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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HYU Aug 20. 2023

남에게는 축하할 일 나에게 부러운 일

그리고 그는 불안한 일

나이가 어느 정도 차면 큰 소식들을 듣게 된다.

부고, 결혼, 임신.

누군가가 세상을 아름답게 마무리한다면 그와 반대로 험난한 세상에 둘이 되고, 하나의 결실을 시작하게 된다. 30대 중반이 되면서 느끼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이러한 소식을 생각보다 자주 듣는다는 것이고, 육체적인 나이가 들었고, 정신적으로 성숙했다는 개인적인 판단보다 외부에서 나에게 자극을 주는 혹은 소식을 듣는 걸로 나이가 들었구나 생각하게 된다.


얼마 전 전 회사에서 같이 일하던 동료를 만났다.

그분은 아직 취업에 성공하지 못했었는데, 그 한탄을 하기 위한 자리이기도 했다. 전회사에서 같이 일한 날은 1년도 채 되지 않지만, 서로 고민거리들을 들어주며 나름 내가 형처럼 행동했던 것 같다. 그렇다고 내가 그분보다 나이로 형이 아니다. 오히려 2살 어린 동생이다. 전회사에서 더 오래 있었기도 했고, 그분이 봤을 때는 내가 나름 어른 같아 보였는지 날 가끔 형이라고 불렀다.

같이 회사를 다닐 때 IT회사에 전혀 맞지 않는 인문계 쪽에서도 경제 쪽 공부를 해서 영업부터 투자까지 경력이 꼬일 대로 꼬인(그분의 설명) 지난 시간들을 늘 한탄했었는데 그때마다 난 따끔하게 혼내는 식으로 이야기했었다. 그러한 걱정할 시간에 새로운 걸 해보라고, 난 그분에게 일부 나의 일을 주기도 하고, 관련 없더라도 협업이라는 이름으로 팀을 꾸려 IT업계에서 비개발자가 할 수 있는 일들을 경험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이러한 배려는 그분의 꼬인 경력을 전략, 사업, 서비스 기획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할 수 있게 만들어 주고 싶었다.

나도 제대로 앞날을 보지 못하지만, 그분을 배려한 나의 일감 넘겨주기였다. 참고로 난 남에게 나의 일을 주지 않는다. 남의 일을 가져오면 가져왔지 나의 일을 남에게 주지 않는 이유는 내가 남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했고, 그냥 내가 하면 나중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하나부터 열까지 만든 내용과 경험 때문에 누군가의 지적에도 잘 대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분이 유독 상사들을 싫어했는데, 싫어했다기보다는 불만이 많았는데 사실 상사를 욕할 만하기도 했다. 유독하는 것 없는 팀장과 시킨 일에 이미 정답이 있지만 알려주지 않는 본부장을 보고 있노라면 불만이 한가득 나오고 있는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내가 이렇게 회사를 나오게 된 것도 상사들의 사업추진력의 문제가 약간 있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밑에 있는 직원들은 시키는 일만 열심히 하면 되는데 위에서 결정하지 못하면 밑에 있는 직원들은 혼란스럽고 불만이 나오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난 시키는 일만 하지 않았고,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오히려 팀장을 회의실로 불러 혼낼 정도였으니 같이 일했던 그분이 봤을 때는 신기하면서 형 같은 존재였으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불만을 나에게 토로하면 난 적당히 맞장구를 쳐주며 달래주기를 반복했었다.


그러한 고루한 회사에서 서로 영원히 나와 더운 날 삼계탕을 먹었다.

가끔 점심때 회사 주변의 닭칼국수를 일주일에 2번 정도는 먹으러 갈 정도였는데 이제는 삼계탕을 먹고 있으니 서로 발전했다며 회사 나오니 여유가 생긴다며 안부인사를 나누었다.

그분은 집에서 열심히 요리를 한다고 했다. 전회사를 들어오기 전에 결혼을 하셨는데 부인분이 일을 하니 지금 일을 하지 않는 남편이 당연히 부인분의 저녁을 차려야 한다며 저녁을 뭘로 할지를 쉼 없이 이야기했다. 엄마의 마음을 조금이 느껴진다며 놀렸는데, 이렇게 집에만 있는 게 불편할 수 없다며 오히려 한탄했다.

그렇게 왜 취업이 되지 않는지 면접을 보러 가도 이상한 회사만 연결되기 일쑤이고, 그러면서 이러다가 계절을 넘길 것 같다면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렇게 서로의 일에 대한 이야기, 연애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비밀을 나에게 말해주었다. 그분도 일주일 전에 알게 되었다며, 아직 부모님께도 말하지 않은 비밀은 단지 몇 개월 같이 일한 나에게 알려주었는데 운을 떼자마자 난 바로 알아차렸다.


"험난한 세상에 좋은 소식이겠네요?"

"하...... 애기가 생겨버렸어요......"

"축하드려요. 부럽습니다~"


임신. 새로운 탄생. 2명이었다가 3명이 되는 기쁜 일. 남자로서는 남편이 아니라 아빠가 되는 일. 그렇게 어른이 되고 누군가를 책임져야 하는 역할이 되는 일.

그분은 부담스럽다고 했다. 자신의 처지와 현실로 봤을 때 그렇게 마냥 기쁘지 만은 않다고 했다. 원래 계획은 했지만 1년은 더 걸릴 거라 생각했는데 한 번에 이렇게 될 줄 몰랐다고 말하며 자랑반, 걱정반의 얼굴로 이야기했다. 자랑은 이렇게 나이가 먹었고, 운동도 하지 않고, 담배도 피우고, 술도 먹는데 한 번에 되었다는 자신의 남성성에 대한 자랑이었고, 걱정은 앞서 말한 대로 현실이 그렇게 녹록지 않은 것에 대한 고민이었다.

그분은 그 나이에 아이가 있는 가정을 보자면 아파트 전세에, 중고차 한 대에 약간의 저축 정도는 해야 최소 시작이라고 했는데 이 모든 걸 이루지 않고, 준비되지 않은 생명을 받는 것이 걱정이며, 당장 취업도 해야 되는 현재의 상황이 꼬일 대로 꼬였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현재 아기를 낳지 않는 이유 중 큰 이유가 이러한 현실적인 문제이니 당연히 마냥 기뻐하지 못하리라 생각을 했다.


하지만, 난 부러웠다.

결혼도 하지 않고, 오히려 연애도 하지 못하는 난 하늘에 별이라도 보지 못하는 상황이라 부럽기 그지없었다. 사실 난 20대에 결혼하고 싶었고, 하나의 로망이 초등학교의 운동회에 부모자격으로 참가했을 때 젊은 아빠, 멋있는 아빠의 모습을 꿈꿔왔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어느 순간 30대 중반에 하늘에 별이 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이 되었다. 그렇기에 그분이 말하는 안따까움 보다는 이야기를 듣는 그 와중에도 부러우면서 남이지만 기뻤다.


난 지금까지 무엇을 하며 살았는가.... 물론 쉬운 일은 아니지만, 나의 욕심으로 30대까지 오게 되었고, 30대에 왔을 때는 나의 실수로 지금은 혼자가 되었다는 것에 날 한탄하게 된다. 물론 결혼이, 아이가 생긴다는 것이 끝이 아니지만, 그저 난 남들처럼 평균에서 조금 위에서 살고 싶었던 삶에서 점점 평균을 벗어나고 있는 듯한 회의감이 든다.


그에게는 불안한 일이고 남에게는 축하할 일이며, 나에게는 부러운 일이 지금까지 왜 이렇게 살았는지 나를 탓하는 일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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