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가는 것을 생각한다.
어떻게 늙은 나를 마주해야 할까.
혹은 어떻게 늙어야 할까.
무엇을 가지고 가야 하고
무엇은 놓으며 가야 할까
나의 하루하루를 쌓아가며 살아가는 이 와중에
함께 가야 할 것과 놓고 가야 할 것을 생각해본다.
학창 시절 누군가를 지독하게 미워한 적 있다.
이 학교만 졸업하면 다시는 볼 일 없겠지.
그러나 곧 알게 된 누군가의 친구이기도 하다.
또 나를 지독하게 미워했던 그 누군가는
내 친구의 친구의 동생이기도 했다.
이 넓은 세상에 다신 만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아도
사실 좁은 세상에 여러 인연이 엉켜 있는 거여서
얽힌 채 살아가야만 하는 걸 알았다.
나의 위치와 역할은 시간이 지나면 변하겠지만
내가 죽도록 싫어하는 사람들의 포지셔닝도 변한다.
결국 함께 어딘가로 흘러가는 중인 셈이다.
놓고 갈 수 있는 인연 혹은 악연은 없다.
그렇다면 놓고 가야 할 것은 무얼까.
그것은 나의 생각이다.
그 시절의 나의 생각들.
대학원에서 공부할 때 가장 나를 아껴 주시던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
논문을 다 쓰고 6개월 뒤에 다시 봐라.
혹시 여전히 잘 썼다는 생각이 들면
6개월의 시간 동안 넌 성장하지 않은 거다.
공부를 그 사이 많이 했다면
부끄러워 차마 볼 수 없을 것이다.
/
행여나 늙어서 나의 생각에 전혀 변함이 없다면
사색하며 공부하기를 게을리했단 말이 된다.
여러 문화와 여러 경험을 통해
내가 진리라 생각했던 것이 무너지는 시간
절대 이해하지 못할 것 같은 사람을
그제야 조금 이해하게 되는 경험
이런 것들이 무수히 많아지면 좋겠다.
내가 놓아야 할 것은
정답을 찾았다고 자신하는 나 자신이다.
부디 나의 환경은 순응하되
나의 생각은 끊임없이 발전시켜 나가기를
나 스스로에게 부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