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는 5년 만이다. 5년 전의 제주는 25년 전의 제주보다는 많이 변해있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돌담 어딘가에 낭만을 품고 있을 것 같은 섬으로 기억된다.
25년 전 첫 번째의 제주는 이국적이란 느낌이 컸었다.
야트막한 돌담, 야자수, 그리고 제주의 시원한 바람. 단체로 온 5월의 수학여행이었다.
그때의 제주로 기억되는 곳은 오직 한라산 백록담이었다.
왕복 8시간의 산행 끝에 본 백록담은 생각보다 거대하지 않았지만
포기할 뻔한 돌산을 끝까지 올랐다는 성취감에 뿌듯했었다. 그리고 나머지 기억들은 들춰보지도 못할 만큼 멀리 사라져 버렸다.
20대의 나의 첫 제주는 낯선 발걸음과 어색한 표정으로 남아있다.
두 번째의 제주는 5년 전 제주도 분이신 형님의 안내로 계획된 여행이었다.
20년이 지난 제주는 제주 같지 않은 도심을 닮아있는 제주였다.
공항에 도착했을 때 제주가 이랬었나 하는 낯설지 않은 낯섦이 다소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제주라는 이름만으로 설렜던 여행이었다.
두 번째 제주여행은 바다여행으로기억된다.
바다를 좋아하시는 형님 덕에 일주일간의 여행 중에 5일은 바다에 머물렀던 기억이 생생하다.
판포의 바닷가에서 다이빙을 하고 스노클링을 했다. 뜨거운 태양을 피해 하루 종일 물속에 머물렀던 바다는
무섭지만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의 바다였다.
그다음 날은 곽지해변에서 하루를 보냈다.
바다가 싫지 않았지만 바다를 감당하기 버거워 잔잔한 파도를 눈으로만 감상했던 곳이다.
그날도 아이와 형님과 아주버님은 곽지에서도 하루 종일 바다에 머물렀었다.
여름의 뜨거운 제주는 바다와 함께할 수밖에 없는 일이기도 했다.
그리고 월정리의 어느 바닷가에선 마치 내가 해녀가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바닷가에서 주운 보말로 형님의 할머니 댁에서 보말라면을 끓여먹은 게 제일 기억에 남는다. 마당에 자리를 펴놓고 사돈 어르신이 끓여주신 녹두 삼계탕을 먹었을 때는 내 몸이 제주라는 섬을 오롯이 받아들이는 것 같은 전율이 흘렀다.
여행은 어쩌면 안내자의 삶의 어딘가에 잠시 머무르다 오는 것이아닌가 싶다.
그런 기억을 더듬어 세 번째 제주여행은 내가 계획했다.
일단 날짜를 정하고 비행기 표를 끊고 숙소를 정했다. 그리고 갈 곳을 정했다.
아이와 함께한 여행이라 아이를 위한 체험 요소를 하루에 한 가지씩 넣기로 했다.
재미가 없더라도 체험은 그야말로 체험으로서의 의미를 가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리고 어리석을지 모르겠지만 볼 수 있는 제주는 다 보고 오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빈 그릇을 들고 뷔페 음식처럼 다양한 음식을 담고 싶은 욕심을 낸 여행이었다.
제주공항 근처에서 시작된 제주여행의 첫날은
든든하게 해장국을 먹고 시작되었다.
예전에도 제주에 왔을 때 해장국이 유명하다고 해서
해장국을 먹었던 기억은 나지만 맛은 기억나지 않았다. 호텔 근처의 해장국도 깔끔하긴 했지만
기억날 만큼의 맛은 아니었다.
첫날의 시작은 아르떼 뮤지엄 관람이었다. 최대 규모의 미디어아트라는 말이 어울리게 멋진 모습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여러 가지 형태의 작품들이 착시현상을 일으키며 시선을 빼앗아갔고가든이라는 콘셉트의 방에서는 음악과 명화의 어우러짐이 마음을 사로잡았다. 시대를 거스르는 명화의 감동은 18세기의 혹은 19세기의 고전 속으로 우리를 데려다주며 환상을 안겨주었다.누구나 다 알만한 그림이 계속 바뀌면서 연출돼서 아는 사람을 만난 듯 반가웠다. 그림과 음악은 어쩜 하나의 몸에서 탄생한 쌍둥이 인지도 모르겠다.
아르떼뮤지엄-가든
뮤지엄의 환상을 안고 향한 곳은 곽지해변이었다.
예전의 기억을 더듬어 온 곳. 수영은 할 수 없었지만 추억할만한 장소라 반가웠다.
제주의 돌, 바다, 그리고 바람.
제주의 바다는 늘 그렇듯 생동감이 넘친다.
곽지해변
세 번째 코스는 금오름으로 향했다.
화산인 오름은 산 또는 봉우리를 뜻하는 말이다.
한라산 말고는 처음 오른 오름이라 신기했다.
언덕에서 바라보는 제주의 전경은 아름다웠고
시원한 바람을 타고 패러글라이딩 하는 사람들을 따라 해 보고픈 마음에 같이 언덕을 뛰어다녔다.
자연이 만들어 준 선물은 사람이 만든 그 어떤 것보다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금오름의 모습
네 번째 코스는 협재해변이었다.
물빛이 에메랄드 빛이라는 해변은 이름날 만하게
물빛이 이뻤다.
간혹 신혼부부들도 눈에 띄었는데 아름다운 바다색을 담으려고 애를 썼다.젊은이들과 젊게 보이는 바다가 꽤 잘 어울렸다.
물빛에 담은 사람도 물빛을 담아 연두색으로 보였다.
한참 동안 발을 담그며 협재해변을 걸으니
마치 해외의 바닷가에 머무르는 느낌이 들었다.
바다 빛으로 빙 둘러싸인 제주는 어느 바다라도 좋았다.
협재해변
아쉽지만 협재 바다를 뒤로하고 밥집을 검색하다
근처에 선인장 군락지가 있다 해서 그곳으로 차를 몰았다. 뜻하지 않은 방문이 기억에 남는 곳이길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