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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적당 Sep 23. 2023

틀린 말이 아니어서 기분이 나쁜 거라고

TJ 남편과 결혼한 FP 와이프.


틀린 말 하는 법이라곤 없는 초이성주의 남편과 살다 보니 내가 얼마나 두리뭉실하고, 낭만적이며, 소심한 사람인지 알게 되었다.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야 누구나 똑같다지만, 내게는 그 사랑의 확인이 누구보다 중요한 사람인 것도 알았다.


툭, 툭 바른말만 하는 사람과 결혼하여 살다 보니 민망함과 무안함 그리고 위축되는 마음을 달고 살아야 했다. 그러고는 자신의 말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하는 그 태도에 기가 죽었다. '이젠 날 사랑하지 않나 봐.' '내게 실망한 게 틀림없어.'라고 생각했다. 근데 틀린 말이 아니지 않냐고? 그래! 맞는 말이어서 기분이 나쁘다!


- 나중에 카페를 하고 싶어

- 어떤 카페?

- 동네 사람들이 사랑방처럼 오가고, 단골들의 근황을 다 알 정도로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커피가 맛있는 그런 카페!

- 음... 아직 구체화가 덜 된 것 같아. 좀 더 고민해 보자.


FP는 당황스럽다. 그런 카페를 하고 싶은 것이 맞는데, 도대체 뭘 더 고민해 보자는 말인가. 그러다 남편과 에어비앤비를 함께 구상한 적이 있다. 그때 비로소 남편의 말을 이해했다. 남편은 어떤 콘셉트를 지향하는지, 어떤 공간으로 꾸밀지 등등은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에어비앤비를 열면 오토로 운영이 가능한지. 화장실이 잘 막히지 않도록 공사하려면 뭘 알아야 하는지. 쓰레기 배출은 어떻게 하면 좋을지. 자쿠지 관리는 어떻게 하는지 등. 아주 구체적인 나쁜 면들만 들여다보았다. 난 좋은 최상의 면만 들여다보는데 말이다!


그렇게 나 스스로를 되짚어 본다.


극 현실주의적인 동료들 눈에 난 구름 위를 떠다니는 아이로 보였을까? 매년 계획을 세운다고 세웠지만 나의 계획은 얼마나 허황되었던가? 10년 뒤를 꿈꾸지만, 당장 오늘 할 일이 뭔지는 모르겠던 이유는 이렇게 현실적이지 못해서였을까? 결국 남편 덕분에 나의 부족한 부분을 고스란히 마주 보게 되었다.









보통의 사람들은 남편과의 다름에서 고통스러워한다. 나 역시 그런 날이 있었다. 그러나 입장을 바꿔 이런 생각을 해본다. 이 사람은 나의 낭만적인 소리를 들으며 얼마나 답답할까. 그저 행복한 날만 꿈꾸는 내게 신뢰를 가질 수 있었을까? 내가 공감이 중요하다고 하여, 항상 공감을 우선적으로 해주는 와이프에게 힘을 얻고 있었을까?


사람은 이기적이고 유약한 동물이라서, 남이 원하는 것을 해주는 최상의 배려보다 '내가 좋아하는 사탕 너 줄게.'와 같은 어린아이 마음이 있다. 부부 사이에는 '네가 좋아하는 사탕'을 궁금해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맞춰가는 것 아니겠나.


휴. 이제는 바른말, 옳은 말을 하면 그대로 수용이 된다. 그걸 비비 꼬아 듣는 마음이 사라졌으니 말이다. 오히려 더 첨예한 해결책을 달라며 닦달하는 날도 생겼다. 그런 게 된 비결은...? 그건 바로 불 끈 침대에서 대화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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