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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변 Oct 25. 2024

대학교 사내변호사의 기쁨과 슬픔

가끔 현타 올 때도 있습니다만

대학들이 속속 사내변호사를 채용하기 시작한 때는 10여 년 전인 듯하다[주1]. 서울대는 2009년에 일찍이 변호사를 채용한 뒤 2012년 수습변호사 포함 3명을 추가 채용했고, 2013년에는 이화여대와 중앙대 등 사립대학들이, 2014년에는 인천대가 잇따라 사내변호사를 채용했다. 10년 전 신문기사는 이렇게 전한다.


...전문가들은 국립대학 법인화와 맞물려 대학들의 사내변호사 채용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나 팀장은 “예전에는 법적 소양이 있는 직원이 법률 관련 업무를 담당했지만, 최근에는 변호사의 수도 늘어났고, 로스쿨 입장에서도 졸업생을 채용하는 편이 좋기 때문에 변호사를 선호한다”며 “로스쿨이 있는 대학법인이라면 변호사를 채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 법률신문 2014. 6. 7. “대학법인도 변호사 채용…업계 새로운 활로 기대”(기사 링크)


실제로 대학이 변호사업계의 새로운 활로가 되었는지...는 의문이지만, 전국 곳곳의 대학들이 잊을만하면 한 번씩 변호사 채용공고를 올리긴 한다. 최근 1년간 대한변호사협회 취업정보센터에 올라온 대학교 및 대학 관련 법인의 채용공고는 총 37개(재공고로 인한 중복 건수 제외)이다. 그중엔 대학병원 사내변호사나 법학전문대학원 펠로우처럼 성격이 달라 함께 묶기 어려운 포지션들도 있지만, 일단 함께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대학교 사내변호사의 단점


대한변협 사이트에 채용공고를 올릴 땐 급여 수준도 대략 기입해야 한다. 살펴보니, 학교별로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눈가가 촉촉해지는 수준의 급여를 제시하고 있다. 대한변협 사이트를 통하지 않고 알음알음(?) 채용하는 경우엔 다를지도 모르겠는데, 일단 이 사이트에서 확인 가능한 범위에서는 그렇다. 원래 위 통계에 급여 분석도 포함시킬 계획이었으나 너무 슬퍼질까 봐 그냥 안 쓰기로 했다.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고, 대부분 계약직이다. 내부 분류기준에 따라 ‘전문계약직’으로 부르는 곳들도 있다. 모 대학 채용공고에는 전문계약직으로 채용시 연봉을 별도 협상하고 정규직 트랙으로 채용시 급여는 내규에 따라 책정한다고 적혀있기도 했는데, 아마 전자를 택했을 것이다.


어쩔 수 없는 면이 조금 있기는 하다. 기본적으로 학교는 돈 버는 것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조직이 아니라 교육과 연구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조직이다. 애초에 돈을 벌도록 만들어져 있지 않은 조직이 월급을 많이 주기는 어려운 법이다. 그리고 학교 직원 조직은 신입공채 기수를 따지는 공무원 사회와 분위기가 비슷해서, 경력 채용된 전문직은 신입공채로 들어온 ‘정규직’ 틈에 편입시키기 어려운 점이 있는 모양이다. 정규직 일반직원들은 보통 여러 부서를 순환보직하는데, 변호사들은 이런 순환보직을 원치 않는 경우가 대부분인 점도 고려되었을 것이다.


대학교 사내변호사의 장점


가끔 ‘학교 변호사’라고 하면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는 줄 아는 사람도 있는데, 그렇지는 않다. 대학들이 없는 살림에 굳이 변호사를 고용하는 이유는, 그만큼 골치 아픈 법률 이슈들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로펌 생활과 비교하면 명백히, 대학교 사내변호사는 업무 스트레스가 적고 ‘워라밸’을 보장받는 자리가 맞다. 개인적인 경험에 따르면 기업 사내변호사와 비교하더라도 그렇다[주2]. 이곳에는 저녁도 있고 주말도 있으며 육아기 단축근무도 있다.


