빡세게 제주여행 3

제주 3일 차

by 수다쟁이

제주여행의 3일 차다.

어제 이른 저녁을 김밥으로 때우고 밤새 배가 고팠다. 피곤했지만 늦은 저녁의 커피 한잔이 밤잠을 설치게도 했다. 그래서 그 밤에 아침에 먹을 맛집을 심하게 검색했다.

운 좋게도 마음에 드는 맛집이 있었고 남은 이틀은

제주에서 먹어볼 수 있는 음식을 꼭 먹어보고 싶었다.

갑자기 여행의 방향이 맛집으로 전환된 것 같았지만 나도 남편도 아이도 허기진 배를 만족시켜주고 싶었다.

이번 여행의 기획자는 나였으므로..


남편에게 정말 맛있을 것 같다는 집을 얘기해서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 차를 몰았다.

맛집으로 소문이 났는지 칼국수집은 웨이팅이 길었다. 하지만 친절한 안내 때문에 기다리는 마음이 지루하진 않았다.


전복죽과 보말칼국수

아침메뉴로 딱이라는 전복죽은 정말로 속을 따뜻하게 데워주었다. 아침이라 죽을 2인분 칼국수를 1인분 시켰는데 남편은 칼국수 국물이

맛있다며 칼국수를 더 먹고 싶어 했다.

나는 먹기에 바빠 맛을 제대로 음미하진 못했지만,

죽은 구수했고 칼국수는 해물의 맛이 담백하면서

색다른 맛을 전해 주었다.

남편은 칼국수 국물의 맛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남편의 까다로운 입맛을 만족시킨 맛집이어서 추천한 나도 뿌듯했다.


만족스러운 얼굴로 우리는 첫 번째 목적지인 곶자왈 도립공원으로 향했다.

이름이 특이한 곶자왈의 곶은 숲을 뜻하고, 자왈은

나무나 덩굴이 엉클어진 덤불이라는 뜻이다.


곶자왈로 들어서자 정말 원시림의 숲에 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름 모를 나무들과 이끼와 덩굴식물들로 우거진 숲, 간간이 들리는 새소리는 아늑하지만 신비한 모습으로 우리를 맞이했다.

줄줄이 늘어선 나무는 우산처럼 햇살을 가려주고 사이사이로 비추는 햇살은 수풀 안의 공간을 환히 비추었다.

햇살을 받으며 그늘 아래서 걷는 느낌이 참 황홀했다. 불어오는 바람은 바람소리가 아니라 파도소리처럼 들려 숲 속을 걸었지만 해변을 걷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걷는 내내 시원한 사이다를 마시는 청량함이 함께했다.

코끝에는 초록색의 풀냄새가 맴돌았고,

숲과 조용한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곶자왈도립공원

나이가 들어가며 산길을 걸을 때면 앞에 걷는 사람의 뒷모습을 보게 된다. 앞모습에서는 사람의 감추어진 모습이 보이지만 뒷모습에서는 걷는 사람의 속마음이 보인다.

그래서 가끔은 산 길을 걸으며 앞서 걷는 사람의 뒷모습을 보는 것 같다.

오늘 보는 남편과 딸의 뒷모습은 행복해 보였다.


곶자왈의 숨골

곶자왈을 걷다 보면 종종 이런 숨골을 보게 된다.

이런 암석의 틈은 지하로 연결돼 숲을 일정한 온도를 유지시킨다고 한다. 자연은 참 신기하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몇만 년 전의 시간으로 우리를 데려다 주니 말이다.


곶자왈의 감흥을 안은채 우리는 두 번째 목적지

오설록 뮤지엄으로 향했다.

뮤지엄 내부는 차에 관한 전시인 것 같아 자세히 둘러보지 않았다.

바깥의 녹차밭의 풍경이 더 매혹적으로 다가와서

그 곁에 앉아있었다.

남편과 딸은 녹차밭 숲으로 들어가 숨바꼭질을 했다. 녹차밭 사이로 숨어 드니 부드러울 것 같았던 녹차 잎은 햇빛을 품어 아주 두텁고 짱짱하다.

이 녹차 잎이 차로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을 우연히 티브이에서 본 적이 있는데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녹차를 마실 때마다 이 녹차밭이 떠오를 것 같다.



