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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적당 May 18. 2023

캐나다 홈스테이가 충격적이었던 이유

중3, 2달의 홈스테이가 가져온 변화

여행은 살아보는 거라는 에어비앤비의 슬로건, 2005년에 실천했어요





모두에게 첫 해외여행은 여러 의미로 기억에 남을 것이다. 나에게 첫 해외여행은 기억에 남는 정도가 아니라 삶의 방향성을 바꾸었다. 그것도 아주 천천히, 매 해를 거듭할수록 말이다.


10살 많은 언니가 먼저 캐나다 유학길에 올랐다. 1년 교환학생으로 캐나다 밴쿠버에 가게 된 것이다. 사실 내가 뒤따라 갈 계획은 없었다. 언니가 돌아올 겨울이 다되자, 갑자기 엄마는 언니에게 가서 2달 살고 오라고 했다. 언니가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기회가 없을 거라고 말이다. 난 그때 중학교 3학년이었고, 고등학교 진학 상담을 하고 있었다. 


중3이 뭘 알았겠나. 어떠한 계획도 없이 그저 엄마가 싸준 김치가 든 캐리어를 가지고 캐나다행 비행기에 홀로 몸을 실었을 뿐이다. 암만 공항에 언니가 나와 있어도 그렇지 15살 아이를 홀로 비행기에 실어 보내다니, 엄마 아빠도 정말 대단하다. (혼자 입국수속 밟으며 해외에 도착한 나의 뿌듯함은 잊을 수가 없다.)


그렇게 시작된 캐나다 홈스테이는 12월에서 1월까지 2 달이었다. 언니가 살고 있는 홈스테이 집에 빈 방이 생겨 그곳에 머물게 되었다. 필리핀계 캐나다인 간호사 자매가 살고 있는 집이었다. 반지하 층과 1.5층으로 이뤄진 독채 집이었는데, 언니 집주인은 반지하를 홀로 썼다. 동생은 1.5층의 가장 큰 방을 썼고, 그곳의 거실과 주방은 우리와 공유하는 시스템이었다. 외국 영화에서나 보던 정원 있는 독채 집에서 집주인 자매와 우리 자매, 4명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캐나다의 삶은 정말 너무나 행복했다. 눈 마주치며 굿모닝 인사를 하는 전철 시민들도 좋았고, 아침 이슬 머금은 주택가를 걸어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가는 것도 좋았다. 도서관은 커피 향과 멋진 사람들로 가득했고, 해변가에는 저마다의 휴일을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록키산맥 일주일 투어도 다녀오고, 크리스마스, 새해도 캐나다 문화를 흠뻑 느끼며 보낼 수 있었다.


그중 나의 삶을 변화시킨 충격적인 사건은 크리스마스이브에 벌어진다. 동생 호스트 '프란체스카'는 분주히 음식을 했다. 크리스마스이브를 맞아 사람들을 초대한 것이다. 저녁 6시 정도가 되자 '띵똥' 벨이 울리며 차례로 한 사람, 두 사람씩 집에 왔다. 모두들 멋진 정장이나 원피스를 입고 있었고 손에는 와인, 쿠키 등 선물이 들려 있었다. 프란체스카는 으깬 감자 샐러드, 따뜻한 야채 수프 등을 했는데 그중 가장 놀라웠던 건 통 칠면조 구이였다. 교과서에서나 보던 그 칠면조 구이가 6인 식탁 위에 턱 올려져 있었다. 


아늑한 조명이 켜진 거실 옆으로 환한 주방이 시끌시끌해졌다. 손님들이 모두 도착했고, 우리 자매도 식사 자리에 초대해주어 함께 크리스마스이브를 보내게 되었다. 그 당시 캐나다는 집집마다 LG 건조기를 쓰고 있었다. 오히려 우리 자매가 건조기를 신기해하며 봤었다. 그들은 우리에게 이렇게 훌륭한 브랜드가 있는 나라여서 부럽다고 했다. 티브이를 틀면 하루 한 번 이상은 'Life is Good, LG' 광고가 나오던 시절이어서 신기하고 뿌듯했던 기억이 있다. 


