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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겨울의 페인트공 / 한수남

by 한수남


그는 양쪽 다리 사이에 사다리를 끼웠다

지상으로부터 3~4미터 위에서

간판에 남아있는 얼룩을 제거하느라 몸이

왼쪽으로 기울었다. 왼발은 사다리 위에 놓여있고

오른발은 사다리에서 살짝 떠 있다. 나는

버스안에서 괜히 긴장을 한다. 그는 예전의 얼룩을

지우려는 것이다. 끌 같은 것으로 긁어내고

새로운 페인트를 칠하려는 것이다. 바지에는 이미

하얀 페인트 자국투성이

저 가게는 빵집이 될 것인가 김밥집이 될 것인가

저 가게의 주인일까 아닐까 신호가 바뀌어 버스가

출발하고서도 나는 잠시 겨울 끝자락의

페인트공에 대해 생각한다. 흔들리지 않기를

살짝 흔들려도 다시 중심을 잘 잡기를, 내게는

사다리 위에 올라간 사람이 떨어질까봐

밑에서 사다리를 붙잡고 떨었던 기억이 있다


새봄이 오는 소리가 윙~ 들리는 날이었다.



그 겨울의 페인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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