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UHYU Aug 16. 2023

산책 시 주의할 사항

피해 가야만 한다

한국은 참 안전한 곳이다.

한여름밤 뜨거운 밤에도 많은 사람들이 골목을 돌아다니고, 사람들과 계단에 앉아 이야기를 하며 하루의 남은 시간을 보내거나, 하루의 시작을 길에서 함께하는 모습을 종종 본다.

밤늦은 시간 걷다 보면 많은 사람들을 보게 되는 데 매일 보던 종류의 사람들은 이미 익숙하지만, 간혹 당화스러울 정도의 사람들도 마주치기도 한다. 그중 하나가 술 먹고 좌우를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이라던지 길 한복판에 누워서 자는 사람들.... 등 이런 모습의 사람들은 전혀 익숙해지지 않는다.(가끔 위험해 보이면 경찰에 신고하기도 한다.)


저번에는 원룸촌의 언덕길을 올라가다 남자 3명이서 나란히 내려오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더운날임에도 불구하고 가운데사람을 기준으로 양옆사람은 딱 붙어서 팔짱을 끼고 내려오고 있었는데 흔히 길에서 볼 수 없는 모습 중에 하나였다. 멀찍이 떨어져

'저 사람들 뭐지'

라고 생각하며 언덕을 오르다 가운데 사람이 손목에 옷을 두르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뉴스에서나 보던 모습이 떠올랐다. 

경찰과 범죄자. 

'범죄자를 연행하는 모습이구나.'를 생각하며 실제로 연행하는 모습을 보고 있는 것에 내심 '한국 경찰 역시 늦은 시간에도 열심히 일하는구나.'(고향친구들이 다 경찰이다)와 '저 사람은 무슨 범죄를 지었길래 이 늦은 밤에 손목에 수갑을 찬 채 가는 걸까?'라는 두 개의 감탄과 궁금함이 떠올랐다.


이렇듯 밤거리를 산책하다 보면 참 다양한 모습을 마주치게 된다. 


최근 들어 느끼는 거지만 밤에 걷는 건 낮에 걷는 것보다 상당히 힘든 일이다. 낮보다는 시원해서 내 몸은 한결 편안하지만, 나의 마음이 그렇지가 않다. 2달 정도 걸어본 결과 특히 조심해야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을 말해보려 한다.


첫 번째, 커플이 과한 스킨십, 애정표현 중일 때 그 옆을 지나가야 할 때.

그렇게 난감할 수가 없다. 가야 될 길은 하나이고, 저 멀리 외국에서나 보던, 혹은 드라마에서 가로등 불빛아래 벽을 기반 삼아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음을 안 여성과 남성의 뜨거운 눈빛교환, 그리고 그들만의 황홀함을 느끼는 그 행동을 멀리서 보면서 걸어가면 어느새 가까워져 그 상황을 지나쳐 가야 하는 것은.... 당황스럽기 그지없다. 

내가 애정표현의 당사자라면 상관이 없이 서로에게 집중하고 있겠지만, 제삼자의 목격자로서는 박수를 쳐줘야 하는 건지, 환호를 해줘야 하는 건지, 아니면 드라마를 보듯 멀뚱히 지켜봐야 하는 건지 머릿속은 백지상태가 되어 있다. 물론 그러한 백지는 찰나의 순간이고, 정답은 마치 없는 사람들인 양 지나가는 것인데, 그 순간만큼은 허벅지에 힘을 내어 걸음걸이 속도를 높이고, 보폭을 좁게 하여 얼른 그곳을 벗어나고자 노력을 한다.

조심해야 되기보다는 얼른 피해야지만 그들의 애정표현을 무난히 마무리 지을 수 있다고 생각한 나의 조그마한 배려이기도 하다.


두 번째는 걸음방향에 나의 앞에 혼자서 걸어가는 사람을 발견했을 때를 특히 조심하고 있다. 

