잎, 사귀

by 한수남

잎, 사귀 / 한수남


잎들이 나보고 사귀자고 했다.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더니

팔랑팔랑 온몸을 흔들어댔다


이제 옛친구도 거의 없고, 새 친구도 없는 나에게

저 겨울 잎사귀들이 사귀자고 말을 걸어왔다


잎사귀들이 어떤 서사(敍事)를 지니고 있는지

나는 가까이 다가가 들여다보았다.

가늘지만 또렷한 잎맥과 무늬, 주름 따위를


길고 추운 겨울을 관통하고 있는 잎들의 서사(敍事)가

무엇보다 내게 한잎의 희망을 주었다.

나도 자주 찾아와서 나의 서사(敍事)를 들려 주어야 하리라.


숱한 낙담 끝에 오는 새로운 희망 하나를 품고

잎, 사귀

잎, 사귀를 향해

팔을 팔랑거려 보는 이 길의 끝에서

또 새로운 계절이 성큼 다가오고 있으니.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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