오설록뮤지엄의 녹차밭


오설록에서의 녹차아이스크림


제주에서 만난 녹차밭 오설록은 여행 중에 잠시 쉬어가며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곳이었다.


오설록 뮤지엄을 보고 원래는 산방산을 가고 싶었다. 하지만 어제 굶주렸던 배를 알차게 채우려고 다시 서귀포시로 들어왔다.

오늘 점심은 흑돼지구이다.


흑돼지구이

5년 전 제주에서도 흑돼지구이를 먹었었지만 그때는 사실 맛있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배가 고팠는지 오늘 먹은 흑돼지구이는 돼지고기 냄새가 나지 않아서 맛있었고, 오겹살은 더 맛있었던 것 같다.

돼지고기로 맛을 낸 김치찌개에 밥 한 공기를 뚝딱 비워냈다. 배가 부르니 오늘 하루도 다 채워진 것 같은 느낌이다.

아직까지의 여정은 만족할 만큼 순조롭다.


든든히 배를 채우고 숙소를 체크인하러 가는 길에

산방산이 있는 줄 알았는데 착각을 했는지 숙소는

서귀포시에서 한라산으로 가는 중턱쯤에 있어

산방산은 포기했다.

대신 근처에 가볼 만한 곳을 검색했다.


가까운 곳에 돈내코 유원지와 원앙폭포, 치유의 숲이 있었다. 치유의 숲은 곶자왈과 비슷해서 입구만 둘러보고 유원지를 지나 원앙폭포로 향했다.


원앙폭포를 가는 길은 좁다란 계단이 많았다.

많이 노후된 계단을 따라 들어가는 길은 그늘진 곳이 많아 좀 어둡고, 습한 기운이 느껴졌다. 힘들게 오르내린 발걸음보다는 기대에 못 미치는 풍경이어서 아쉬웠다.

어쩌면 어제 정방폭포를 본 까닭인지도 모르겠다.


원앙폭포

무거운 다리를 이끌고 다시 서귀포시내로 들어왔다.

가보고 싶던 커피숍이 있었기 때문이다.

커피는 늘 기대고 싶은 인생의 동반자였고

색다른 커피를 마시는 일은 여행이 주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구수한커피와 진하고부드러운 라떼

오늘 선택한 커피는 약간 구수한 맛이 나는 아메리카노와 묵직하고 달달한 라떼였다.

흔히 먹었던 아메리카노와 라떼와는 다른 맛이어서

즐거운 커피 체험이었다. 라떼 한 잔으로 배가 부르고 다시 걸을 에너지를 얻었다.

다음에 또 오게 된다면 다른 종류의 아메리카노를 맛보고 싶었다.

우연히도 커피숍 근처에 바로 이중섭거리가 있었다. 오늘의 네 번째 여정이다.

5년 전에도 이중섭거리에서 공연도 보고 거리도 구경했었는데 다시 그 거리에 서게 됐다.

그때도 지금도 이중섭거리는 아기자기한 모습이다.


이중섭이 살았던 생가는 참 초라했지만 이중섭 화가의 그림에서 느껴지는 힘은 대단해 보였다.

좁다란 길을 따라 걸으며 사진도 찍고

곳곳에 전시된 이중섭의 그림도 관람했다.

이 거리는 마음에 작은 속삭임을 전해주는 거리였다. 다음에 다시 와도 좋을 거리이다.


이중섭거리의 소
이중섭거리의 돌담

제주여행의 3일째 날이 저물고 있었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제주 올레시장에 들러 저녁에 먹을 과일과 군것질 거리를 샀다.

시장은 늘 북적이고 정신이 없기도 하지만

여행지에서 만나는 포근한 풍경이기도 하다.

한라봉 하나를 덤으로 얻어서 기분이 좋았다.


오늘의 여정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곶자왈이다.

제주를 가장 많이 느낄 수 있던 곳, 그리고 파도소리 같은 제주의 바람을 느낄 수 있었던 곳이다.

그리고 오늘 맛 본 제주의 음식은 여행의 즐거움을 더했다.

제주는 어쩌면 어딜 가도 좋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 날인 내일은 계획된 혹은 계획되지 않은 길에 필연적으로 그리고 우연히 제주의 멋진 자연과 만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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