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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HYU Sep 08. 2023

나는 옷이 참 많다

쓸데없이

난 옷을 좋아한다.

아니, 분명히 옷을 좋아하는 것보다 옷으로 그날의 나의 모습이 어떻게 보이게 되는지, 어떠한 느낌인지 평가받고 인식되길 원하고, 좋아하는 것 같다. 그래서 다양한 옷을 사 왔고, 모아 왔다. 모아 왔다는 건 아직도 옷장에 한 번도 입지 않은 옷들이 간혹 있을 정도로 사진으로 봤을 때 이뻤던 옷이 옷장에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물론 그 옷은 입으려고 샀지만, 안 입는 이유는 막상 나의 체형에 안 맞거나 내가 원했던 느낌이 아니라서 간직만 하고 있을 것이다. 


내가 지난 20대부터 지켜오던 옷을 입는 것에 규칙 중 하나는 매일 다른 옷을 입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옷이 많이 필요했고, 신발도 많이 필요했다. 최근에는 괜찮은 착장이 나오면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그 착장을 입긴 하지만, 어릴 때는 무조건 겹치치 않는 옷을 입고 바깥으로 나왔다. 어느 날은 클래식으로, 어느 날은 힙하게 입으며 '나 이런 스타일을 가진 사람이야'라는 걸 보여주지 않고 카멜레온 같이 옷으로서 내가 바뀌길 원했던 것 같다. 


난 스트레스가 쌓이면 쇼핑을 한다. 최근에 쇼핑을 많이 한 걸로 봐서 스트레스가 많이 쌓였나 보다라고 예상할 수 있다. 쇼핑에 관해서도 약간의 철학은 무조건 적인 브랜드 옷만 산다. 명품옷이 최고다라는 단순 생각보다는 그 가격의 값어치를 하는지를 명확하게 따져보고 쇼핑을 하는 편이다. 같은 티셔츠라도 싼 걸 사는 편이고, 그렇게 싸게 산걸 나름 뿌듯함을 느끼며 쇼핑을 정말 잘한다고 자화자찬하는 편이다. 쇼핑을 통해 나의 옷장은 점점 옷들로 가득 차게 되었는데 어느 날 보니 옷장의 행거가 부러져 있었다. 다음 이사할 때 새로운 옷장을 구매해야 될 정도로... 아니, 다음에 이사할 때는 옷방이 있는 곳으로 이사를 가야 될 정도로 옷 쇼핑을 많이 한다. 

또 다른 철학 중에 하나는 빈티지, 중고, 남들이 입은 옷은 사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건 나만의 철학이지 정답은 아니기에 빈티지의 매력을 존중하지만, 그냥 난 새 옷만 입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 같다. 구하기 힘든 제품은 유사한 제품으로 구매하고, 그렇게 나를 치장한다.


그녀는 내가 옷을 잘 입는 것을 좋아했다.

난 옷을 잘 입는지 잘 모르지만, 옷이 많아 그녀가 좋아하는 스타일을 입어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남자의 스타일을 자세하게 이야기해 주지 않았고, 단지 머슬한 느낌의 상의와 캐주얼한 하의면 만족했던 것 같다. 당시에 운동을 하던 나의 모습이 꽤 건강해 보였으리라 생각한다. 과거이야기를 살짝 하자면 난 20대 때 내가 좋아하는 이성이 옷을 잘 입고 자기 개성이 뚜렷하면 좋다고 생각했다. 물론 지금은 전혀 부질없는 생각이다. 옷을 못 입어도 그 내면이나 행동 등이 옷을 넘어 이뻐 보일 수 있기 때문에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물론 내가 좋아했던 그녀가 스타일이 나쁘다는 건 아니다. 내가 좋아했던 캐주얼한 스타일에 가끔 귀엽거나 섹시하게 입을 줄 아는 그녀였기에 아직도 이렇게 헤어 나오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옷을 통해 개성을 표현하고자 하는 여럿 사람들을 본다. 그들의 라이프가 옷에 녹아들어 있기도 하고, 그들의 철학이 나에게 많은 영감을 주기도 한다. 유튜브나 여러 매체를 통해 그들이 표현하는 방식만 봐도 난 옷이 많은 거지 옷을 개성 있게 입는 건 아니었다. 


한때는 명품 옷만 입는 사람들을 동경한 적이 있다. 내가 입는 가성비의 옷들을 저런 명품으로 바꾼다면 나도 고급스러워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열심히 인터넷에서 찾아본 적이 있고, 물론 그것들을 산적도 있다. 어릴 때의 치기였다고 지금은 생각하지만, 그런 경험이 없었다면 지금의 내가 옷을 입는 방식이 나오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지금은 그저 편안옷만을 추구한다. 매일 다른 옷을 입기는 하지만, 그 옷이 편해야 한다. 옷이 나를 옥죄기 보다는 그저 난 옷걸이고 옷은 걸려 있는 느낌의 옷들을 좋아한다. 패션공부를 할 때 인상적이었던 말 중에 하나가 '편안하고 멋진 옷은 뛰어난 건축물의 축소판이다.'라는 말이었다. 

사람의 몸은 입체적이라 공간이라 비유한다면 뛰어난 건축물에서 오는 경외감에 옷도 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말과 같았다.


난 옷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나 혼자 있는 집에서는 원시인처럼 지낸다. 옷을 입는 것에 불편함을 느끼는지 나만의 공간에서는 그저 훌렁훌렁 그러고 있다.

이제는 옷이 거추장스럽다.

하지만, 오늘 난 또 옷을 샀다. 스트레스가 쌓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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