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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적당 Dec 07. 2021

결혼 후 '밥'의 주도권이 바뀌었다

더 이상 '밥'은 데이트 코스가 아니다.

'결혼'이라는 키워드가 내 삶에 온 날부터 '밥'의 의미가 새롭게 발견되었다.





엄마가 가르쳐준 '밥'


우리는 강원도로 신혼여행을 갔다. 일주일 내내 맛있는 저녁과 함께 술을 마셨다. 그간 나누지 못한 대화도 많이 하고, 서로 설레지만 걱정되는 앞으로의 날들에 대해 청사진을 그려보기도 했다. 


그때 참 많이 떠오른 사람이 엄마였다. 엄마는 대학교 4학년에 암으로 돌아가셨다. 


엄마는 8살 차이 나는 아빠를 많이 사랑했고, 또 많이 존경했다. 나의 기억 속에는 그렇다. 석재업 관련된 자영업을 시작했던 아빠는 매일 공사장의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퇴근했다. 7시 30분 정도 집에 와 씻고 나면 8시. 우리 집이 저녁을 먹는 시간은 8시였다. 


엄마는 매일 찌개 하나, 국 하나, 고기 하나, 오늘 만든 반찬 여럿으로 식탁을 꽉 채웠다. 그리고 돌솥밥을 자주 했다. 돌솥밥 밥은 아빠만 주고, 우리는 전기밥솥을 먹었다. 난 돌솥밥은 부럽지 않았지만, 아빠에게만 주어지는 입가심용 숭늉이 너무 부러웠다. 아빠 옆에 헤벌쭉 앉아있으면 아빠가 나눠주곤 했는데, 정말 꿀맛이었다. 


엄마는 다른 엄마들처럼 맛있는 것을 자식들에게만 나눠주고 그러지 않으셨다. 제일 좋은 건 아빠 몫이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는 항상 아빠가 정말 고생하신다고 그 덕에 우리가 편하게 사는 거라고 자주 말하였다. 난 나중에 커서야 알았다. 아빠 홀로 IMF를 헤치고 다섯 식구를 먹여 살리고 있었다는 걸.


그때 엄마가 차린 저녁은 아빠에 대한 사랑이자 애정이자 존경이자 고마움이었다. 신혼여행에 그 기억이 들면서 이제 나의 차례가 된 것 같은 이상한 사명감이 들었다. 비록 엄마는 아빠에게 '고맙다. 사랑한다.'를 많이 듣진 못했다. (이것도 나의 기억 속에는 그렇다.) 나는 '고맙다. 사랑한다.'는 표현도 많이 듣겠노라, 희한한 결심도 해보았다.






남편이 말하는 '밥'


두 번째 '밥'에 대한 파편은 남편이 주었다. 고등학교 시절 어떤 선생님이 마른 여자 만나지 말고, 잘 먹는 통통한 여자 만나라고 말하셨다고 한다. 그러면서 덧붙이기를 먹는 것에 즐거움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맛있는 음식을 나눠먹고 해주는 즐거움이 있겠느냐, 따뜻한 밥 얻어먹고 싶으면 잘 먹는 통통한 사람 만나라는 거다. 


이 말을 듣고는 부담감도 올라오면서 걱정이 되었다. 난 먹는 것이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맛있는 것도 필요 없고, 한 끼 한 끼를 잘 때우면 되는 사람인데... 언니와 형부는 먹는 취향이 비슷하다. 퇴근하고 저녁에 맛있는 거 나눠먹는 것으로 힐링한다는 언니 부부가 스쳐간다. '하 어떡하지' 


아무거나 잘 먹어서 좋은 거라 생각한 나의 '아무거나 괜찮아' 식성이 갑자기 미웠다. 똑 부러지게 어떤 음식이 먹고 싶은 적도 잘 없고, 요리는 정말 0.1도 못하는데! 큰일이었다.





아빠가 알려주는 '밥'


신혼여행을 다녀와 양가 집에 인사를 모두 드리고 집에 와 짐을 풀었다. 대충 짐 정리하고 잠들어 다음날이 되었다. 일요일 아침 10시, 아빠에게서 전화가 왔다. 무슨 일인가 싶어 잠이 확 달아났다. "여보세요" "아직 자나 10시인데." "일요일이잖아. 이제 일어나야지." "남편 밥도 안 주고 그래 자면 어떡하니. 빨리 일어나 밥 줘라."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어안이 벙벙했다. 여자가 밥 차려야 하는 그런 시대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아빠가 시집간 딸에게 하는 첫 조언이 "남편 밥 줘라"라니! 너무 아빠가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한참 웃었다. 요리 하나도 할 줄 모르는 막내딸이 시집가서 남편까지 굶길까 봐 걱정하다니. (아빠의 밥도 잘 챙겨드리지 못했다.) 한참 웃다 일어나 아빠와의 통화 얘기를 남편에게 했다. 남편의 대답은 "나도 그게 궁금한데 못 물어봤어. 우리 뭐 먹어?"





데이트할 때 나의 질문이었다. "오늘 우리 뭐 먹어?" 이제 그 질문을 남편이 한다. "오늘 우리 뭐 먹어?" 이렇게 '밥'의 주도권이 바뀌는구나. 데이트할 때야 남자가 맛집도 알아보고, 운전해서 데려다 주기도 한다지만. 결혼해서는 아내가 장도 보고, 메뉴도 골라서 요리를 하는 거구나. 


그렇게 요알못의 주부 되기 대작전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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