최근 흉악해진 사회의 모습을 담은 뉴스들을 보고 있자면 참 세상이 이상한 데로 돌아가고 있구나 생각할 때가 종종 있는데, 그렇기에 특히 세상을 신뢰하지 못하게 된 것 같기도 하다. 상대방이 나에게 해코지 하려는 것에 조심하는 게 아닌 나와 같은 방향의 내 앞의 사람이 나를 뒤따라오는 무서운 범죄자로 생각할까 두려워 조심하고 있다. 

난 가끔 뒤를 돌아보는 습관과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걷는 습관이 있어 나름 걸음에 '늘 조심'이라는 것이 묻어 있지만, 그러한 모습으로 내 앞에 걷는 사람이 날 이상하게 볼지 모른다고 생각한 게 여러 번이다. 그럴 때면 난 마치 평소 양반처럼 뒷짐을 지고 걷던 나의 손을 앞으로 보이며, 손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무언의 표현을 한 뒤 상대방과 멀찍이 떨어져 최대한 빠른 걸음걸이로, 그러면서 급하거나 쫓아가는 걸음걸이가 아닌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려 애쓴다. 내가 상대방을 뒤쫓는 모습보다는 상대방이 날 뒤쫓는 모습을 만들어 '난 안전한 사람이고, 이제 당신이 날 위협하는 사람이 되었다'라는 걸 보여주기 위한 나만의 밤길 산책 공식 중에 하나이다. 또 다른 건 어두워진 골목길은 특히나 신경 써야 되고, 다른 길로 빠질 수 있다면 그것이 최선의 선택일 수 있기에 늘 길도 미리 숙지해서 가는 경우도 있다.


마지막으로는 내가 가는 방향과 같은 쓰레기수거 차를 발견했을 때이다.

이건 안전, 정신적인 위협보다 나의 생각을 방해하는 특수한 상황이다. 쓰레기를 수거하시는 분들은 주로 새벽시간에 집 앞에 내놓은 수많은 쓰레기들을 수거하는데 주로 4인 1조로 차량 운전과 자전거를 타시고 차가 들어가지 못하는 곳을 수거하시는 분, 나머지 2분은 쓰레기를 던지시는 분들로 구성이 되어 있었다. 그분들이 있기에 내가 가는 길이 깨끗해 보이고, 나름 쾌적할 수가 있는데 그 쾌적함을 위한 수고를 보고서 같은 방향으로 걷노라면, 생각보다 그렇게 쾌적하지 않아 진다. 

난 잠깐 멈춰서 쓰레기 수거를 다하고 갈 수도 있지만, 산책을 하며 한 번도 어디에 앉아서 쉬거나 한 적이 없다. 여러 이유가 있는데 모기가 순식간에 나에게 달라붙기도 하고, 뭔가 걷다가 멈춘다는 게 나의 의지가 여기까지 인가 싶어 용납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당히 쓰레기 수거하시는 모습을 멀찍이서 보며 조용한 골목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물론, 빨리 지나쳐서 갈 수도 있지만, 그것 또한 나름 힘든 일 중에 하나이고, 그냥 그 골목길을 벗어나던가 아니면 그들에게 감사함을 마음속에 담으며 열심히 뒤따라 갈 수밖에 없다. 


난 걷는 게 좋다고 평소에도 말하고 다니던 사람이었다.(뭔가 열심히 인생을 사는 것 같아 보여서)

그래서 밤에 가만히 누워 떠오르는 생각을 상상으로 바꾸거나, 하루를 정리하기보다는 낮보다 시원한 밤에 걸으면서 하루를 끝내는 것을 최근 들어 더욱 선호하는 것 같다.. 

야밤산책은 2달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다양한 사람과 풍경 모습들을 보는 것들이 선호하는 이유가 되어 오늘도 오래된 슬리퍼를 신고 나가고 있다. 

조심해야 할 건 많지만, 재미있는 것도 많은 밤산책. 아직은 조금 더 걷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과거로 돌아가는 터널을 발견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