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자-한강-

by 수다쟁이


(채식주의자)는 내가 읽은 책중 가장 깊게 인간의 심리를 파헤친 책이다.

이 이야기의 세편은 각각의 독립된 이야기이지만 세편 모두를 읽지 않고는 난 이 이야기가 무슨 말인지 모를 뻔했다. 그렇다고 이 이야기들을 다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가늠할 수 없는 우물의 깊이를 알기 위해 고개를 깊이 들이밀수록 두려움이 커진다는 것을 알기에 책을 두 번 세 번 되네기가 힘들었다.




우연이었는지 책을 읽기 하루 전 티브이에 한 방송인이 나와 오은영 박사에게 상담을 받았다.

"나는 세상이 거짓같이 느껴져요.. 밖에 있는 사람들은 다 가짜고 연극을 하고 있는 거 같아요.. 정신이 이상하다고 느끼겠지만.. 현실이 꿈같고 꿈이 현실 같아요.."

우람한 체격의 소유자인 그의 입에서 나온 뜻하지 않은 말은 패널들을 긴장시켰다.

"어릴 적 아버지는 남들에게는 둘도 없는 호인이었지만

가족에게는 폭력을 행사하는 폭군이었어요..

가족들은 아버지의 폭력에 힘들어했고. 어릴 적에 저는 고아였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눈시울이 붉어지는 출연자의 말에 다른 패널들도 같이 눈시울을 붉혔고 오은영 박사는 출연자의 그런 심리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일종의 트라우마라고 진단했다.

어쩜 현실이 꿈이었으면, 연극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채식주의자 속의 영혜나 영혜의 언니도 아버지의 폭력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다.

9살짜리 영혜가 산에서 길을 잃고 "언니 우리 집에 안 돌아가면 안 돼?"하고 말을 하는 장면에서 나는 그 방송인의 어린 시절이 연상되었다.

지옥 같았던 시간이었다고 했다.

인간을 파괴하는 인간의 잔혹성을 영혜의 아버지는 보여주고 있었다.

영혜가 어린 시절 개에 물린 사건은 어린 영혜에게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트라우마로 남는다.

잔인하게 동물을 학대하고 먹어치우는 인간들 속에서 어린 영혜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꿈속에서 항상 영혜는 잔인한 본성을 드러내는 인간과 대면한다.

그런 인간인 자신을 견딜 수 없었던 영혜는 육식을 거부하고 말라간다.

그러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인간으로 만든 것이다.


영혜의 본성이 좀 더 차갑고 냉정했더라면 남동생처럼 아무렇지 않게 살아갈 수 있을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가장 자연과 가깝고 순수하고 원초적인 모습을 지닌 영혜는 없어지지 않는 몽고반점을 간직한 채 한그루의 나무처럼 말라간다.

한그루의 나무가 되고 싶은 처절한 몸부림이 안타까울 뿐이다.


두 번째 장 몽고반점의 가장 이해하기 어려웠던 인물은 영혜의 형부이다. 그는 인간의 세속적인 면모에 환멸을 느끼는 예술가다. 자기가 하는 예술은 인간들의 눈물을 자아내게 하지만 그는 그것이 역겨운 거짓이라고 느낀다.

도덕적인 것에 반하지만 인간의 본능적인 아름다움을 갈망하는 그는 원초적이고 순수한 모습을 간직한 영혜에게 이끌린다.


작가는 그를 인간의 거짓된 욕망을 버리고 본능에 충실하려는 인간으로 묘사하려 한 것인지..

아니면 본인이 원초적인 인간을 파괴하는 탐욕적

욕망을 지닌 인간으로 표현하려 한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무엇인지?

어찌 됐건 예술을 빙자한 인간의 욕망은 또다시 짓밟힌 자아를 또 파괴시키고 만다.


영혜와 남편과의 경계에 있던 사람.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던 사람. 꿈과 현실의 경계에 있던 사람. 영혜의 언니는 가장 인간다운 인간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인간다운 인간으로 살아가기까지 그녀는 자신의 모습을 그럴 듯이 포장하고 주어지는 아픔들을 삼켜야 했다.

죽음과 가까이 다가갔을 때 오히려 희열을 느끼던 그녀의 상처는 얼마나 곪아서 차마 터지지도 못했을까?

자신의 삶이 다른 사람의 물건처럼 낯설게 다가오는 그녀의 삶은 누구에 의해 파괴된 것일까?

아버지일까? 남편일까? 보호하고 싶었던 영혜일까?

차마 죽음을 선택할 수 없게 만든 건 그녀의 아들 지우였다.

그녀를 웃게 하는 존재, 가장 순수한 모습으로 존재하는 그녀의 아들 지우는 그녀가 삶을 버릴 수 없게 한 때 묻지 않는 영혼이었다.

인간을 파괴하는 것도 인간을 구원하는 것도 인간이라는 것이 서글픈 웃음을 짓게 했다.





이 세편의 이야기에서 나는 폭력적이고 잔인한 인간의 면모를 보았다. 그러나 안타까운 건 인간의 내면 속에는 들추어지지 않은 이런 모습이 있다는

사실이다.

누군가를 학대하고 짓밟고 멸시하고 거짓으로 눈물짓고

본능적 욕망을 제어하지 못하는 가장 지능화된 동물인 인간.

더럽고 시꺼먼 썩은 우물 속 밑바닥을 들여다본 기분이었다.


인간은 누구나 적당히 어느 만큼 의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때론 그것이 본능일 수도 있고 다른 이에 대한 예의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것은 어쩌면 사람다움 일수도 있다.

선의의 가면인 것이다.

하지만 때론 사람들은 선의의 가면을 벗고 치욕스러운 본능만을 드러내기도 한다. 먹이를 앞에 두고 날 선 이빨을 드러내는 하이에나처럼 말이다. 그런 인간은 다른 인간을 병들게 하고 아프게 하고 결국엔 파괴시키고 만다.


작가는 인간의 잔인하고 추악한 면모를 드러냄으로써 사람이 어떻게 사람답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나에게 던져주었다.

어떤 선의의 가면을 쓸지는 나의 몫이다.



마음에 담고 싶은 책 속의 한 줄!

P61
손목은 괜찮아. 아무렇지도 않아. 아픈 건 가슴이야. 뭔가가 명치에 걸려 있어. 그게 뭔지 몰라. 언제나 그게 거기 멈춰 있어. 이젠 브래지어를 하지 않아도 덩어리가 느껴져. 아무리 길게 숨을 내쉬어도 가슴이 시원치가 않아.
어떤 고함이, 울부짖음이 겹겹이 뭉쳐져, 거기 박혀 있어. 고기 때문이야. 너무 많은 고기를 먹었어. 그 목숨들이 고스란히 그 자리에 걸려 있는 거야. 틀림없어. 피와 살은 모두 소화돼 몸 구석구석으로 흩어지고, 찌꺼기는 배설됐지만, 목숨들만은 끈질기게 명치에 달라붙어 있는 거야.
한 번만, 단 한 번만 크게 소리치고 싶어.
캄캄한 창밖으로 달려 나가고 싶어. 그러면 이 덩어리가 몸 밖으로 뛰쳐나갈까.
그럴 수 있을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