그런데 가장 큰 장점은 다른 데 있다. 대학원에서 석∙박사 과정을 밟거나 개인적인 공부, 연구활동을 하면서 일하기 좋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법학전문대학원에서 채용하는 ‘펠로우(fellow)’ 중에는 애초에 학문후속세대를 위한 일자리 제공을 염두에 둔 걸로 보이는 자리도 있고, 학술행사 발표나 논문 게재 등 연구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학교에서 지원해주기도 한다.


대학본부에서 일하는 사내변호사는 상황이 조금 다르기는 하나, 역시 대학원 다니기엔 이만큼 좋은 자리가 잘 없다. 로펌에서 비인간적인 장시간 근무를 소화하는 동시에 대학원 수업도 듣고 논문도 쓰는 훌륭한 변호사님들도 참 많지만, 그렇게 못하겠다면 대학교에 취직해서 일과 학업을 병행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기업의 경우 직원이 박사과정 밟는 걸 달가워하지 않는 곳도 종종 있다고 들었는데, 대학들은 그렇지 않다. 연세대의 경우 연 2천만 원에 가까운 동 대학 법전원 박사과정 등록금을 사내변호사에게 지원해 준다.


의문은 남는다


모르긴 몰라도, 대학원 공부에 뜻이 있거나 장기적으로 교수 임용을 염두에 두고 대학 사내변호사로 일하는 이들이 종종 있을 것이다. 육아에 좀더 집중할 생각으로 대학 사내변호사를 택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아마 이런 장점을 적극 어필하며 싼 값에 좋은 변호사를 데려다 쓰려는 학교도 있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역시 의문은 남는다. 대학이 사내변호사를 채용하는 이유는 그만큼 골치 아픈 법률 이슈들이 많기 때문이다. 특수한 법령이 적용되는 경우도 많고, 학교 내규도 많다. 개별 사안만 봐서는 알 수 없는 히스토리도 잔뜩 있다. 그 이슈들을 잘 처리하려면 좋은 변호사를 뽑고, 그 변호사가 로열티를 갖고 장기근속하며 의욕적으로 일할 수 있게 해야 하지 않나? 박사학위 딸 때까지, 혹은 애가 좀 클 때까지 잠시 다니며 다음 스텝을 준비할 사람을 찾을 것이 아니라?


결국 같은 문제로 돌아온다. 대학은 돈 버는 조직이 아니어서 변호사에게 월급을 많이 주기 어렵다. 그러나 자고로 변호사비용 아끼려다가 더 큰 비용을 초래하는 게 법률 이슈 아닌가? 그리고 대학에는 골치 아픈 법률 이슈가 많다. 생각을 계속 이어가 본들 돌림노래가 될 뿐이다.


저는 잘 다니고 있습니다


왠지 써놓고 보니 기쁨은 작고 슬픔은 큰 것처럼 보이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급수습)

앞서 다른 글에도 썼지만 이 학교는 가을에 특히 아름답다.

옛날에 인사과의 어떤 분이 '우리 학교엔 연봉 1천만 원 상당의 자연환경이 있지 않냐'는 취지의 발언으로 살짝 뭇 직원들의 빈축을 샀다는 풍문을 들었는데, 좀 과장돼서 그렇지 일말의 진실은 담은 말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이 어떤 직장을 선택하거나 떠나거나 머무르는 데 반드시 합리적인 이유만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현타 오는 순간에도 창밖의 단풍진 캠퍼스 풍경을 보며 차 한잔 하다 보면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냐는 기분이 되는 것이다. 가을이 가기 전에 교수회관 2층 창가 자리에서 점심 한번 먹자고 해야겠다.


끝.


[주1] ‘사내변호사(社內辯護士)’는 원래 기업에 고용되어 기업 내부의 법률 업무를 맡는 변호사를 가리키는 말로 쓰였던 것 같고, ‘사내’라는 표현 자체가 회사(會社) 내부라는 의미가 아니었나 싶다. 하지만 지금은 정부∙공공기관을 포함한 각종 조직 내부에 소속되어 해당 조직의 법률 관련 업무를 하는 변호사 모두 포괄하는 의미로 쓰이는 듯하다.

[주2] 기업 사내변호사는 워낙 스펙트럼이 넓어서 일반화하기 조심스럽다. 어쩌면 스트레스도 더 적고 급여는 더 많은 그런 사기업도 있을지 모르는데, 내가 직접 경험해본 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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