는 것과 한줌 흙과 한점 살과 먼 녯조상과 멋 훗자손의 거륵한 아득한 슬픔을 담는 것


내 손자의 손자와 손자와 나와 할아버지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와…… 수원백씨 정주백촌의 힘세고 꿋꿋하나 어질고 정 많은 호랑이 같은 소 같은 피의 비 같은 밤 같은 달 같은 슬픔을 담는 것 아 슬픔을 담는 것




2025.9.10. 오늘날 이 환희와 비련함과 기쁨과 처량함은 다 어데서 비롯된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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