식사가 끝나자 거질 소파에 둘러앉아 그들은 영화를 보며 와인을 마시기 시작했다. 우리는 방으로 돌아왔는데, 그 거실의 광경은 머리를 띵하게 만들었다. 그날의 모든 대화를 다 알아들을 수는 없었으나, 온몸으로 분위기를 흡수한 15살 어린아이에게 작은 DNA를 심어졌다.


1.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좋아하는 사람들을 초대하는 기쁨을 보았다. 8명 정도의 식사를 준비하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자매는 요리가 완성되어 갈수록, 커트러리를 자리마다 놓을수록 약속 시간이 다가오는 걸 즐겼다. 분명 노동이 아니었다. 나의 머릿속에 '요리'는 가족을 위해 흡사 쳇바퀴처럼, 노동처럼 한다는 고정관념도 있었던 것 같다. 그 자매의 즐기는 모습이 꽤나 신기했다. 


2. 홈파티에도 격식이 있다. 그날 문을 열고 웰컴 한 사람은 나였다. 문을 열자 정장을 입고 와인을 든 남자가 '메리크리스마스~!!'라고 외쳤다. 홈파티에서 정장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집에서는 잠옷만 입고 있는 줄 알았지 멋진 옷을 입고 식탁에 앉는다는 생각을 전혀 못해본 것이다. 평소와 다름없는 공간이지만, 어떤 옷을 입고 모이느냐에 따라 허리가 꼿꼿하게 펴진다는 걸 느꼈다. 거의 처음으로 양손을 쓰며 양식을 먹은 날이었다. 


3. 조명은 홈파티의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어야 하는 주방은 불을 환히 켜두었으나, 거실에는 몇몇의 스탠드 조명만 켜 두었다. 한국이었다면 음침하게 이게 뭐냐며 불 켜라고 했을 정도의 어두움이었다. 작은 티브이에서 흘러나오는 영화 소리와 낮은 테이블에 올려진 와인잔은 어두움 속에서 더 빛을 발했다. 크리스마스이브의 분위기가 점차 고조되고 있는 장면이었다.


4. 소파가 일렬로 되어 있지 않고, 서로 마주 보게 되어 있었다. 천편일률적인 한국형 아파트에만 살던 아이는 티브이와 소파가 나란히 배치되는 거실만 경험했다. 어느 친구집을 가도 다 그랬으니 말이다. 1인 소파 2개와 3인 소파가 작은 티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둥글게 배치된 홈스테이집은 놀라웠다. 소파에 앉는 목적이 TV였던 한국과 달리, 그 집은 '대화'가 목적인 구조였다. 


5. TV는 필요할 때만 켰다. 한국에서는 라디오처럼 늘 켜두는 게 TV 아니던가. 홈스테이 집은 달랐다. 자매가 영화를 볼 때, 보고 싶은 프로그램을 볼 때만 켜져 있었다. 그 외에는 책을 보거나 취미 생활을 하며 거실 소파를 활용했다. TV를 보는 것 외에도 소파에서 많은 것을 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1월 1일, 낯선 곳에서 새해를 맞이했다. 프란체스카는 우리에게 새해 선물을 주었다. 찾아보니 한국에서는 새해에 떡국을 먹더라며 냉장고를 열어보라 했다. 냉장고 문을 열자 한 쪽지가 어느 그릇 앞에 세워져 있었다.


 'Dear, sujin! HAPPY NEW YEAR!" 


냉장고 문을 열고 그렇게 기분 좋았던 적이 있었을까. 누군가 나를 위해 냉장고에 맛있는 음식을 넣어두고 쪽지를 써 두었다. 별 것 아닌 이 쪽지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었다. 프란체스카가 보내준 쪽지는 다정했고, 사랑스러웠다. 


집의 구조, 동선, 행동들은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180도 달라진다. 그걸 눈으로 보았고, 내게도 숙제가 되었다. 집을 꾸미는 일은 '어떻게 살고 싶으냐'에 대한 질문의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15살에 바로 알아차리진 못 했지만, 서서히 그리고 또렷하게 나의 삶이 변화해 가는 걸 느꼈다.






그 마음으로 'TV 없는 거실인테리어'로 신혼집을 꾸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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