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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적당 Sep 27. 2023

차가운 이성은 사실 따뜻하다

펜싱처럼 허점을 콕콕 찌르는 남편과 대화하면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된다. 몸이 굳어지면서 나의 부족함이 들추어진 것 같은 무안한 기분이 든다. 신혼 초에는 그 기분이 싫어서 대화를 흐리멍덩하게 마무리 짓기 일쑤였다. 팩트를 중심으로 사고하는 남편은 나의 말에서도 어디까지가 팩트이고, 어디서부터가 나의 의견인지 걸러 듣는 기분이었다. 특히 사회적인 이슈가 도마 위에 오를 때면 괜히 긴장해야 했다. 나의 무지와 무지성이 들킬 것 같아서 눈치껏 리액션한 적도 있다.


신혼 초에는 TJ 남편이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나를 주눅 들게 만들고, 나의 부족함을 들추어내는 사람 같았다. 뭐든 비꼬아 보는 사람 같았고, '그랬구나'의 공감대가 없는 차가운 사람이라 생각했다. (뭐 전혀 아니진 않음)


그러나 나의 신조가 무엇이냐!

감정은 나의 것, 감정의 원인은 나!


비폭력대화 수업을 처음 접한 20대 중반. 삶의 전환점이라고도 할 수 있는 그 수업 덕분에 감정의 원인은 외부가 아닌 내면에 있다는 것을 배웠다. 그래서 이 감정의 동굴도 두렵지만 걸어 들어가 보았다. 동굴에는 무서운 박쥐들이 우글거릴 것 같았으나, 실제로는 동굴 반대편의 입구로 빠져나왔고 아주 멋진 장관을 구경할 수 있었다.




1. 공감의 주인공은 '나'가 아니라 '타인'이다.


- 공감능력이 높다는 것은 누구에게도, 어떤 상황에도 공감할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문득 보기에는 좋아 보인다. 그러나 공감능력이 너무 높으면 돈을 빌려줘 놓고도 '그 사람도 상황이 딱한데'라며 그 돈을 포기해 버리게 된다. 상대방의 어려움에 너무 공감되니 말이다! 나의 삶에도 타인에 대한 공감이 앞서서 '내가 조금 더 하지 뭐', '내가 양보하지 뭐', '내가 괜한 말을 한 것이 아닐까' 같은 생각을 한 적이 너무나 많다. 그랬을 때 가장 피해 보는 것은 바로 '나'이다. 남 공감해 주느라 '나'를 못 챙긴 것이다. 남편은 내가 가지지 못한 건강한 이기심을 갖고 있었다. 누가 뭐래도 자신의 바이오리듬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약속을 잡았고, 업무를 할 때도 자신의 처우를 자신이 가장 많이 고려했다. 그런 남편과 살다 보니 위축되고 긴장되는 감정의 원인도 서서히 파악하게 되었다. 그건 바로 보상심리였다. 남의 감정에 실컷 공감해 주고는, 나의 감정은 '남편'이 공감해 주길 바란 것이다. 이걸 깨닫고 난 뒤에는 내가 나의 감정을 공감해 주는 걸 더 열심히 연습했다. 어느 누가 공감해 주고 인정해주지 않아도 되도록 말이다. 공감해주지 않는다고 나의 감정이 가짜가 되는 것이 아니라고 되새겼다. 공감받아야만 그 감정의 당위성을 인정받은 것 같은 쓸데없는 합리성도 집어치웠다. 공감을 필요로 하지 않고 나의 감정을 주인공 자리에 앉혀주는 것. 그걸 하기 시작했다.



2. 공감은 '해결' 능력이 없다.


- TJ 남편은 '나 배가 아파'라고 말하면 '화장실 가봐'라고 말한다. 처음에는 너무 황당한 대답이라 생각해 치를 떨었다. 이런 남편을 정말 이해해보고 싶어 친한 TJ 언니에게 조언도 많이 구했다. 그렇게 TJ를 (어쨌든 부부니) 사랑의 시선으로 들여다보다가 이런 일이 생겼다. 출산을 하자 손목이 시큼시큼 아파왔다. 출산 후 얼마 뒤 생일이었고, 남편은 생일 선물로 '파라핀 치료기'를 사줬다. 이때 비로소 공감보다 해결 능력을 가진 남편의 진가를 알았다. '아프지', '어떡해', '주물러줄게'와 같이 당장은 기분 좋을 수 있는 리액션이 아니라, 궁극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선물을 내놓는 남편에게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나의 공감은 '공감받았다'는 안도감 외에는 어떠한 해결도 해주지 못한 걸 깨달았다. 그러자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내가 남편을 위해서 쏟아부은 '공감'은 남편에게 정말 아무 도움도 되지 않았던 것 아닌가! 주마등처럼 지나간 나의 공감들에 무안함이 올라왔다.



3. '이성'도 사랑의 언어였다.


- '파라핀 치료기'를 선물로 받을 때, 남편에게 '해결'은 최상위 사랑의 언어임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공감'을 원한다 하여 상대방도 '공감'을 해줘야만 날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나와 같은 언어를 쓰지 않는 상대의 사랑을 의심하기도 하며 불안했다. 그러나 그것이 '무관심'이 아니었던 것이다. 성숙한 사랑은 상대가 원하는 사랑의 언어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랑해' 말과 값비싼 선물이 아니어도, 샤워하며 화장실 청소를 해주는 일, 차를 깨끗하게 청소해 주는 일, 건강검진을 꼼꼼하게 챙겨주는 일 등등 남편만의 사랑의 언어가 있었다. 심지어 '공감'에 능한 나보다 훨씬 풍부한 사랑의 언어를 가졌다. 이전까지는 '이성'은 차가운 줄로만 알았다. TJ 남편과 살며 차가운 이성의 따뜻함을 얼마나 경험하는지 모른다. 정말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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