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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적당 Dec 06. 2021

10번 만난 남자의 청혼

결혼할 남자 만나면 종이 울리냐고요?

29살이 되는 해. 그 해는 무슨 유행처럼 다수의 친구들이 결혼을 했다. 봄과 가을. 여러 결혼식을 쫓아다니며 괜히 유행에 뒤쳐지는 사람이 된 마냥 우울감을 느끼곤 했다. 좋은 사람, 나의 영혼의 단짝 친구가 어딘가 있으리라 생각하면 기분은 금세 좋아졌다.


30살이 되는 해. 결혼이라는 것이 내게 닥치지 않는 일일까 조급함이 들었다. 왜 그리 초조했을까? 좋은 사람을 만나기 전에 나부터 좋은 사람이 되자고 다짐하는 해였다. 영혼의 단짝을 알아보기 위해서, 나도 그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다짐은 거창했지만 결국 재밌는 일 쫓아다니는 한 해였다.


31살이 되는 해. 발등뼈에 금이 가 깁스를 한 채 1월 1일을 맞았다. 회사는 2달 휴직을 했고, 난 집에서 두 손으로 할 수 있는 온갖 것을 하며 시간을 때웠다. 깁스를 풀고는 마치 족쇄를 푼 사람처럼 다시 설치기 시작했다. 방을 꾸몄고, 당근으로 가구를 사고 조명을 사기 시작했다. 나만의 안식처를 완성하고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중 아빠의 소개로 한 남자를 만난다.


그 남자는 정중하고 예의 바른 사람이었고, 맞장구치는 센스가 아주 유쾌했다. 단정하게 다려 입은 셔츠가 꽤 멋있었고, 웃을 때 예쁜 눈매와 입꼬리가 보는 사람도 기분 좋게 만들었다. 


그렇게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을 만나 우린 정식으로 만나보기로 했고, 다섯 번, 여섯 번, 일곱 번, 여덟 번, 아홉 번 만난 날 언니와 형부를 소개해 줬다. 그리고 열 번째 만난 날 그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주변에 부부들을 보면 일 더하기 일이 이가 채 되지 않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더라. 우리는 분명 시너지가 나서 이 삼 사가 되어 살 수 있을 것 같다. 확신이 든다. 아까 밥을 시켜먹고 가만히 앉아 있는데도 너무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을 준비했으면 한다. 올해가 가기 전에..."


만난 지 10번이 된 남자가 내게 확신이 든다며 결혼 얘기를 꺼냈다. 


나는 그의 확신을 소화하고 감동을 받기까지 꽤 긴 시간이 필요했다. 그 카페에서는 그저 싱긋 웃으며 '올해 안? 가능할까? 그렇지만 좋아요' 했다. 집에 돌아와 꾹꾹 눌러 참았던 울음이 터져 나왔다.


나도 확신이 들지 않는 나의 인생에 확신을 가지는 사람을 만나다니, 정말 감격적인 일이었다. 감동적이었고, 너무나 벅차올랐다. 겨우 10번 만난 사람이지만 이 사람이 내 삶에 오다니, 정말 다행이고 감사하다는 마음이었다. 


그다음 주 남자 친구 부모님께 인사드리고, 그다음 주 우리 아빠에게 인사드리고, 말복을 지나, 상견례를 가졌다. 


많이들 묻는 질문. 그렇게 빨리 결혼을 할 수 있어? 할 수 있다.


만난 지 1달 만에 결혼을 준비했고, 100일에 제주도에서 웨딩 촬영을 했다. 6개월이 되는 달, 결혼식장에 나란히 서서 혼인 서약을 하였고, 사귄 지 200일이 된 오늘. 신혼집에서 마주 보고 저녁을 먹고 있다.


200일을 돌이켜 보면 우린 참 부지런했다. 하루도 허투루 쓴 날이 없었고, 한 번의 만남도 한 번의 통화도 모두 소중했다. 아직도 돌이켜 보면 신기하다. 


결혼할 상대를 만나니 주변에 동의를 구하거나 묻는 게 일절 없어졌다. 나와 이 남자 사이에 신뢰가 있고, 그것에 확신이 있으니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보거나 할 게 없었다. 많이들 염려도 했다. 너무 이른 결정 아니냐, 더 만나보지 그러느냐. 그런 염려에 같이 불안하기보다, 그 사람들을 다독일 정도로 난 여유로웠다.


"괜찮아. 잘 살 거야. 걱정하지 마."


진짜 결혼할 사람을 만나면 주체적으로 선택하게 되는 듯하다. 누구에 의해서가 아니라, 정말 우리 둘의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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