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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다쟁이 Jan 13. 2022

나의 소울푸드 김밥(행복)


주부가 된 뒤로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었던 음식은 김밥이었다. 하지만 김밥은 나에게 그리 호락호락하게 자기만의 맛을 내어주지 않았다.

야채나 속재료는 남들 하는 것처럼 쉽게 준비했지만

어떤 날은 밥이 질거나 너무 되고,

또 어떤 날은 둥글게 마는 것이 힘들어서

공기를 재료로 집어넣은 것처럼

바람 빠진 튜브 모양이 돼버렸다.

밥의 간을 맞추는 것은 요리의 고수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남편의 평가는 냉정했다.

" 당신은 김밥은 잘 못 싸는 거 같아"

"어 난 김밥장사할 생각은 없어"라고 시큰둥 대답했지만 쉬울 것 같은 김밥이 왜 안 싸지는지 어느 순간부터 나는 김밥과 자존심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가 커가고, 유치원을 다니고, 학교에서 소풍을 갈 때,  김밥을 마는 일은  늘상 때가 되면 내야 하는 세금 고지서처럼 다가왔다.

아! 오늘은 좀 잘  싸 봐야지.. 다짐을 한다.

밥은 적당히 고슬고슬하게 물을 약간 적게 넣고

재료는 이것저것 많이 넣으면 맛있으니 시금치 오이, 당근, 달걀, 단무지, 햄, 우엉 등등 온갖 재료를 다 넣어봤다.

그래도 역시 김밥 맛은 그때그때 다 달랐다.

어떤 날은 밥이 좀 되거나 질고,  어떤 날은 밥이 싱겁거나  약간 간간하고, 또 어떤 날은 썩 괜찮은 날도 있었다. 

하지만 한결같은 맛을 낸다는 건 쉽지 않았다.

김밥은 여전히 자존심을 곧추 세우고 있었다.

교활한 녀석 같으니라고!


한 가지 발전한  김밥을 마는 일은 이젠 그리 어렵지 않았다.

처음에는  마는 발을 사용해야 둥글게 만들 수 있던 김밥은

이제는 맨손으로도 짱짱하고 단단하지만 속이 터지지 않을 만큼 말 수 있었다.

세월이 주는 익숙함이 김밥을 마는 일에도 녹아들고 있었다.




사실 김밥은 나의 소울푸드다.

어릴 적 소풍을 가던 날의 새벽 공기는 엄마의 김밥 싸는 참기름 냄새로 온 집안을 풍성하게 했다.

아! 맛있는 냄새! 하며  눈을 뜨자마자

엄마 옆에 앉아 김밥 다리를 베어 물었다.

탑처럼 쌓아지는 김밥을 보며 눈은 입꼬리와 닿을 듯 흐뭇해졌다.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맛이 몸을 타고 흘러 나의 영혼마저 행복하게 했던 음식.

나에게 김밥은 행복이었다.


엄마의 김밥은 좀 남달랐다.

고슬고슬한 밥에 약간은 굵직한 소금을 흩뿌리고,

깨와 양념을 한 다짐 소고기 볶음이 들어갔다.

굳이 김밥으로 말지 않아도 밥만으로도 충분히

맛이 있었다.

밥에 소고기가 들어가서인지

엄마의 김밥은 항상 두툼했다. 속재료로 특별한 재료를 넣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소풍 가방에 담긴 김밥은 늘 내 발걸음을 경쾌하게 만들었다.


그 김밥 맛을 나는 지금도 기억하지만 아직은 한 번도 시도해본 적이 없다.

손은 예전의 엄마 손만큼이나 투박해지고, 

어떤 재료를 넣고도 그럭저럭 김밥을 말 수 있는 경력직 주부임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그런 맛을 낼 자신이 없었다.

어쩌면 엄마만의 김밥으로 남겨두고 싶은 마음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 기억을 추억하듯 나는 요즘도 자주 김밥을 만다.

밥맛이 없을 때, 반찬이 없을 때, 딱히 마땅한 요리가 생각나지 않을 때 등등


오늘 문득 뭘 해 먹을까 냉장고를 뒤졌을 때는

오리고기와 돼지고기와 상추가 있었다. 여느 때 같으면 고기를 구워 상추쌈을  쌌을 텐데..


(김밥 재료; 오리고기 돼지 목살 단무지 당근

                     상추 김밥김)



순간 나에게 가끔씩만 찾아오는 창의력이란 녀석이 노크를 했다.


밥 위에 상추를 깔고 오리고기를 굽고, 돼지고기도 약간 양념을 해서 구웠다.



오이맛고추도 길게 썰고, 단무지는 두 개씩 넣었다.

그리고  당근. 왠지 마요네즈를 넣으면 어떨까 싶어 마요네즈도 길게 뿌렸다.




드디어

나만의 새로운 김밥이 완성되었다.

일명 고기 상추쌈 김밥..


무언가를 열심히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뜻하지 않은 좋은 결과물이 나올 때가 있다.

오늘 김밥이 나에게 그런 짜릿한 순간을 맛보게

했다.  맛으로도, 모양으로도.


그리고 귓가에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는 거

같았다.

음식의 가장 중요한 재료는 정성이야!

정성이 들어가지 않으면 맛을 낼 수 없어!



재료;
김밥김, 단무지, 오리고기, 돼지 목살
상추, 당근, 고추
밥, 소금, 참기름, 통깨


나만의 레시피;
-밥은 고슬고슬하게(밥물을 적게)
-상추는 앞뒤를 엇갈려 놓기
-밥 상추 단무지 마요네즈 고추 당근 고기
   순으로 놓기
-돼지고기는 후추 마늘 간장 미림으로
  싱겁게 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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