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수변 Oct 19. 2024

졸업한 학생은 징계할 수 없다(下)

9년의 분쟁이 남긴 것

(上편에서 이어짐)


세 번째 징계, 세 번째 판결


감금 사건으로부터 3년이 흘렀고 두 번의 쓰라린 패소를 겪었으나 ㄱ대학교는 징계를 포기하지 않았다. 2009년 3월 학교 측은 또다시 상벌위원회를 개최했다. 이대로 아무 징계도 없이 그냥 넘어갈 수는 없다, 라는 학교 측의 강한 의지 혹은 극도의 난처함이 느껴진다.


A, B를 포함해 이미 졸업한 학생 3명까지 다시 학생상벌위원회에 출석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학생들이 선임한 변호사는 ‘졸업생은 징계가 불가능하다’는 등의 의견을 담은 서면을 제출했다. 상벌위원회 위원들 중에서도 2명이 졸업생을 징계하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였다.


하지만 위원장이 ‘별도로 검토한 결과 선행 징계가 법원 판결로써 무효가 되어 다시 징계하는 경우는 원래의 징계 시점을 기준으로 징계하는 것이므로 문제없다’는 취지로 발언하고, 위원들 중 노동법 전공 교수가 이에 적극 동조함으로써 이 문제는 더 이상 심각하게 논의되지 않았다. 결국 상벌위원회는 세 번째 징계를 의결했다. 이번에는 ‘무기정학’이었다.


이쯤 되면 소송도 이제 권태롭다. 학생들은 무기정학처분 무효확인 소송을 제기하여 승소했다. 1심 재판부는 고등교육법 제13조제1항[주1]이 학생만을 그 징계의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음을 언급하면서, “이 사건 각 무기정학처분은 처분 당시에 이미 학생의 지위를 벗어나 그 처분에 따른 구속력이 있을 수 없는 사람에 대한 징계를 한 것이므로, 당연히 무효라 할 것이다.”이라고 판시하였다. 가사 이 무기정학처분이 새로운 처분이 아니라 기존의 출교처분을 수정하는 처분이라 하더라도 마찬가지라고 하였다. [주2]

네 번째 소송


학교는 징계 시도를 멈췄지만 이젠 학생들이 이대로 끝내기 억울했던 모양이다. A, B를 포함한 학생 5명이 학교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학교 측이 무효인 징계처분을 세 번이나 하여 정신적 고통을 입었으니 1명당 3700만 원씩 배상하라고, 학생들은 청구했다.


항소심에서 일부 청구가 인용되면서, 긴 싸움이 학생들의 승리로 마무리되는 듯했다. 항소심 판결을 조금 거칠게 요약하자면, ‘졸업생을 징계할 수 없다는 건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알 수 있는데 만연히 무기정학처분을 하여 정신적 고통을 가했으니, 적어도 이 부분에 대해선 졸업생 3명에게 각 500만 원씩 배상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위 판결은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되었다. ▲학생들의 행위가 중대하고 심각한 징계사유에 해당하는 점, ▲해당 무기정학처분은 과거에 이미 출교처분으로 학교를 못 다닌 기간에 대해서만 한 것이고 새로운 불이익을 주는 처분은 아닌 점, ▲학교 측은 이 무기정학처분을 통상적인 징계처분이 아니라 문제의 감금행위가 중대하고 심각한 비위행위임을 확인하는 의미의 처분이라고 이해한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이 사건 무기정학처분이…우리의 건전한 사회통념이나 사회상규에 비추어 용인될 수 없음이 분명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학생들은 파기환송심에서도 열심히 다투었고 대법원에도 재차 상고하였으나 이변은 없었다.


9년에 걸친 분쟁이 누구의 승리라고도 할 수 없이 그렇게 마무리되고, 남은 것은...남은 것은 8개의 판결뿐이다.


'법률전문가'의 악몽


세상 일이, 특히 법률가가 하는 일이 이렇게 어렵다. ‘졸업한 학생은 징계할 수 없다.’와 같이 당연해 보이는 명제도, 사실관계가 절묘하게 꼬이면 딱 잘라 말하기 어렵게 되는 것이다.


세번째 징계위원회 위원으로 참석했던 그 노동법 교수는 얼마나 곤란했을까. 당시로서는 '졸업생도 징계할 수 있다'는 것이 영 터무니없는 논리도 아니었던 것 같은데, 손해배상소송 항소심 판결은 여러 징계위원 중에서도 그 노동법 교수를 콕 집어 지목한 뒤 "법률전문가로서 조력을 할 지위에 있었다고 볼 수 있는 위원조차도 위원장의 잘못된 입장에 동조"함으로써 학교가 불법행위를 하게 만들었다고 썼다. 물론 이 판결은 상고심에서 파기됐지만, 학교에서 법률검토로 밥벌이하는 사람에겐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대목이다. 그분은 그나마 본인 전문분야가 아니라거나 하는 알리바이라도 있지 학교 사내변호사는 그렇지 않다. 변호사가 복잡하고 민감한 사안에 대한 의견서를 쓸 때 종종 머릿속에 떠올리는 악몽이 바로 이런 것이다.


나중에 그 사안에 대한 판결이 나오면 마치 그 판결이 '정답'인 것처럼 통용되고, 과거에 이와 다른 답을 내놓았던 사람은 '오답'을 낸 것처럼 이야기되지만, 사실 법률 해석은 하나의 정답이 있는 영역이 아니다. 그리고 특정 사건에 대해 법원이 어떤 판결을 할지, 또 그 판결이 상급심에서는 어떤 판단을 받을지 정확히 예측하는 것은 어느 정도는 점술가의 영역이다. 변호사는 현재 주어진 정보와 현행 법규, 과거 유사 사건에 대한 판례/해석례, 최근 판결 경향 등을 토대로 향후 발생 가능한 법적 리스크와 승소 가능성을 검토하여 제시할 수 있을 뿐이다. 허구한 날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류의 두루뭉술한 표현만 쓰는 건 점술가가 아니라 변호사라서 그런 것이므로 다들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 주시기를 바라본다.


끝.


[주1] 고등교육법 제13조(학생의 징계) ① 학교의 장은 교육을 위하여 필요하면 법령과 학칙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학생을 징계할 수 있다.

[주2] A, B와 달리 아직 졸업 전이었던 학생 4명 역시 승소 판결을 받았다. 무기정학 자체는 적정하지만, 문제의 행위를 함께 저지른 학생들 중 졸업생에 대한 처분은 무효이고 재학생에 대한 처분만 유효하다고 할 경우 형평성에 반한다는 이유였다.

이전 07화 졸업한 학생은 징계할 수 없다(上)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