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전여자친구의 소식
불면증은 아닌 게 꽤 늦은 시간이 되어서 잠은 자고, 일찍 일어는 난다. 늦은 시간에 산책을 갔다가 돌아와 보면 피곤해서 누우면 자는 건 아니지만, 어느 순간 습관이 되어서 티브이를 켜고 자고 있다.(습관을 바꿔야겠다고 생각은 하지만, 지금 당장은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가끔은 늦은 시간에 늦은 밥을 먹는데 메뉴는 정해져 있다. 늦은 시간에 오픈한 음식점이 그렇게 많지도 않고, 대충 배를 채우고 잘 수 있는 메뉴는 국밥 밖에 없었고,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는 소주에 국밥으로 얼굴이 빨개진 상태로 잠을 자곤 한다.
그날은 생각 없이 산책을 했다. 그저 걷다 보니 너무 멀리 와 있었고, 다시 돌아가려고 하니 먼 거리를 다시 걸어가야 했다. 그렇게 10km가 넘는 거리를 돌아왔고, 걸으면서도 이것저것 보면서 때로는 생각 없이 걷기도 하고, 생각을 정리하면서 오르막을 오르기도, 내려가기도 했다. 배가 고팠고, 국밥을 한 그릇 포장해서 집에 돌아왔다. 앞서 말했지만, 국밥을 먹을 때는 맥주대신 소주를 먹고 있다. 얼음컵에 소주를 부어 국밥이랑 먹으면 그냥 하루가 마무리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사실 술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반주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냥 그렇게 어느 순간부터 술을 마시고 있었다. 집에서 혼자 먹는 거고, 취할 정도로 먹질 않기 때문에 또 잠을 그나마 잘 수 있기 때문에 술을 마시는 것도 있다.
소주를 한잔 따라 놓고 국물을 한 모금 마셨다. 전화가 왔다. 새벽 1시.
가장 아끼는 대학교 후배였다. 유부녀 3년 차인 이동생은 나에게 스스럼없이 말하는 아주 편한 동생이었다. 하지만, 이 시간에 전화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의아하게 생각하며 전화를 받았다.
"오빠~ 뭐 해"
"나 늦은 저녁을 먹고 있지. 뭐야 왜 전화했어"
이미 취해있는지 혀는 꼬여있었고, 말 한마디에 슬픔이 묻혀 있는 듯했다.
후배가 전화한 이유는 두 가지였다. 물론 술을 마신 이유도 여기에 포함이 되었다.
후배는 나에게 전전여자친구를 소개해주었다. 그녀(전여자친구)를 만나기 전 2년 넘게 사귀면서 내가 가진 연애의 감정 및 행동 등을 바꿔준 그녀를 뜬금없이 만나게 해 주었다. 소개를 해주기 전 전화가 와서는 소개유무를 물었고, 나의 의사와 상관없이 시간이 지나니 매주마다 여기저기를 전전여자친구와 돌아다니고 있었다. 전전여자친구는 후배의 회사 동료였는데 매우 아끼고 이쁜 동생이라고 나에게 자랑스럽게 소개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한 전전여자친구가 같이 다니던 회사를 나간다고 후배와 송별회를 했다고 했다. 그래서 술을 거하게 마셨다고 말하면서 나와 전전여자친구가 헤어지고 나서 단둘이 말할 기회가 없어 이번기회에 둘이서 따로 이야기를 했다고 그러면서 이것저것 이야기를 했다며 나에게 전화를 한 것이었다.
후배와 전전여자친구는 서로 아끼는 회사 동료로서 같이 지내던 그 시간이 이렇게 끝나는 게 아쉽다고 이야기했다. 회사 동료로서 이별은 또 다른 아쉬움이지만, 이걸 전회사에서 겪어본 난 이해해 주고, 위로해 주었다.
그리고, 전전여자친구에게 남자친구가 생겼다고 이야기를 나에게 해줬다.
사귄 지 5일 되었다고, 좋은 회사에 좋은 조건을 가진 남자를 만나 부모님도 좋아한다는 그런 남자를 만났다고 나에게 말해주었다. 그러면서 나에게 욕을 한 바가지 했다. 후배가 소개해준 만큼 헤어진 이유도 알고 있었기에 그만큼 후배는 아쉬웠을 거라 생각했다.
전전여자친구와 헤어진 이유는 결혼이 현실이라는 것을 늦게 깨달은 것과 그것이 무서웠기에 내가 도망을 친 것이었다. 결혼이 현실이다라는 건 무수히 많이 들어서 잘 알고 있었지만, 막상 내가 그 상황이 되니 현실감각이 없었다. 그래서 결혼이야기를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꺼내지 않은 것도 있었다. 또한 전전여자친구가 원한 여러 조건들을 그것이 부담이었다. 그때는 현실적인 조건들, 그녀가 원한 조건들 사랑하나 만으로는 안 되는 결혼의 부담감을 난 무섭게 다가왔던 것 같다. 그녀가 원하는 모든 조건(아파트, 결혼식장소 등등)을 들어줄 수 있었지만, 그때는 결혼 후 내가 만약 계속된 조건을 못 들어주면, 유지하지 못하면 이별하지 않을까라는 무서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시도해보지도 않고 그녀를 놓아주었다. 그녀의 행복을 빌어주고 나를 포장하며 멍청한 헤어짐을 했었다.
그러한 헤어짐이 후배는 안타까웠으리라...
그렇게 나보다 더 좋은 조건을 가진 새로운 사람을 만난 전전여자친구의 소식을 전하면서 나를 응원하며 훌쩍거렸다. 응원한다는 게 욕과 저주지만 나에게는 위로와 응원으로 들렸다.
그날 산책을 길게 한 것도, 잠을 늦게 자는 것도, 배가 고파 국밥을 사 왔던 것도, 그렇게 소주 한 병을 같이 마시는 것도 모두 전연인의 흔한 안주거리 때문에 내가 만들어낸 시나리오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제는 그녀의 행복과 안녕을 빌어줄 정도로 덤덤하지만, 똥차 가고 벤츠가 그녀에게 왔다는 생각에 마음이 그냥 뭔가 허했다.
소주 한 병 다 먹고 자야겠다.
얼굴이 뻘게지고, 한숨만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